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95/365)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55: 나는 왜 일하는가? 에 이어서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당시엔 Dreamer와 Builder의 구도가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 꿈꾸는 소수와, 그 꿈을 구현하는 다수. 리더가 Why를 제시하면, 구성원들이 그것에 inspire되어 움직인다는 구조. 당시의 나는 그 구도 자체엔 동의하면서도, Builder들의 현실에 대해 좀 치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스프레드시트가 나왔을 때를 생각해본다. 그 전까지 재무 모델링은 수학적 직관이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었다. 숫자를 다루는 감각 자체는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능력은 별개였다. 엑셀은 그 간극을 없앴다.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들 수 있게 됐다. 산업이 바뀌었다.
지금 LLM이 코딩에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이다. Claude Code를 열고,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로 풀어놓으면 동작하는 무언가가 나온다. 3D 프린터는 형태를 민주화했고, 로보틱스는 점점 그 아래 레이어까지 내려오고 있다. 한 번에 쫙 되진 않겠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Builder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그러면 Dreamer의 역할은 사라지는가?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무엇을 만드느냐'의 차별점은 희석된다. 결국 남는 건 '왜 만드느냐'다. 시네크가 2009년에 한 말이 2026년에 더 유효해지는 아이러니. Builder가 Dreamer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 그게 자동으로 목적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도구의 민주화가 방향의 민주화는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Why에 대한 질문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예전엔 Why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있는데 내가 아직 못 찾은 것. 하지만 지금은 만들어가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으로, 계속. 모르겠다는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지켜보고 패턴을 읽는 방식으로.
다만 한 가지 함정은 경계한다. 목적성을 위한 목적성. 그럴듯한 미션 문장을 다듬는 데 에너지를 쓰다가 정작 아무것도 못 만드는 것. Why를 언어화하려는 노력과, 지금 몰입되는 순간을 그냥 따라가는 것 — 이 둘은 다르다.
억지로 이유를 찾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순간에 실마리가 있다고 요즘은 믿는다.
꿈을 꾸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아니, 이제 더 중요해졌다. 다만 꿈꾸는 게 소수의 특권이 아닌 시대라면 — 꿈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 더 구체적이고, 더 솔직하고, 덜 그럴듯한 꿈.
나의 Why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의식하면서 가고 있다. 그것으로 지금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