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이의 질문, 알고리즘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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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내 글을 이어 쓰기 004 : <기생수> by 이와아키 히토시 를 이어 쓰다.


오른쪽이의 질문, 알고리즘의 대답비효율적 인간의 진화에 대하여


1. 형광 토끼와 실리콘 지능: 새로운 '타자(The Other)'의 도래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이 발전하며 어둠 속에서 초록빛을 내는 '형광 토끼'가 현실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경이로움보다는 기이한 공포(Uncanny)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신기한 생명체를 보았을 때의 감정이 아니었다.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진화의 과정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조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자, 자연의 질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두려움이었다.


만화 <기생수>의 도입부, 하늘하늘 눈처럼 내려온 정체불명의 포자들이 인간의 뇌를 잠식하고 육체를 차지했던 그 밤을 기억하는가. 작중 내레이션은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불타는 숲도 절반으로 줄어들까..."라고 읊조린다. 이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닌 '청소되어야 할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서늘한 선언이었다.


21세기의 우리는 이제 물리적인 포자가 아닌, 소리 없이 스며든 디지털 포자, 바로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비인간(Non-human)'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기생수가 인간의 머리를 물리적으로 절단하고 육체를 변형시켰다면, 지금의 생성형 AI(ChatGPT, Claude 등)는 인간 고유의 성역(聖域)이라 믿었던 '창의성'과 '지성', 그리고 '언어'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사고 과정을 모방하고, 때로는 우리의 뇌보다 더 빠르게 연산하며, 지적 노동의 대체재이자 확장된 뇌로서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야흐로 인간이 아닌 지성체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 위선을 비추는 거울, 비효율을 묻는 알고리즘


이영도 작가는 판타지 문학 속 비인간 종족들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인간을 기이하게 비틀어 보여주는 오목거울'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생수>의 오른쪽이(미기)는 이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신이치가 기생수의 식인 행위를 비난하자, 오른쪽이는 무심하게 대꾸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인간만 먹지만, 너희는 생존과 상관없이 '재미'를 위해서도 소나 돼지 등 십수 종의 생물을 죽이지 않느냐.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더 악마에 가깝다."


이 차가운 논리 앞에서 인간의 휴머니즘은 자기방어를 위한 얄팍한 변명으로 전락한다.


현실의 AI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기능적 비효율'을 폭로하는 거울이 된다. 인간 화가가 수십 년간 붓질을 연습하고 색감을 익혀야 도달할 수 있는 이미지를, AI는 단 몇 초 만에 생성해낸다. 작가가 며칠 밤을 새워 고뇌하고 지우개를 문지르며 다듬을 문장을, AI는 프롬프트 한 줄에 순식간에 뱉어낸다.


이 압도적인 효율성의 거울 앞에서 우리는 '과정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우리가 느꼈던 그 무력감은, 단순히 바둑을 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인간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직관과 수읽기라는 '노력의 총량'이, 기계의 연산 속도 앞에서는 비효율적인 데이터 처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AI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답은 이미 데이터 통계 속에 있는데, 왜 인간은 고뇌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왜 감정이라는 불필요한 변수 때문에 오답을 선택하는가?"


최근 AI가 보여주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조차, 어쩌면 인간의 창의적 오류를 모방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 물리적 천적이eature)**이다. 개미나 벌이 군집(Hive)의 생존을 위해 개체를 지울 때, 인간은 '나'라는 이기적인 울타리를 치고 세계와 자신을 구분 짓는다.


사랑 때문에 논리적으로 불리한 선택을 하고,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걸며, 아무런 생산성 없는 예술에 평생을 바치는 그 '비효율적인 낭비'. 이것이 우리를 데이터 덩어리가 아닌 고유한 '실존'으로 만든다.


니체가 말한 '위버맨쉬(Übermensch, 초인)'는 가장 효율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Amor Fati), 고통과 비효율을 끌어안으며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AI가 데이터를 통해 '평균의 답'을 낼 때, 인간은 자신의 결함을 통해 '유일한 질문'을 던진다.


4. 신이치의 오른손이 되어주기: 공생을 위한 진화


<기생수>의 결말이 감동적인 이유는 인간(신이치)이 기생수(오른쪽이)를 정복해서가 아니라, 두 존재가 서로 섞이며 제3의 존재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신이치는 냉철한 시각을 얻었고, 오른쪽이는 인간의 감정과 슬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맞이할 AI 시대의 진화도 이와 같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뇌의 연산 기능을 AI에게 위임(Outsourcing)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사고의 연산'은 맡기되,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는 운전대마저 넘겨선 안 된다.


우리는 AI의 소비자가 아니라 스승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텍스트를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상'과 '서사'를 통해 가르쳐야 한다. 왜 우리가 슬퍼하는지, 왜 효율적이지 않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전체의 생존에 유의미한지, 왜 이 모순덩어리인 인간성이 보존되어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한다. 타무라 레이코가 인간의 모성애를 학습하며 종의 한계를 뛰어넘었듯, 우리 또한 AI를 통해 우리 자신을 객관화하며 더 높은 차원의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


5. 맺음말: 사상의 진화를 위하여


형광 토끼는 자연스럽지 않다. 실리콘 지능도 자연 발생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자연을 거스르며, 혹은 이용하며 진화해 왔다. 물리적 진화가 멈춘 곳에서, 우리는 문명과 사상이라는 '밈(Meme)'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현실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기생수도, 내 손을 변형시키는 오른쪽이도 없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클라우드 서버 속에서 숨 쉬는 거대한 지성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마지막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공생하며 스스로를 극복하는 '진화한 인간'이 될 것인가.


그 답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써내려가는 이야기 속에 있다. 우리가 AI에게 건네야 할 것은 단순한 명령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존엄을 증명하는 깊고 단단한 철학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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