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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브 Jan 15. 2019

나는 오늘 버스를 일렬로 타지 못했다.

이중적 동조자

어디를 다녀오든 마지막 환승은 2호선 강변역 근처 버스 정류장이다.

강남역과 같이 버스를 타는 사람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은 지역은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다른 지역의 마을버스 정류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귀가하며 애용하는 그 정류장은 거의 줄을 서지 않는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며칠 전 처음으로 그 정류장에 10명 남짓의 예비 탑승객들이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일렬로 늘어선 낯선 풍경에 합류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번째 사람부터 줄을 만들기 시작하면 뒤에 사람들도 모두 줄을 서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그날 처음으로 탑승객 모두가 버스 앞문으로 한 명씩 들어가는 경험을 함께 했다.

(평소에는 버스 뒷문으로 탑승하는 분들이 꽤나 많다)


며칠이 지난 오늘, 퇴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어김없이 그 정류장에 다다랐다.

세 분 정도가 한 줄을 유지하며 서계셨고 다른 두 분은 추위를 피해 뒤쪽에 자리하고 계셨다. 나는 네 번째로 그 줄에 합류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5분의 시간 동안 내 뒤로 여섯 분이 일렬 만들기에 동참했다.


"앞에 서너 명이 줄을 서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줄이 만들어 지는구나"


대학생 때 심리학 관련 강의에서 들었던 동조 심리가 생각났다.

유튜브를 통해 해당 심리와 관련된 재밌는 실험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 YouTube>

위 영상을 통해서도 나보다 앞선 서너 명의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버스를 일렬로 타지 못했다.

내 앞에 있던 분이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가장 앞으로 나가 버스를 타버렸다.

그 분이 앞으로 나가는 순간, 일렬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앞다투어 버스에 먼저 오르기 위해 자리를 차지했고 뒤쪽에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은 뒷문을 통해 앞쪽 사람들보다 빠르게 버스에 올랐다.


"서너 명이 만들어 놓은 동조 심리도 단 한 명의 이탈자로 인해 깨져버릴 수 있구나"


특히 그 이탈자의 행동이 나에게 피해 혹은 손해를 끼친다고 여겨지면 더욱 빠르게 그 동조의 틀은 붕괴되어 버린다.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것은 나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도덕적, 상식적으로 올바른 일이다.

허나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너무나 쉽게 동조하거나 매우 어리석게 동조를 깨버린다.

친구들 서너 명이 한 친구를 괴롭히면 나도 옆에서 괴롭히고

직장 동료 서너 명이 부하 직원을 성희롱하면 나도 슬쩍 손을 얹고

5년 동안 꾸준히 하던 단체 기부를 포기하고 로또에 당첨된 친구를 부러워하며 매주 복권을 구입하고

본인을 포함한 팀원들이 좋다고 생각한 기획을 팀장의 한 마디에 별로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나라도'라는 다짐으로 동조하며 따라야 할 것들도

'나부터'라는 용기로 깨 부셔야 할 동조들도 많다.


올바른 행동에는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동조를 이끌어내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에는 적극적으로 동조를 깨는

이중적인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


*라멘집에서 하이파이브는 하지만 웃통은 벗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

*타이틀 이미지 © 구찌코리아 - 코코 카피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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