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가 더더욱 건강해지길 바라며
"다 끝나고 만나면 뭐해 미리 만났어야지
막내사위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종진아 나 어떡해 어떡해"
지난 주 작은 외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언제나 미소 가득하시던 작은 외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보자마자 눈물, 콧물을 쏟으시며 우리 엄마를 한 동안 껴안고 흐느끼셨다.
동생을 먼저 보낸 우리 외할머니는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셨지만 하루하루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항상 에너지 가득하시던 할머니는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힘들다.'를 입 밖으로 자주 내셨다. 며 칠 전에는 역삼동에서 혼자 지내시는 할머니를 걱정하며 엄마가 이천집에서 올라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셨다. 좀 나아지셨나 싶었는데 다음 날 오후에 친구 분과의 약속을 취소하시고 그 날 저녁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 분께서 이른 저녁까지 통화를 하셨다기에 일찍 주무시나 싶었던 엄마는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할머니가 걱정되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할미가
어제밤부터 전화아받아
다들 전화해보고
갈수잇는사람'
잠결에 바로 외할머니를 검색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 않고 바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할머니가 쓰러지셔서 지금 응급차 불렀어요."
엄마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역삼동으로 향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계속 생각나 가슴 부위가 계속 저려왔다. 대부분 병원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 응급차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행히 순천향대학교 병원 응급실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역삼동으로 향하던 차를 한남동으로 돌렸다. 응급실은 보호자 1명만 출입이 가능했고 먼저 할머니를 모시고 응급실에 도착한 사촌 동생 승렬이와 통화로 현재 상황을 전해 들었다.
"발견이 너무 늦게 되서.. 뇌경색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고 하세요.."
엄마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릴때 수척하던 엄마의 얼굴. 엄마, 외삼촌, 이모들이 자책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뇌졸증, 뇌경색을 네이버에 검색하며 승렬이와 할머니 상태를 계속 주고 받았다. 삼십분 후 동생 신영이가 도착했고 한 시간 후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다. 아까 떠오른 엄마의 얼굴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엄마가 서둘러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힘들어 하는걸 보는게 이렇게나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자신의 엄마가 응급실에 누워있는 엄마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 생각에 내 가슴 통증이 조금 더 심해졌다.
오늘, 내일 더 악화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가족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 뿐이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도움이 될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그 슬픔이 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으로, 금전적으로 그리고 주변에 의사나 변호사 등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있냐 없냐는 사실까지도.
할머니 우뇌는 뇌경색이 진행되어 왼쪽 신체 마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더이상 악화되는 증상은 없었고 조금씩 의사소통을 늘려가며 기력을 회복하고 계신다. 벌써 중환자실에서 씩씩하시다고 소문이 났다는데 역시 80대 후반에도 운전하고 강원도까지 다녀오시던 우리 할미답다.
아픔은 서서히 그러다 순간적으로 우리를 휘감는다. 언젠가 찾아올 줄 알면서도 영원히 안 올 것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 끝나고 나면 무슨 소용이냐는 작은 외할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건다. 아픔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