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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시대의 무지, 그리고 프로덕트 매니저의 학습 설계
서비스 기획자로 10년 넘게 일하고 지금은 프로덕트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 오래 일할수록 한 가지 감정이 점점 더 자주 올라온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감정이다.
얼마 전 크롬 단축키 하나를 다룬 글을 읽었다. CMD + SHIFT + A라는, 브라우저 안의 거의 모든 동작을 검색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능 이야기였다. 나는 이 도구를 매일 쓴다. 그럼에도 이 단축키를 오랫동안 몰랐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크게 남았다. 단축키 그 자체보다, 그 무지에 대한 반응이 더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더닝–크루거 효과를 떠올렸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지점이 학습의 출발선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실력 부족을 인정하는 일이 자존심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프로덕트 일을 오래 할수록 이 인정이야말로 유일하게 안전한 자세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망망대해 위에서 내 배가 어디쯤 떠 있는지 좌표를 찍는 일에 가깝다.
무지를 인식하려면, 의도적으로 노출을 설계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경험은 우연히 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연에만 맡기면 빈도가 너무 낮다. 특히 지금처럼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취향을 세세하게 최적화하는 시대에는 더 그렇다.
개인화된 피드는 내가 이미 관심을 가진 것, 이미 눌렀던 것, 이미 오래 소비해 온 것들을 계속해서 밀어 올린다. 표면적으로는 "나를 잘 아는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학습 관점에서 보면 내 세계를 서서히 좁게 만든다. 새로운 개념, 낯선 관점, 불편한 데이터에 노출될 확률이 떨어진다.
학습을 확률 게임으로 보면 상황은 분명하다. "노출 모수"가 줄어든다. 더닝–크루거에서 두 번째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세계를 경험할 기회가 필요하다. 알고리즘은 그 기회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잘라낸다. 그래서 이제는 "노출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프로덕트 매니저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 기술, 조직, 사용자, 데이터 중 어느 한 축이라도 노출이 줄어들면 관점이 빠르게 낡는다.
이 지점에서 큐레이션과 뉴스레터가 흥미로운 역할을 맡는다. 알고리즘이 세계를 잘게 쪼개고 개인의 취향 안으로 접어 넣을수록, 인간이 만든 큐레이션은 반대로 세계를 다시 펼치는 역할을 맡는다. 좋은 큐레이터는 사용자의 기분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가 보지 못할 법한 세계를 보여준다. 비슷한 기사만 묶지 않는다. 서로 다른 도메인의 글을 붙여놓고, 그 사이에서 공통 구조를 드러낸다. 이때 큐레이션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세계관 유통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보면 뉴스레터는 단순한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니다. 알고리즘이 줄여 버린 "우연한 노출"을 대신 제공하는 서비스다. 사용자의 학습 확률을 복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큐레이션과 뉴스레터가 여전히 의미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다만 그 가치는 링크를 많이 모으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이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연결"을 보여줄 때 비로소 힘이 생긴다.
노출을 설계했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마주쳤을 때, 그것을 실제로 파고들어 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이 결정은 늘 에너지와 시간이 든다. 예전에는 이 탐색 비용이 꽤 높았다. 검색 키워드를 고민하고, 글을 여러 개 읽고, 맥락을 추려서 이해 가능한 슬라이스로 만들고, 이것을 내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따로 생각해야 했다. 프로덕트 매니저 입장에서 이런 탐색은 중요하지만, 당장의 업무와 경쟁한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포기한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LLM과 에이전트가 탐색의 절차를 상당 부분 대신 처리한다. 모르는 개념을 만났을 때, 이제는 "이게 뭐지?"라는 질문 하나만 던져도 된다. 도메인 전반의 개요, 대표적인 사례, 연관된 개념, 내 역할과 관련된 활용 포인트까지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 탐색의 진입 비용이 내려가면, 우리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파보자"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더닝–크루거의 두 번째 계단에서 세 번째 계단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개인의 용기보다 시스템의 도움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변화가 프로덕트 매니저의 학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리라고 본다.
여기까지 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바뀐다. "나는 나와 팀을 위해 어떤 학습 루프를 설계할 수 있을까?" 개인 관점에서 보면, 루프는 대략 이런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의도적으로 많이 마주친다. 그중 일부는 낯설고 불편할 것이다. 그 순간 "모른다"는 사실을 그냥 넘기지 않고, 간단한 질문으로 LLM에게 탐색을 위임한다. 정리된 내용을 내 언어로 다시 적는다. 이 기록을 일정한 주기로 다시 본다. 여기까지가 최소한의 루프다.
팀 단위에서는 구조가 조금 달라진다. 각자가 따로 학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습을 공유하고, 그 공유가 다시 팀의 시야를 넓히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간 회의에서 "이번 주에 새로 알게 된 것 하나"를 공유하는 시간을 짧게라도 넣을 수 있다. 누군가는 기술 스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보를 가져올 것이고, 누군가는 사용자 행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져올 것이다. 이 내용을 LLM에게 맡겨 한 페이지 리포트로 묶으면, 팀의 학습 자산은 자연스럽게 쌓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이걸 아직 몰랐어?"라는 반응이 나오는 순간, 학습 루프는 바로 깨진다. 반대로, "그걸 이제 알았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톤이 쌓이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가 팀 내에서 안전해진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누구나 새로운 것을 가져올 수 있다.
학습은 결국 감정의 문제다. 새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또 뒤처졌네"라는 감정이 쌓이면, 어느 순간 사람은 스스로 노출을 줄인다. 알고리즘보다 먼저, 스스로 필터 버블을 만든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이런 상태는 위험하다. 서비스는 시장, 기술, 조직, 사용자와 함께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멈추면, 사실상 후퇴한다.
그래서 나는 "아 이런 것도 있네"라는 감정을 최대한 자주 느끼려고 한다. 그 감정을 패배가 아니라 발견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이때 LLM과 에이전트는 좋은 동료가 된다. 모르는 것을 마주쳤을 때, "이걸 이해하려면 오늘 하루를 다 써야겠다"가 아니라, "질문 몇 번으로 대략의 지도를 먼저 그려볼 수 있겠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학습은 부담에서 습관으로 바뀐다.
크롬 단축키 하나에서 시작한 생각은 결국 한 가지 문장으로 모인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 출발점이고, 그 출발점으로 가는 길은 이제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세계를 효율적으로 좁힌다. 좋은 큐레이션과 뉴스레터, 그리고 잘 설계된 개인·팀 학습 루프는 그 세계를 다시 넓힌다. LLM과 에이전트는 그 과정의 비용을 낮춘다.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나는 이 모든 요소를 "학습 경험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본다. 사용자를 위해 서비스 안에서 설계하듯, 나와 팀을 위해서도 학습의 여정을 설계해야 한다. 지치지 않고, 패배감에 빠지지 않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라는 문장을 계속 말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