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5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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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6: 아이디어는 싸다, 실행은 더 싸다 를 읽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47: AI 가 SaaS 를 붕괴시킨다, 뉴욕 증시, 클로드 효과에 붕괴 를 읽고
SaaS(Software as a Service)는 지난 수십 년간 기술 산업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비즈니스 모델로 군림했다. 한 번 구축한 코드를 추가 비용 없이 무한히 복제하여 전 세계 시장에 배포하는 구조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 유례없는 고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최근 관측되는 시장의 징후들은 이 견고한 성벽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생겼음을 시사한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기존 기능을 개선하는 보조 도구에 머물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소유하고 소비하며 배포하는 방식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이제 시장은 규격화된 기성복 같은 소프트웨어 대신, 인공지능을 통해 기업의 특수한 맥락에 100% 최적화된 도구를 실시간으로 연성해내는 '분위기 코딩(Vibe Coding)'의 시대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현재 시장이 겪고 있는 진통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침체가 아니라 'AI 산업화'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의 부작용이다. 엔비디아(NVIDIA)를 필두로 한 GPU와 서버 하드웨어 인프라 산업은 여전히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인프라 위에서 소프트웨어를 구워 팔던 전통적인 진영은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오라클(Oracle)과 협력하는 OpenAI 진영조차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고도 그에 걸맞은 ROI(투자자본수익률)를 증명하는 데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적 응집도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AGI(범용 인공지능)에 근접한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기존 SaaS가 차지하던 시장 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범용 에이전트가 기업의 데이터 스키마를 스스로 이해하고 API를 직접 제어하기 시작하면, 사용자가 매일 마주하던 개별 SaaS의 UI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에 불과해진다. 결국 AI 버블의 상당수가 꺼지는 과정에서, 단일 기능을 대행하던 수많은 소프트웨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단순히 '더 빠른 자동화'나 '편리한 워크플로우 대행'을 내세우는 SaaS는 더 이상 경제적 해자를 유지할 수 없다. 규칙 기반(Rule-based)의 자동화와 단순한 업무 대행은 범용 지능이 상용화되는 순간 그 가치가 급격히 희석되기 때문이다.
지능 자체가 저렴한 원자재(Commodity)가 되는 시대에 소프트웨어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팔란티어(Palantir)가 고집해온 '온톨로지(Ontology)' 접근 방식의 진가를 재평가해야 한다. 팔란티어는 단순한 기능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부의 흩어진 개체와 속성, 그리고 그들 사이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정의하는 지식 체계 자체를 설계한다. 이는 인공지능 모델이 비즈니스의 맥락을 오해하지 않고 정확히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디지털 지식의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예를 들어, 제조 공정에서 특정 원자재의 수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단순한 재고 부족을 넘어 전체 공급망과 물류 비용, 그리고 최종 고객의 인도 시점과 수익성에 어떤 연쇄 파동을 일으키는지 데이터로 구조화하는 작업은 단순한 코딩 그 이상의 영역이다. 이러한 지식 체계는 단순히 거대 언어 모델(LLM) 하나를 돌린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고 공정이 복잡한 제조 시설이나 대규모 물류 시스템처럼 현실 세계의 제약 조건이 강력한 도메인일수록 온톨로지의 힘은 압도적이다. 이는 인공지능의 성능 문제를 넘어, 현실의 복잡성을 인공지능이 이해 가능한 데이터 언어로 번역하는 '설계의 능력'에 가깝다.
그러나 온톨로지 접근 방식이 모든 산업의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대목이 존재한다. 온톨로지 구축 과정에는 여전히 도메인 전문가와 엔지니어의 깊은 개입이 필수적이며, 이는 대중적인 SaaS가 누렸던 무한한 확장성(Scalability)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결국 '하이 터치(High-touch)' 컨설팅과 자동화된 소프트웨어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한 이 모델이 범용 AI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향후 시장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만약 가까운 미래의 AGI가 기업의 비정형 데이터를 스스로 훑어보고 온톨로지 체계마저 자동으로 추출(Auto-discovery)해내기 시작한다면, 팔란티어가 공들여 쌓아온 지식의 요새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장의 미래는 결국 두 가지 극단적인 방향성 사이의 충돌로 결정될 것이다. 하나는 견고하게 설계된 '시스템(System)'이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을 장악하는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유연하게 처리하는 '범용 지능(General Intelligence)'이 모든 중간 계층을 삼켜버리는 모델이다.
전자의 경우 소프트웨어 기업은 기업의 비즈니스 OS로 진화하여 대체 불가능한 지식의 권위를 확보해야 하며, 후자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오직 인공지능 에이전트에게 데이터를 공급하는 인프라 층위로 격하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무엇을 대신 해주는' 대행업으로서의 소프트웨어 시대는 막을 내렸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산업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아키텍처는 사용자가 정의한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의 지능적 판단을 뒷받침하는 '지식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들이치는 시장에서, 우리 소프트웨어가 AI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고유한 비즈니스 온톨로지를 확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지능의 상용화에 휩쓸려 나갈 껍데기에 불과한지를 냉정하게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다가올 AI 시대의 생존과 도태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