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평범해진 시대, 무엇이 예술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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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내 글을 이어 쓰기 005 : 예술, 기술에서 혼으로 를 이어 쓰다.


그리는 손에서 보는 눈으로, 우리는 모두 삶의 디렉터다


영화 <타짜>에서 전설적인 타짜 평경장은 자신의 화투 기술을 일컬어 “혼이 담긴 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왜 하필 ‘기술(Techne)’이 아닌 ‘혼(Spirit)’을 강조했을까요?


과거 예술의 역사에서 ‘기술’과 ‘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붓을 다루는 섬세한 손놀림, 악기를 연주하는 근육의 기억, 돌을 깎아내는 물리적인 고통 없이는 예술가의 정신을 세상에 드러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통찰은 현대 예술사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1935년,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념비적인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과 영화의 등장을 목격하며 예술작품의 고유한 분위기인 ‘아우라(Aura)’가 붕괴한다고 예견했습니다. 원본이 가지는 '지금, 여기'의 현존성이 복제 기술에 의해 희석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벤야민은 이를 단순한 상실이나 비극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우라의 붕괴가 예술을 소수 귀족과 종교적 제의(Ritual)의 전유물에서 해방시키고,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 통찰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벤야민이 목격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생성형 AI와 디지털 도구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민주화된 창작의 권력을 우리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바야흐로 ‘기술(Techne)’이 투명해지고, 오롯이 ‘혼’만이 남는 관계의 재설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1. 렘브란트의 붓을 모두가 가질 때: 실행(Execution)의 종말과 필터링의 부상


예술 창작에는 언제나 ‘실행의 병목(Execution Bottleneck)’이 존재했습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훌륭한 교향곡이 흐르고 있어도 화성학을 모르면 작곡할 수 없었고, 완벽한 풍경이 그려져도 데생 실력이 없으면 캔버스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 디지털 작곡 프로그램, 영상 편집 툴의 발전은 이 병목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명령어(Prompt) 한 줄이면 렘브란트 풍의 사과를 1초 만에 얻을 수 있고,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교향곡을 만들 수 있습니다.


PNAS Nexus(2024) 에 실린 텍스트-투-이미지 AI 창작자 5만여 명에 대한 대규모 분석 연구는 이 현상을 날카롭게 입증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AI 도구 도입 후 창작자의 생산성은 약 25% 향상되었고, 대중의 긍정적 평가(즐겨찾기)를 받을 확률은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누구나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은 ‘새로움(Novelty)’의 역설적인 변화입니다. AI의 도입으로 창작물의 평균적인 새로움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AI 모델이 학습한 데이터의 평균값으로 수렴하려는 경향 때문에,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양산형 결과물이 범람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술의 평준화'가 가져온 그늘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과 선택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최상위권(Peak) 결과물의 새로움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모두가 렘브란트처럼 그릴 수 있는 세상에서, ‘잘 그리는 기술’ 자체는 기본값(Default)이 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이제 예술적 성취의 차이는 붓질의 정교함이나 재현의 정확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AI의 출력물 중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고, 무엇이 더 맥락에 부합하는지를 골라내는 ‘인간의 날카로운 필터링 능력’에서 발생합니다.


2. ‘손’의 시대에서 ‘눈’의 시대로: 아티스트-애즈-큐레이터 (Artist as Curator)


창작의 도구들이 민주화되었다는 것은 곧 ‘상상의 즉시적 구현’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예술가가 고통스럽게 돌을 깎으며 재료와 싸우는 ‘수행자(Maker)’였다면, 현대의 예술가는 수만 가지의 가능성 중에서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단 하나를 골라내는 ‘디렉터(Director)’이자 ‘큐레이터(Curator)’가 되었습니다. 영화감독이 직접 연기를 하거나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영화의 작가(Auteur)로 인정받듯, 우리는 AI라는 스태프를 지휘하는 감독이 된 것입니다.


문화 이론가 미에케 발(Mieke Bal)은 큐레이팅을 단순한 작품의 배치가 아니라 “프레이밍(Framing)된 대상들을 통해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시각적 담론”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레이밍’입니다. 프레이밍은 무언가를 포함하는 행위인 동시에, 프레임 밖의 나머지를 배제(Exclusion)하는 행위입니다.


수천 장의 AI 생성 이미지 중에서 단 한 장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행위, 바로 그 ‘배제’와 ‘선택’이 작가의 의도(Intention)를 드러냅니다. 똑같은 AI 툴을 쥐여주어도 결과물은 천차만별입니다. 누군가는 학습 데이터의 평균에 머무는 진부한 이미지를 만들고, 누군가는 보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 차이는 도구를 다루는 손기술(Hand)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View)’과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안목(Eye)’에서 옵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판단력.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기량, 편집(Editing)과 큐레이션입니다.


3. 죽음이 있기에 가능한, 삶이라는 '확장된 전시'


이제 이 논의를 캔버스 밖으로,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해 봅시다. 현대 미학에서는 예술이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를 넘어, 일상의 선택과 배치를 통해 스스로를 보여주는 ‘확장된 전시(Extended Exhibition)’ 개념을 다룹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고 끊임없는 큐레이션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입을 옷을 고르고(Framing), 수많은 점심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며(Filtering), 출퇴근길에 들을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결정합니다(Curation). 누군가는 미니멀하게 정리된 책상을 통해, 누군가는 화려한 SNS 피드를 통해, 또 누군가는 정성스럽게 가꾼 반려식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합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취향(Taste)을 구축하고, 타인에게 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전시합니다.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놓음으로써 예술로 만들었듯, 우리는 일상의 사물과 순간들을 선택하여 배치함으로써 삶을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왜 우리는 굳이 이런 선택에 공을 들이는가?” 단순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일까요?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통찰을 빌리자면, 우리는 ‘죽음-을-향한-존재(Being-towards-death)’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고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오늘의 커피 한 잔이나 옷차림, 혹은 지금 나누는 대화에 굳이 '취향'이라는 고유성을 담을 절박함이 없을지 모릅니다.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선택은 무게를 잃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사라진다는 명확한 한계,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의 일회성이야말로 우리의 선택에 긴장과 무게를 부여합니다. 죽음이라는 배경이 있기에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의 큐레이션은 비로소 예술이 됩니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만의 취향과 의도로 삶을 채워나감으로써, 허무한 죽음에 저항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4. 결론: 당신의 의도를 전시하라


예술의 정의는 다시 쓰여야 합니다. 예술은 특정한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나, 타고난 손재주를 가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디지털 도구들은 창작의 빗장을 풀었고,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포괄적 창의성(Inclusive Creativity)’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의도(Intention)를 가지고, 자신만의 취향(Taste)으로 대상을 재해석하여, 타인과 공명하려 노력하는 모든 행위가 예술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이자, 자신의 일상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입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은 짧은 단상,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차린 저녁 식탁의 플레이팅,

동료에게 건네는 사려 깊은 위로의 말 한마디,

복잡한 업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한 파일 폴더...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골라낸(Filtered), 당신의 혼이 담긴 작품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능력(Skill)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예술이다.”


그 ‘다른 무언가’는 바로 당신의 고유한 시선과 안목입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 안에 담길 ‘혼’은 당신의 선택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당신의 취향을, 당신의 의도를 세상에 전시하십시오.


당신은 이미, 당신 삶의 아티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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