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보다는 아빠로 기억하고 싶다.
아빠와의 기억을 어렸을 때부터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동아마라톤을 뛰기 위해 준비했던 순간, 가족 넷이 스키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빠와의 말다툼, 스키장 주차장에 차가 멈추자마자 아빠가 뒷문을 열고 내 멱살을 잡았던 장면. (우리 모두에게 다행히, 주먹은 날라 오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아빠는 일하느라 바쁘시고 나도 친구들과의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절이라 딱히 함께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10여년은 스킵하고 나는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된 후의 기억은 내가 훈련병일 때 면회를 오셔서 눈시울을 붉히셨던 얼굴로 시작한다. 그 다음 기억은 내가 일병일 때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서럽게 우시는 아빠의 뒷모습으로 이동한다. 아빠의 울음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현재 나와 아빠의 관계처럼 아빠도 ‘아빠의 아빠’인 할아버지와 그리 친밀하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네 식구와 위아래층 혹은 같은 집에서 지내셨다. 그 기간 동안 각자의 생활 습관들이 서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불편함은 상대방에 대한 퉁명스러움 이어졌다. ‘담배 좀 끊으세요’ ‘설거지 이렇게 할거면 그냥 하지 마세요’ 나도 거의 매일 할아버지께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대화하는 모습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 아빠가 할아버지 영정사진 밑에서 아이처럼 울고 있다. 죄송함과 후회가 섞인 눈물일까. 나도 언젠가 아빠의 사진 밑에서 저렇게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두려움에 아빠와 가까워지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왔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아빠와의 가장 뚜렷한 기억은 어깨동무를 했던 순간이다. 버스로 환승하려고 지하철에서 내리면서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기다려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가족 카톡방에 ‘집 근처에 계신 분 버스 정류장으로 우산 좀 가져다 주실 수 있을까요?’ 메시지를 남겼다. 마침 근처에 계시던 아빠에게 전화가 왔고 10분쯤 후 우산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나셨다. 집에 들렸다 오신게 아니어서 우산은 쓰고 계신 것 하나 뿐이었다. 나는 우산을 넘겨 들고 아빠는 자연스레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셨다. 쌀쌀한 날씨 탓이었을까 아빠의 팔이 닿는 순간 찌릿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빠와 어깨동무는 스무살 초반 가족사진 촬영 때 이후로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문득 내가 아빠의 어깨동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색하기보다는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