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n May 14. 2017

광주

2013년 그리고 2017년

2013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행사를 보고.

그리고 2017년에 고쳐 쓰다. 




5.18. 금남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관계되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깃든 날일 수 있고, 그와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는 2013년에는 연휴의 한 날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냥 일하는 날일 수도 있다.


기념일이란, 그리고 과거라는 것은 어차피 현재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 대한민국 사람으로 한정 짓더라도 그들 모두에게 이 날을 기리고, 슬퍼하라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을 어떤 자리에 모실 수는 있다. 다만, 그 사람들에게 어떤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에게나 부르기 싫은 노래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애국가가 무섭다. 누군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겠다, 공식적으로 제창하게 못하겠다 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나는 애국가가 싫다. 때문에 그럴 일도 없지만 함께 불러야 할 때도 그다지 부르지는 않는다.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딱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질 않는 것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국가는 특정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애국가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실상 강요한다. 국가에게 그러할 권리가 있는가? 국가는 자신의 구성원에게 자신을 숭배하라 할 권리가 있는가?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국가, 내 아버지 어머니의 희생으로 이뤄진 국가이기에- 나는 그를 숭배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아쉽게도 국가는 이를 강요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의무는 특정한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더욱 크게 요구된다. 지난 18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에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고, 이정희 후보는 공식 선상에서 부른다며 화답했다.  


나는 스스로 이 나라를, 이 사회를, 아니 무엇이라도 사랑하고 싶을 때만 그것을 사랑하고 싶다. 물론 국민은 나라로부터 좋으나 싫으나 많은 것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분명 나라에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사랑하는 정도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채의식에 기반해 있고- 따라서 앞서간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나라를 숭배하고 경배하진 않는다. 내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려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내게 '애국가'를 불러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면 부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애국가'에 가진 부채의식 보다 아직은 5월의 광주가, 6월의 한열이 형의 부채의식이 내게는 더 크다.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으며 배우지도 못했지만  나에게는 크게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 아마도 그네들이 말하는 소위 '빨갱이' 짓에 발가락 한쪽이나마 담았다 뺀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 보다 더 부채 의식을 느끼는 쪽은 -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 들고 소외계층에 대한 것이 있지만, 5월의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은 그 연장선 속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아직 머리가 나쁘고, 공감의 능력이 부족해 애국가가 형성되고 이어져 온 곳까지 닿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 때문에 상황이 주어진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마 나는 기꺼워 부를 것이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대통령에게, 이 나라의 지도층에게 보훈처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강요할 수 있는가. 아니면 왜 그들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거부하는가. 왜 TV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들의 모습을 비춰주지 않는 것인가. 이 노래가 폭력적이거나 잔인해서? 성신여대에서 5월의 광주의 사진을 치워버린 것처럼? 아니면 이 노래가 기분이 나빠서? 마음에 안 들어서 고려대학교에 비치된 사진을 누군가 훼손한 것처럼?  글쎄, 부채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부르지 않았을까. 


그 노래가 이 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도.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 이 노래를 부르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5월의 광주에 부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고 단언해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들이 5월의 광주에 부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이 참여하는 행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란 말인가.  박근혜 씨는 사회 통합과 국민의 행복을 민주화에 희생된 영령 앞에서 말하면서 함께 걸어가자고 말하였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만약 TV 조선과 여타 매체에서 방영되거나 기사로 나아간 '소수'의 의견과 같이 북한군의 소행이거나 반란 행위로 간주했다면 국가의 대표자들이 거기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채의식은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5월의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참석했을 뿐이란 말인가?  2013년 당시 박근혜 씨의 5.16에 대한 인식을 보면서-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에 대한 지점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관대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 5월의 광주에 대한 인식은 그 정도에 머물러 있을까? 그렇다면 당시 서울 지역에서 대학생으로 살았을 국회의원들은? 5월의 광주가 5월의 서울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하기에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모르는 것일까. 나는 확언을 하지 못하겠다. 공부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은 자 무엇을 쉬이 말할 수 있을까. 다만, 조금은 아쉽다.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불러지지 않은 곡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언급했던 성신여대에서의 일과 고려대학교에서의 일, 인터넷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위키피디아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일들. 모든 것이 아쉽다.  


다만- 쉽게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라도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일베충으로 불리고, 수꼴로 불리고 어찌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남편, 오빠 언니 누나 엄마 아빠일 수 있고, 어쩌면 나 보다 기부를 많이 하고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미움을 미움으로 되갚는다면 우리는 더 나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2013년에는 아쉬웠던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와, 그에 참석한 당시 대통령 및 다른 이 나라의 대표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참이다. 다만, 계속 아쉬워하겠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나라라면, 굳이 국가가 존재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의문이 든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혹은 존중하지 않는다면 - 삶의 가치를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거나 자신 만을 사랑한다면 일어날 수 있는 결과는 - 내가 아는 한 1년 365일 중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역사적으로 -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다만, 내게 크나큰 부채의식을 주는 오늘만이라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을 해야겠다, 고 생각했었다.


2017년의 5월에 열여덟 번째 날이 다가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은 참석할 것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울려 퍼질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동화 같은 마무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발자국 나간 것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만, 불필요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경계해야겠지. 그래도, 그 한 발자국이, 수년이 걸렸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는 있겠다. 


어떤 순간은 영원을 지배한다. 많은 한국 사람에게 2014년의 봄이 그랬듯. 누군가에게는 1980년 5월의 광주가 그럴 것이다. 2017년 5월 9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그 순간의 의미가 바래는 것을 경계하되, 기억이 흩어지며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처럼, 언젠가 5월의 광주도 축제처럼 민주주의를 노래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고, 우리는 마침내 이겨냈다고 말이다. 


초고: 2013년 5월 18일

퇴고: 2017년 5월 12일

매거진의 이전글 Twin apocalyps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