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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니 Sep 17. 2016

<밀정> by 김지운

경계에 선 사람의 이야기

<놈놈놈>을 극장에서 한 3번 본 것 같다. 서부 활극을 만주에서 펼치다니! 액션부터 연기까지 아주 좋았다. 물론 3번이나 본 것은 영화가 좋아서이기 이전에, 당시에 볼 영화가 별로 없었고, 나는 같이 영화를 봐야 하는 약속이 3개가 잡혀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사이 김지운 감독의 작품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장한 <밀정> 포스터를 보면서 김지운 감독의 일제 강점기 시대 작품? 또 다른 <놈놈놈>인가!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캐스팅이 겹치는 부분도 많고!


하지만 영화는 <놈놈놈>의 서부식 액션 활극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암살>보다도 더. 오히려 영화는 <밀정>이라는 제목답게 정보전, 심리전 즉 스파이물에 가깝다. 게다가, 과한 액션이 빠진, 진짜 스파이물. (그러니까 잠입 액션은 없고, 잠입만 있는) 오히려 무간도에 가까운 느와르 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찾아보니 실제로 감독도 콜드 느와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만든 건, 진짜 딱 한 사람, '송강호'. 그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만, 이렇게 '미묘한' 상황을 얼굴에 띄울 수 있는 배우는 몇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각설. 나는 영화를 즐겁게 보았다. 일단 웰메이드 영화임에는 분명하고, <놈놈놈>처럼 문제를 회피하거나 <암살>처럼 통쾌함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 사람들, 독립 운동가, 친일파 그리고 밀정. 뭔가 건조하게 그려 나가면서 주제를 펼쳐 나갔다.(노골적이지 않게)


영화의 주인공인 '이정출' 이란 캐릭터는 황옥이라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혼란한 시기, 피아의 구분이 엄청 어려웠으리라. 그리고 친일이라는 것을 어찌 함부로 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야 쉽게 나쁜 놈!이라고 욕할 수 있지만, 개인의 선택은... 글쎄. 영화의 마지막에 이정출의 집에서 '가족' 이 나온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가족에게는 비극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이미지. 1920~30년대 경성, 상해 그리고 열차의 이미지는 흥미로웠다. <놈놈놈>이나 <암살>에서 혹은 <아가씨>에서도 나오는 이미지들의 반복. 서구 문물이 들어오고, 서양인들이 들어오지만 과거의 복식은 남아 있는 상태. 첫 장면의 기와집 속 총격전 씬도 그랬다. 


우리가 그동안 일제시대를 절대적인 악과 선의 대결로만 그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상당 부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겠지만) 그게 놈놈놈 시점에서 많이 깨졌던 것 같다. 나는. 나쁜 놈과 좋은 놈, 그리고 이상한 놈 모두가 그저 시대의 풍랑을 이겨내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느꼈으니까. 이번 작품에서도 의열단원들에 비해서, 밀고하고 죽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뭐라고 할까, 리얼리티를 느낀 편이다. 의열단원들은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지 뭐.


뭐 꼭 따지자면 폭탄 테러에 있어서도 분명 선한 사람들도 죽이지 않았을까. 대한 독립을 위해서 테러리즘은 필연적이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암살>에서는 그래서 관계없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졌지만 <밀정>에서는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지는 않았다. 뭐 중요한 포인트도 아니었으니까. 


법정 씬은 <암살>의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도 반민특위가 반토막 나서 운영되면서도, 자료가 없는 지점에서의 친일 구분이 어려웠다고 하니까. 참,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지금도 그렇고. 특히 '이정출' 캐릭터의 원전인 '황옥' 경부의 경우에는 6.25 동란 즈음 납북된 것으로 보여서, 자료가 빈약하여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그의 자식이 한 말은, 그건 아버지밖에 모르지 않겠냐 하고. 


결국 영화는 배우 '송강호'와 아직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황옥'이라는 사람의 스토리로 완성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경계에 선 사람의 이야기와 심정을 송강호라는 도화지 위에 잘 담아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그 사람에게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 임시정부 시절에 왜 일본으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그런 의미에서 <무간도>를 다시 보았다. (결국 난 이 영화를.. 몇 번째 보는 거지..) 경계에 선 사람의 고뇌에 대해서 이렇게 잘 표현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다. 1편밖에 다시 보지 못했지만(시간 상) <무간도 3>에서 유건명(유덕화 분) 이 본인은 착한 사람이야!라는 정신 붕괴를 겪는 것 까지 쭈욱 이어지는 이미지. 


뭐 그렇다고 이 영화가 꼭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처럼 영화 말미의 장면들이 사족처럼 느껴졌지만 그 나름대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자체로 봤을 때는 덧붙임 같은 장면들이지만, 그 덧붙임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속에서도 메시지 하나만큼은 의미가 있으면 되었지 뭐. 아쉽지만 괜찮았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인 책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관심이 가지만 피했던 어두운 시기의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고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사족 1. 예전에 우리가 일제 강점기나 민주화 시기에 태어난 청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는 손톱을 뽑기도 전에 동지를 다 불어버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참, 감당하기 어려운 적과 공포 앞에서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생각하면.... 민족주의에 가까웠겠지. 그리고 그 민족주의가 다시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하다. (애초에 일 제국주의도 민족주의적이니... 허 참)


사족 2. 아쉬움. 그래도 <놈놈놈> 같은 액션 활극을 김지운 감독이 다시 찍어주었으면 한다. 언젠가는. 이런 영화도 좋긴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영화를 다시 찍을 사람이 있을까 싶으니까. 


사족 3. 김지운 감독은 철덕인가? 연상호도? 사실 봉준호도 그렇고.. 이 철덕들..


사족 4. 이런 형태로 드라마로 제작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중 합작으로 상해 만주 등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나온다면.. 사실 Naughty dog 스타일로 게임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엄청나게 아픈 과거이지만, 반복돼서 현재로 끌어올려야 하는 이야기들이니까.


사족 5. 변호인의 마지막 법정 씬과도 겹쳐 보이는 지점이 있다. 배우 송강호의 힘.


사족 6. 다음에는 민주화 시기에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기도 한데, 이제 이것도 영상화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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