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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되지 않는 성장 구간을 끝까지 버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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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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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든 장기간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이 질문을 수백 번 되뇌게 됩니다. "매일 이렇게 하고 있는데, 왜 하나도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이 구간은 겉보기엔 정체기처럼 보입니다. 기록은 꿈쩍도 않고, 거울 속 모습도 그대로고, 실력도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포기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체감되지 않는 구간'이야말로 실제로 가장 많은 성장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근육 섬유가 미세하게 찢어지고 재생되며 강해지고, 뇌의 신경 회로가 조금씩 재배선되고, 모세혈관이 늘어나고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올라가는 등 보이지 않는 구조적 변화가 폭발적으로 쌓이는 때입니다. 다만 우리 감각은 그 변화를 너무 늦게 인지할 뿐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뇌가 이 '체감되지 않음'을 '잘못된 방향' 혹은 '무의미한 노력'으로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불안이 커지고, 그 불안이 결국 행동을 멈추게 만듭니다.


반면,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은 이 구간을 의지력으로 버티지 않습니다. 의지력은 한계가 있는 자원이기 때문이죠. 대신 그들은 철저한 구조와 시스템으로 이 구간을 통과합니다. 즉, 느낌이 아니라 설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과를 만드는 진짜 지표는 '결과'가 아니라 '공정률'이다


우리가 불안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측정 기준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오늘 더 잘했나? 실력이 늘었나? 기록이 좋아졌나?"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의 몸과 뇌는 하루 단위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줄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대신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정한 루틴을 100% 수행했는가?" "내 시스템이 오늘 하루치 진도를 정확히 나갔는가?" 이게 바로 공정률 지표입니다. 운동선수들은 근력 증가나 기록 단축이 아니라 '오늘 스쿼트 5세트를 예정된 무게와 휴식 시간 안에 끝냈는가'를 확인합니다. 작가들은 '오늘 2,000자를 썼는가'만 봅니다. 프로그래머들은 '오늘 정해진 알고리즘 문제를 풀었는가'만 체크합니다.


왜냐고요? 하루의 노력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세포·혈관·신경 수준에서 서서히 구조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 구조적 변화가 충분히 쌓여야만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는 결과'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해내는 사람들은 결과가 늦게 오는 걸 알기에, 즉시적인 보상과 피드백을 '과정의 완수'에서 얻습니다. 루틴을 끝내면 체크 표시를 하고, 그 체크 표시 하나하나가 도파민을 줍니다. 결과는 나중에 따라오니까, 지금 당장은 공정률로 만족을 설계하는 겁니다.


사람의 감각은 늘 왜곡된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지금 이 순간 통증이 있느냐, 없느냐'로 모든 걸 판단하려 합니다. 그래서 '데드존(Dead Zone)'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이 생깁니다. 데드존이란 겉보기엔 꽤 힘들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 영역을 말합니다.


달리기할 때 시속 10~12km 정도로 적당히 숨차고 땀나는 속도가 대표적입니다. 보기엔 열심히 뛰는 것 같지만, 유산소 기반도 제대로 안 쌓이고 무산소 역치도 안 올라가는, 그야말로 낭비 구간이죠. 공부나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8시간 책상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실제 학습량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자료만 뒤적거린 건 데드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해내는 사람들은 감각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이 속도가 너무 느린데?"라고 느껴도 데이터와 훈련 원칙이 말하는 페이스를 그대로 따릅니다. "이 연습이 너무 쉬운데?"라고 생각해도 기초를 완벽히 자동화하는 것이 장기 승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감각은 속이고, 시스템은 속이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감정의 파동을 걸러줍니다. 결국 성장은 감각이 아니라 구조를 따른 사람에게만 쌓입니다.


비교 주기는 '일 단위'가 아니라 '분기(3개월) 단위'여야 한다


매일매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행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루의 실제 성장량은 거의 0에 가까운 반면, 하루 컨디션 변동폭은 하루 성장량보다 훨씬 큽니다.


수면 부족, 생리 주기, 날씨, 스트레스 등으로 컨디션이 20%씩 왔다 갔다 하는데, 하루 성장량은 0.01% 미만입니다. 그러니 '어제 대 오늘' 비교는 통계적으로 완전한 노이즈일 뿐입니다.


저 역시 예전에 매일 심박수·체중·기록을 재다가 불안만 커졌습니다. 그러다 측정 주기를 월 1~2회로 바꾼 뒤부터 오히려 기록이 더 좋아졌습니다. 불필요한 노이즈가 사라지니 훈련의 일관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진짜 의미 있는 비교는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 단위여야 합니다. 3개월 전의 나에게 죽도록 힘들었던 운동이 지금은 워밍업 수준이라면, 3개월 전엔 30분도 못 읽던 책을 지금은 2시간씩 몰입해서 읽는다면, 이것이 바로 베이스라인 이동(Baseline Shift)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절대 체감할 수 없고, 긴 간격으로만 확인 가능한 진짜 성장 신호죠.


성장은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체감되지 않는 수천 시간의 층층 쌓임이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감정 기복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장이 본래 '체감되지 않는 구조적 변화'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과가 아닌 공정률을 유일한 지표로 삼고, 감각이 아닌 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 단위가 아닌 분기·반기 단위로만 자신을 평가합니다.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기적이 아닙니다. 그저 매일 체감되지 않는 0.001%의 변화가 1,000일, 2,000일 쌓이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되는 겁니다. "아,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니구나." 그날이 오기까지, 느낌이 아니라 설계를 믿고 묵묵히 걸어가면 됩니다. 그 길 끝에 반드시 다른 사람이 서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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