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Proejct (356/365)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30: 1년도 못 버티고 줄줄이... 를 읽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31: 과부하에 빠진 조직을 구하기 를 읽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32: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 를 읽고
행복의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큰 행복을 한 번 경험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작지만 좋은 순간이 찾아오느냐”에 가깝다. 이 관점을 나 혼자만의 루틴이나 자기계발의 영역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나와 남의 관계, 즉 회사와 가족, 아내와 친구라는 구체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훨씬 재밌어진다.
나는 요즘 운동이 의도대로 잘 풀릴 때, 혹은 LLM이 내 마음먹은 대로 정확히 동작할 때 작은 기쁨을 느낀다. 이건 내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조절할 수 있다는 감각, 즉 효능감에서 오는 쾌감이다. 그리고 이 감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선물로 건네줄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회사에서 연봉을 올려주는 큰 결정이나, 가족 여행 같은 큰 이벤트가 관계를 규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사이에 흘러가는 아주 짧고 가벼운 말들이 관계의 온도를 결정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좋은데요” 한마디 건네는 것, 작은 수고에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하나의 아이디어를 듣고 “이건 진짜 괜찮다”라고 바로 반응해주는 것. 이런 마이크로 인터랙션이 쌓여서 어느 순간 “이 사람과 있으면 편하다”, “이 사람 곁에 있으면 괜히 좋다”라는 인상을 만든다. 행복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를 기준으로 보면, 결국 중요한 사람은 “한 번 크게 좋은 일을 해준 사람”이 아니라 “자주 작은 신호를 보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더 자주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고민한다. 말의 길이나 무게보다, 말의 빈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건넬 때는 뭔가 완성도 높은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다. 하지만 진짜로 도움이 되는 말은 대부분 1~2문장에 불과하다. “이거 덕분에 빨리 해결했어요”, “아까 그 정리 좋았어요”, “오늘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이런 말들은 준비도 거의 필요 없고, 시간도 몇 초밖에 안 걸리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루의 결을 살짝 위쪽으로 밀어올리는 힘을 가진다.
특히 회사에서는 이런 짧은 긍정 신호의 효과가 훨씬 크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피드백은 ‘문제가 생겼을 때’ 혹은 ‘성과 평가 시즌’에만 무겁게 등장하고, 평소에는 서로 마음속으로만 “저 사람 이거 잘하네”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고 싶다.
좋게 생각한 것을 그냥 머릿속에만 두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 회의가 끝난 뒤에 “방금 그 부분 정리해준 거, 팀에 큰 도움 됐어요”라고 해주는 사람. 문서를 보고 “이 정도로 명료하게 정리한 거 쉽지 않았을 텐데, 고맙습니다”라고 의도를 짚어주는 사람. 이 정도만 해도, 내 주변의 “작은 행복의 빈도”는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래 함께 살아온 관계일수록, 말이 줄어들고 기대와 해석이 앞서기 쉽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관계일수록 짧은 한마디가 분위기를 크게 바꾼다. “요즘 힘들겠는데 고생 많네”, “이거 준비해준 거 고마워”, “오늘 좀 덜 피곤해 보인다.” 이런 말을 굳이 거창한 타이밍에 맞춰 할 필요도 없다.
부엌을 지나가다 한마디, 잠깐 눈이 마주쳤을 때 한마디. 말의 내용보다 중요한 건 “나는 너를 보고 있다”라는 신호 자체다. 아내에게는 이 신호가 더 중요하다. 하루가 끝난 밤에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조용히 물어보는 것, 어떤 선택을 이야기할 때 “나는 네 선택을 믿어”라고 말해주는 것, 준비해준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이거 덕분에 편했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결국 말의 빈도에서 나온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다. 꼭 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눌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얘기 진짜 웃겼다 ㅋㅋ”, “그때 네 조언 덕분에 잘 풀렸다”, “요즘 컨디션 좋아 보인다” 같은 가볍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관계를 오래 유지시킨다. 이건 노력이나 희생이라기보다, 이미 떠올랐던 좋은 생각을 그냥 한 번 더 밖으로 꺼내는 정도에 가깝다. 우리는 상대에 대해 좋은 생각을 꽤 자주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전달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그 사라지는 긍정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 말로 붙잡는 일이다.
행복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사람”에서 “자주, 작게, 가볍게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되겠다는 선택이다. 그것은 엄청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습관의 문제다. 상대의 좋은 점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한 문장으로 말해주는 것. 고마움을 느꼈을 때, 머릿속에서만 미소 짓고 지나가는 대신 카톡 한 줄 남기는 것. 회의가 끝났을 때, 정리해준 사람에게 슬랙 이모지 하나만이라도 붙이는 것. 이런 것들이 결국 회사와 가족, 아내와 친구들의 일상 속에 “작은 잘됨, 작은 효능감, 작은 인정”의 순간을 계속 만들어낸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운동이 의도대로 됐을 때, LLM이 마음먹은 대로 동작했을 때 느끼는 그 작은 기쁨을, 이제는 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전파하려고 한다. 거창한 조언이나 강렬한 이벤트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들의 하루에 작은 긍정의 알약을 자주 던져 넣는 사람. 더 자주 말하는 사람. 행복의 강도보다 빈도를 믿는 사람. 아마 내가 되고 싶은 건 그런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