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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6: 유병재의 무공해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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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8: 내재적 동기에 대한 내용을 보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9: 화목한 팀은 왜 실패하는가 를 보고
1. 화목의 역설
우리는 종종 "화목한 팀이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목이 갈등의 부재를 뜻할 때, 그건 오히려 위험하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말하지 못한 불만과 검열이 쌓여 있을 수 있다.
이런 팀에서는 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회의실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복도와 메신저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흐른다. "사실 나는 달리 생각하는데..." 이런 속마음들이 지하수처럼 흐르다가 어느 순간 균열을 만든다. 표면의 평온함과 내면의 불일치 사이에서 팀은 서서히 병든다.
진짜 화목은 갈등이 있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힘을 뜻한다. 마치 뼈가 부러졌다가 아물면서 더 단단해지듯, 건강한 갈등을 거친 팀은 더 강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회복탄력성'이다. 충돌 후에도 다시 모일 수 있는 힘, 불편한 대화 후에도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관계의 유연성.
갈등은 팀에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디어는 충돌 속에서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다. 소멸이 아니라 변환이다. 불필요한 것은 소각되고, 남은 것은 정제되며, 때로는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합쳐져 전혀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 과정은 연금술과 닮았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납을 금으로 바꾸려 했듯, 우리는 갈등이라는 원재료를 혁신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A의 아이디어와 B의 반박이 만나 C라는 제3의 길이 열릴 때, 그것이 바로 팀의 연금술이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파괴적으로 흐르느냐, 변환적으로 작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파괴적 갈등은 사람을 공격한다. "네가 틀렸어"가 아니라 "넌 무능해"로 흐른다. 반면 변환적 갈등은 아이디어를 공격한다. "이 방법은 이런 한계가 있어"라며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간다.
경쟁만을 전면에 내세운 문화는 위험하다. 제로섬 게임처럼 누군가의 이익이 곧 다른 이의 손해로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팀은 금세 소진된다.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은 이런 실험을 했다. 개인 성과급을 없애고 팀 단위 보상으로 전환했더니,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던 구성원들이 점차 서로의 성공을 돕기 시작했다. 동료의 코드 리뷰에 더 신경쓰고, 막힌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지식을 아낌없이 공유했다. 1년 후 그들의 제품 출시 속도는 40% 빨라졌다.
팀이란 본질적으로 논제로섬의 장을 설계해야 한다. 즉,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둘이 만나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평가와 보상 체계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최고의 개인"이 아닌 "최고의 협업자"를 찾아내고 인정하는 시스템.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이다. 심리적 안정감은 단순히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조건을 넘어서, "우리는 같은 팀이다"라는 동지적 감각에서 출발한다.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혀낸 것도 이것이었다. 성공적인 팀의 비밀은 구성원의 능력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이었다. 그런데 이 안정감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우리'라는 감각,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에서 온다.
우리는 내부의 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외부에 맞설 '공통의 적'을 설정해야 한다. 그 적은 경쟁사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기술적 한계, 사회적 편견, 시장의 비효율, 혹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과의 간극일지 모른다.
스페이스X가 "화성 식민지"를 외치는 것도, 테슬라가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경쟁사가 아닌 더 큰 문제와 싸운다. 이때 갈등은 전우들의 전술 토론이 되고, 최종 결정은 전우들의 합의가 된다.
그렇기에 리더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선장은 단 한 명이어야 한다. 배가 두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선장이 독재자가 되어선 안 된다. 선원들의 목소리를 듣되, 최종 결정은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각자가 다른 꿈을 품고 있더라도, 그 꿈이 교차하는 항로를 제시하고, 항해의 리듬을 만들어내야 한다. 개발자는 기술적 도전을, 디자이너는 미적 혁신을, 마케터는 시장 정복을 꿈꾼다. 리더는 이 모든 꿈이 하나의 미션 안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리더는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지금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가. 이 문제를 풀면 각자의 꿈에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가." 이 메시지가 끊임없이 흘러야 팀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메시지에도 층위가 있다. 거대한 서사는 분기 단위로 상기하면 충분하다. 자주 외치면 공허해지고, 간헐적으로 강하게 던질 때 나침반이 된다.
마치 종교의 리듬과 같다. 매일의 기도, 매주의 예배, 연례의 대축제. 각각의 주기는 다른 깊이의 메시지를 전한다. 팀도 마찬가지다. 데일리 스탠드업에서는 오늘의 전투를, 위클리 미팅에서는 이번 주의 전략을, 분기 워크숍에서는 우리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한다.
반면 단기적인 목표는 매일, 매주 반복되어야 한다. 전투 현장에서는 북소리처럼 팀을 정렬시키고 모멘텀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 스프린트의 목표", "오늘 반드시 해결할 버그", "이번 주 출시할 기능". 이런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목표들이 팀의 심장박동이 된다.
결국 리더는 나침반과 북을 동시에 쥔 존재다. 멀리 보면서도 지금 여기를 놓치지 않는, 이중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톤이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전투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그 이김의 대상은 경쟁자가 아니라 제약이다.
"전투적"이라는 말이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투는 스포츠에 가깝다. 규칙이 있고, 상대를 존중하며, 더 나은 플레이를 추구한다. 우리가 넘어야 할 벽, 깨야 할 기록, 도달해야 할 정상. 이것들과의 싸움이다.
전투적이라는 건 곧 "우리가 반드시 이 벽을 넘어야 한다"는 강한 각오를 공유하는 행위다. 동시에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낙관도 필요하다. 전투적 낙관주의. 현실을 직시하되 가능성을 믿는 태도.
그렇기에 상징적 구호가 필요하다. 숫자는 최소 기준일 뿐, 사람을 움직이는 건 이야기와 상징이다. "Think Different", "Don't be evil", "Move fast and break things". 이런 구호들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행동 지침이자 정체성 선언이다.
구호는 문제에 집중하게 만들고, 숫자를 넘어서는 성과를 가능케 한다. OKR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숫자 뒤에 숨은 의미,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 그것을 압축한 언어가 필요하다.
결국 팀은 화목을 디폴트로, 갈등을 변환적으로, 적을 외부로, 리더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모든 항해는 언젠가 끝난다.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거나, 때론 난파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공한 프로젝트의 경험이 다음 도전의 자산이 되고, 실패한 시도의 교훈이 더 나은 설계의 밑거름이 되도록. 팀원들이 흩어져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 항해의 경험을 품고 새로운 팀을 만들어가도록.
그래야만 개인의 꿈과 팀의 비전이 하나의 항해로 이어지고, 스타플레이어의 순간적 반짝임이 아니라 팀 전체의 우승으로, 그리고 그 우승이 다시 더 큰 도전의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팀이란 결국, 함께 항해하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일시적이면서도 영원한 동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