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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r 06. 2017

Twin apocalypse

And how to survive from it

이 글을 아래 3 글을 읽고 나서 쓴 글입니다. 


https://www.highly.co/hl/f7LxxK5vSExz1F

https://www.highly.co/hl/twCQbuh1FAY3

https://www.highly.co/hl/49WO7pAQGOpGNa




온갖 예언서의 마지막 장 바로 전 장에는 세계 멸망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마지막 장이 아닌 이유는, 마지막 장에서는 보통 그러니,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라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링크의 글은 마치 그런 느낌을 주었다. 우린 모두 좆되었다. 


언제나 등장하는 <마션> 의 첫 문장.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체제 경쟁이 중단되고,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특정 이익집단들의 몸집은 불어나고 있고, 그들에게 '기생' 하는 지성들은 십수 년 전의 체제를 유지하게 해 준 사회 보장 제도를 해체하고 민영화하려 한다. 그 흐름에서 비껴가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국, 그 이익집단들은 이제 '노동'의 '수'에 구애받지 않는 영역으로 자신의 근거지를 옮겼다. 다시 말하자면, 다수의 노동자 집단의 연대를 통한 이 흐름을 막는 행동도 이제 쉽게 되진 않을 것이란 말이다. 아디다스는 공장을 독일로 옮겼지만, 대다수의 일은 노동자가 아닌 기계가 하고 있다. 기계의 값이 사람보다 싸지게 되면, 노동의 해방이 오면서 더 나은 세계가 올 줄 알긴 개뿔,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주도권은 '돈을 가진 사람들' 에게 넘어가 있었다. 특히 '슈퍼 파워'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에서도 그랬다. 총칼을 들고 바다를 건너가 그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약을 주고, 신자유주의 - 세계화라는 병을 내주었다. 




그러는 한편, 또 다른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착취의 연결고리가 '세계화' 가 되어 가면서 많은 국가들은 자신의 기능을 그 속도에 맞추어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법' 은 언제나 성실하다. 연결된 사회에서는 더 나은 밭을 제공했지만 거기서는 작물만 잘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독초도 함께 잘 자라나고 있었다. 남미 지역에서 ~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카르텔을 차려서 기존 국가 - 이익집단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장악하였고, 그 영향력을 세계로 늘려나갔다. 그리고 넷플릭스에는 <나르코스> 가 나왔지. 


콜롬비아의 마약왕을 다룬 넷플릭스 <나르코스>

세계화 이전에는 좀 더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국가는 자꾸 몸을 불리고, 폭력을 독점한다. 전제왕권으로부터 파생된 정치 조직은 그 권한만큼이나 책임도 무한하게 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날려야 할 왕의 목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 - 그리고 범죄 카르텔들의 지배 방식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있다. 뭐랄까, 자신의 왕국은 - 회사라면 직원들 - 존재하지만, 실제 지배 영역은 더 넓은, 대항해시대 이후 있었던 영국의 깡패짓 - 식민지화와 유사하달까. 또한 그들은 기존의 국가 권력에 '기생'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우리가 항의해야 할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인지한들 어떻게 할 것이냐. 인류가 맞이한 새로운 '왕' 들은 막강하기까지 하다. 기존의 왕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은 그에게서 독점된 폭력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었고, 그 폭력의 수단도 생각보다 헐거운 구조로 되어 있기에 - 그 폭력 자체가 시민에게서 대여된 것이기에 - 손쉬운 편이었다, 지금에 비교하자면. 하지만 지금 금권정을 휘두르는 거대 기업과 범죄 카르텔이 가진 힘은 조금 더 '견고' 하다. 전자의 경우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혹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만큼 강력한 것 같진 않아 보여도, 자기 집단 내부의 강력한 통제와, 본인들이 다루는 '서비스'의 무서움 - 살인, 인신매매, 마약 등 - 과 함께 '숨어있다.' 국공내전시 인민군의 전술, 베트남전의 월남군의 전술 - 게릴라. 그들은 - 어떤 경우에는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낀친다. 




이제는 섹스보다 엑티비즘이 더 팔린다.라는 글이 ㅍㅍㅅㅅ 에 실렸다. 본래 가디언지의 글에 대한 평인데,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위 세 글과 맞닿아있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3S - 중우정치로 갈 수 있는 영역은 어쩌면 첫 번째 글(Twin Insurgency)에서 언급한 중산층을 두터히 하면서 가던 시절이지 않을까. 지금의 시대는 그게 먹히지 않아서 기쁘기도 하지만 - 반대로 그렇게 쉬운 수단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복잡함을 느끼는 시대이지 않을까. 태평성대에는 왕의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라니, 왜 시민은 계속 깨어있어야만 하는가, - 잠든 사이에 코를 베어가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겠지.


희망 같은 게 어디 있을까 싶다. 우버 앱을 지우는 운동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의 '연대'이지만, 그것은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분리' 되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타인에 대해서 - 심지어 나보다 약한 타인에 대해서 동정이 아닌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우리가 상대방을 착취와 약탈 - 혹은 좀 더 온건히 이야기해서 상대방에게서 내 이익을 취하는 것까지 -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 우리는 더 나은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은 맞다. 우리는 되게 느려 보이지만, 흐름으로 보면 급격하게 더 나은 인식을 하고 있고 -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물론, Twin Insurgency 만 계속된다면 - 미래에는 특정 기업이 운영하는 '도시' 속에 안락한 삶과 외부의 범죄조직이 날뛰는 황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스타트렉> 보다는 <매드 맥스>에 가까울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니까. 아니면 <은하 영웅전설>이나 <스타워즈>처럼 새로운 독재정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세계화 - 그리고 Twin Insurgency 에 대한 반동은 '민족주의'를 등에 엎은 '파시스트' 정권이라는 생각도 드니까 말이다. 




시발, 사실 모르겠다. 


참, 될 대로 돼라 싶은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방법이 있긴 할까 싶다. 어쩌면, 우리가 왕의 목을 치고 가져온 모든 세상도 결국은 매트릭스 안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모피어스가 억지로 내게 빨간약을 먹인 기분이다. 사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큰 체제니, Insurgency 니 뭐니 다 매트릭스랑 다를게 뭐냐 싶다. 그러니 어서 빨리 나와라 Neo!라고 외치고 싶고, 이러니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나 싶기도 한다. 


우버를 지우자라는 글이었던가. 니체의 말이 나왔다. 심연을 보는 자, 심연을 닮게 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가 떠오른다.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져가고 있다고 외치는 요한. 어쩌면 이 글은 우리 지성이 모여서 만들어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장치 속에 자라나고 있는 괴물을 찾아낸 글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몬스터> 중


분명한 것은, 이 Insurgency와 지금의 세상, 체제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버를 지우면 리프트(Lyft)가 있긴 하지만, 그건 약간 지엽적인 문제이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세상도 어쩌면, 아니 아마도 Twin Insurgency를 만든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방법이 있나 싶은데. 그러나 한 가지. 우리는 이 문제를 좇아야만 한다. 이게 일시적인 반동인지, 체제에 부수한 것인지 - 아직 우리는 단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문제의 원인과 별개로 우리는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아니,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방법으로는. 그거 말고, 우리는 우리가 존귀해야만 하는 이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존귀함을 위하여 더 세게 요구를 해야 한다. 


중국이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롯데'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드러내고, 국민들은 그것을 따라 불매운동을 하는 것 같더라. 이제 그게 국가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행동으로만 바뀌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이 괴물을 좇아가면서 그것을 기록하고 - 그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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