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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자동화, 책임, 그리고 대출 심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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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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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 뉴스를 보면 매출이나 이익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데이터센터 투자액과 GPU 구매액이다. 과거라면 사람 채용, 연봉 인상, 지점 확장으로 쓰였을 자본이 이제는 서버 팜과 칩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사람에게 갔을 돈이 GPU로 간다"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우리가 정확히 어떤 시대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문장이다.


자동화는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당장 월급을 빼앗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흔히 "반복 업무"라 부르는 일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불확실성과 책임을 다루는 인간의 유연성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이걸 과연 AI에게 통째로 넘길 수 있을까? 그 질문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대출 심사다.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는 매달 나가는 고정비이자 생산성, 감정, 이직, 조직 정치 등 불확실성이 따라붙는 비용이다. 반면 GPU와 데이터센터는 한 번 큰돈을 쓰고 나면 처리량과 단가가 예측 가능한 "계산 가능한 자원"이 된다. 지금 일어나는 변화는 단순한 인력에서 AI로의 교체가 아니라, 불안정한 비용 구조에서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로의 이동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는 노동 소득의 몫이 줄고 자본 소득의 몫이 늘어나는 과정이다. 단기적으로 GPU는 누군가의 월급을 직접 대체한다. 같은 일을 더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다면 경영자가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불가능하다. "기술 발전은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낙관론은 단기 충격의 고통을 덮어주지 못한다.


겉보기엔 많은 일이 단순 반복처럼 보인다. 서류 받고, 규정 확인하고, 시스템 입력하고, 결과 통보하고. 데이터만 놓고 보면 알고리즘으로 쉽게 대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예외 상황이다. 서류는 완벽한데 느낌이 찜찜한 경우, 소득은 충분하지만 직업 안정성이 불확실한 경우, 규정상 통과지만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위험해 보이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순간에 사람은 규정, 경험, 직관, 조직 분위기, 그리고 향후 책임까지 한꺼번에 끌어안고 판단한다. 여기에는 규칙 기반 처리, 불확실성 속 판단, 최종 책임 소재라는 세 가지가 얽혀 있다. AI는 첫 번째는 강하지만 두 번째는 애매하고 세 번째는 아예 불가능하다. 결국 "반복 업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일의 본질은 "규칙적이지만, 책임이 무거워서 사람이 떠안고 있던 일"이었다. AI는 규칙만 가져가고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는다.


대출 심사는 숫자와 규정의 세계처럼 보인다. 소득, 부채, 신용점수, LTV, DSR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분 자동화되어 왔다. AI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재직과 소득 증빙을 자동으로 판독하고, 소비 패턴과 직장 안정성을 포함한 리스크 스코어링을 수행하며, 사기와 이상 패턴을 탐지한다. 이 영역에서 AI는 사람보다 빠르고 때로는 더 정확하다. 지속적으로 자동화 압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 승인이나 거절" 단계에 이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대출은 단순 금융 상품이 아니라 규제, 책임, 사회적 안전망과 직결된 공적 행위다. 이 사람에게 대출을 거절해도 되는가, 이 결정에 차별은 없는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어떻게 설명하고 책임질 것인가. AI에게 최종 결정권을 넘기는 순간, 정치적, 법적, 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돌아온다. 규제 기관은 "AI가 그렇게 판단해서요"라는 말을 책임 회피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는 명확하다. 입력 정리, 규정 매칭, 스코어 계산, 문서 검증, 사기 탐지 같은 영역은 자동화가 가능하다. 반면 모호한 케이스의 최종 판단, 예외 승인과 거절, "이 결정이 옳은가"에 대한 책임은 자동화가 막힌다. 즉,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는 것은 "반복 업무"가 아니라 "책임이 필요 없는 반복 업무"다.


AI 도입 압박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일은 단순 전처리, 요약, 정리, 복사, 전달 같은 책임 없는 반복이다. 반대로 더 중요해지는 역할은 최종 판단자, 예외 케이스 처리자, 알고리즘 편향과 오류 감시자, "이 결정이 사회적으로 옳은가"를 묻는 사람, 규제와 거버넌스를 설계하고 감당하는 사람이다. AI가 쉬운 일을 가져갈수록 인간은 판단, 책임, 불확실성 관리라는 더 압축되고 고단한 역할로 몰려간다.


데이터센터와 GPU에 들어가는 돈은 과거 기준으로는 누군가의 인건비였을 가능성이 크다. 자동화는 현재 누군가의 월급을 잘라내 그 자원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 그 흐름을 멈출 수 없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첫째, 내 일에서 "책임이 없는 반복"은 어디인가. 여기가 가장 먼저 잠식된다. 둘째, 내 일에서 "불확실성과 책임이 결합된 판단"은 어디인가. 여기가 AI가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지막 방어선이자 새로운 기회의 영역이다.


AI 시대의 노동은 "기계를 대신하는 손"에서 "기계를 감독하고 책임지는 머리와 마음"으로 옮겨가고 있다. GPU가 먹어치운 월급의 빈자리를 우리는 어떤 역할로 다시 채울 것인가.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할 진짜 고민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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