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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과 마주할 때 먼저 귀부터 막는다. 이어폰을 끼는 순간 세상과 나 사이에 얇고 투명한 막이 생기고, 나는 그 막 안에서 사고의 속도를 조절한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할 때 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귀를 막는다.
어린 시절의 복도 소음이 그랬듯, 과도한 자극은 늘 내 감각을 과부하시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방을 만들었고, 그 방 안에서 생각을 다듬었다. 2025년에도 그 습관은 여전하다. 나는 새로운 기기를 볼 때 소리를 개선하는 기능보다 소음을 줄이는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안정이 필요할 때 이어폰을 찾는다. 그 행위는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나는 '감각을 조절하는 능력'이 나의 핵심 기술이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귀를 막는다는 행위는 회피가 아니라 입력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입력이 흐트러지면 판단이 흐려지고, 판단이 흐려지면 제품의 방향이 흔들린다. 집중력이란 결국 어디에 감각을 집중할지 선택하는 능력이고, 그 선택은 무엇을 배제할지 결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집중하기 위해 먼저 소음을 제거한다.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신호가 들린다.
그래서 나는 소리뿐 아니라 다른 감각도 조절한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먼저 시야를 좁혀 불필요한 표정, 움직임, 분위기 같은 잡음을 줄인다. 사람의 말은 결국 표면의 온도, 내면의 의도, 그 뒤에 숨어 있는 문제라는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는 그 층을 분해해 듣기 위해 감각 전체에 필터를 건다. 이어폰은 그 필터의 가장 첫 번째 층에 불과하다. 집중력이란 단순히 한 가지에 몰두하는 능력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신호 중 지금 필요한 층만 선택적으로 읽어내는 기술이다.
조직은 끊임없이 말한다. 요구, 우려, 반박, 책임, 아이디어가 뒤섞여 끝없이 흐른다. 그 말들은 서로 다른 온도와 속도를 가진 파형이고, 나는 그 파형을 적정 거리에서 읽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왜곡되고, 너무 멀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PM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 이전에 신호대잡음비(Signal-to-Noise Ratio)를 관리하는 일이다.
말은 늘 감정과 의도와 문제를 함께 담고 들어온다. 감정은 종종 소음으로 작용한다. 감정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의 구조를 읽어야 하는 순간에 감정은 신호를 가린다는 뜻이다. 나는 먼저 잡음을 제거하고 정제해야 정확한 신호를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기능은 꼭 필요해요"라는 말 뒤에는 실제 필요가 있을 수도 있고, 단순한 선호가 있을 수도 있으며, 다른 문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신호는 그 말의 표면이 아니라 말이 가리키는 구조 속에 있다.
이 거리는 냉소가 아니라 판단을 위한 구조적 장치다. 친밀함이 판단을 흐린 순간을 여러 번 경험한 이후로 나는 더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한다. 그 거리는 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결국 제품과 팀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신호를 듣기 위해서는 소음으로부터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가 바로 PM의 위치다.
이어폰이라는 물건의 기술적 구조도 내 작업 방식과 맞닿아 있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소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파형을 만들어 상쇄한다. PM의 문제 해결도 비슷하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문제의 반대 파형을 찾고, 구조를 재정렬하고, 책임선을 다듬고, 의도를 세워 잡음을 지운다.
신호는 존재하지만 소음에 가려져 있을 때가 많다. 노이즈 캔슬링이 소음의 역파형을 생성해 원하는 소리만 남기듯, 나는 문제 상황에서 구조적 대안을 만들어 진짜 문제만 부각시킨다. 이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소음을 제거하면 신호가 명확해지고, 신호가 명확해지면 집중력이 유지되며, 집중력이 유지되면 옳은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어폰을 고를 때 사람들은 음질이나 브랜드를 보지만, 나는 구조를 먼저 본다. 커널형은 깊이 침투해 원인을 듣는 방식과 닮았고, 오픈형은 외부 흐름을 받아들이며 전체 패턴을 읽는 방식과 닮았다. 무선은 기동성, 유선은 정확성. 결국 내가 사용하는 이어폰은 내가 선택한 사고 방식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순간에 귀를 막는 건 아니다. 아주 드물게, 팀이 같은 문제를 바라보며 조용히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이 있다. 서로의 말이 정확한 구조로 결합되고, 감정 대신 정보가 흐르고, 정보 대신 구조가 남는 순간이다. 그때는 소음이 없다. 모든 말이 신호다. 집중력이 분산될 이유가 없다. 그때 나는 이어폰을 뺀다. 방어가 필요 없는 순간은 극히 적지만, 그래서 더 또렷하게 기억된다.
나는 그 잠깐의 순간을 위해 나머지 시간을 귀를 막고 산다. 이어폰은 나를 고립시키는 방벽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판단을 지키기 위한 작은 조율 장치다. 소음 속에서 신호를 찾기 위해, 그리고 신호가 명확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귀를 막는다.
앞으로도 나는 귀를 막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정보를 정리해주는 시대에도 잡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미세하고 빠르게 변한다. 의사결정의 속도는 가속하고, 소음은 더 정교해진다. 신호와 소음의 경계는 더 모호해지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귀를 막는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듣기 위해서다. 귀를 막는 것은 회피가 아니라 전략이고, 그 전략이 나라는 사람을 버티게 하고, 제품을 살아남게 하며, 팀을 안정시키는 힘이 된다. 이어폰은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해 발명한 작은 생존 구조물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 구조 안에서 일할 것이다. 내가 귀를 막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역할을 끝까지 해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