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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Nov 15. 2019

글로벌 창직가 웨이

스스로 길이 되는 삶

"글로벌창직 1인 연구소 열었습니다."  퇴사 후 인사 겸 창업 알림 문자를 돌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답을 보내 관심과 격려를 보내줬다. 그중에서는 공동 사업을 제안하는 사람, 자신의 정년퇴직 후 작업실 공유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문자가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꼭꼭성공하세요. 좋은 창작연구실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의복이함께하시길." 어머니였다. 연로하신 부모님 앞에 "나이 들어 퇴사해 괜한 걱정을 끼쳐드린 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창작'. 아마도 창직이란 단어를 잘 못 이해하신 것 같았다. 기존에 없는 직업이나 직종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직'이란 용어는 아직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설어 보인다. "창작이라..., 그래" 그 이후 직업을 짓는 창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쓰는 글이 직업이 되고, 세계로 나가는 길이 되는 글로벌 창직가가 되는 것이다.


외국어 전공자들의 프로페서 X가 되고 싶었다.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프로페서 엑스. 어릴 때 가족과 다 함께 극장에서 본 첫 영화가 ET여서 그런지 공상과학영화가 좋았다. 특히, 우연히 본 엑스맨 캐릭터에 매료됐다. 눈에서 불을 뿜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간을 넘어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초능력에 환호했다. 여기서 프로페서 엑스는 보통 사람처럼 별볼일 없어 보였지만, 모든 엑스맨들의 정신 세계를 통합하고 영향을 끼치는 텔레파시 능력자였다. X-DNA(유전자)를 가진 돌연변이들이 자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고 인류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외국어 전공자들이 바로 이 엑스맨들과 같은 능력자 될 수 없을까.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없는 다른 언어와 문화 DNA를 가진 능력자 말이다. 이종 문화 매개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국제 인재들의 활동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스스로 한때 외국어를 전공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뭔가 싫어서 한 퇴사의 동력은 얼마 못 간다. 그래서 "회사 밖에서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퇴사하라"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퇴사 후 5개월이 넘어가자 여태껏 우려먹던 '퇴사', '분노'라는 에너지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글쓰기도 시들해졌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점점 원래 하려던 본업, 글로벌 창직 관련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아이와 발리에서 한달살기'라는 책이 손에 잡혔다. 이 책을 쓴 김승지 씨도 15년 된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 한 달 살기에 도전했다. 세 아이와 함께 바로 발리로 떠났고, 이 경험을 엮어 책까지 내고 새 직업을 만들었다. 나도 마침 내년부터 한달살기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전에 직업적으로 매년 2~3회 정도 해외출장을 다녔지만, 이때부터 사실 내 여행 DNA는 죽어있었다. 호기심이나 흥미를 잃고 의무적으로 가는 여행은 이미 여행이 아니었다. 이 DNA를 다시 살려야 했다.


한달살기 책 내용과 별도로 관련된 창직 아이템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댓글에 한 '한달살기러'의 댓글이 달렸다. 퇴사 후 얼마 전 뉴욕 한달살기를 하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여행 관련 여러 직업이 눈에 쏙 들어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점점 많은 2,30대가 회사를 그만두고 한달살기 하러 떠나는 트렌드가 두드러지는데도 한국의 치열한 경쟁사회 분위기가 한몫하는 것 같아요." 26개국 80여 개 도시를 여행 중이라는 소개 글과 하는 활동에도 관심이 갔다. 이런 경험을 살리면 취업도 그렇지만 충분히 자신만의 일을 꿰차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달살기 창직의 무한한 가능성이 보였다.

<해외 한달살기 연계 창직의 가능성>

해외 한달살기는 글로벌창직의 베이스 캠프다. 해외 생활문화를 익히고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볼만한 시간이다. 스쳐 지나가는 단기 여행과는 달리 조금만 준비하면 현지 커뮤니티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이 책 저자의 아이들은 단 2주라도 현지 시즌 스쿨에 참여해 여러 나라 아이들과 교류하며 현지인의 생활방식을 맛볼 수 있었다. 한 달의 시간이면 자기 취향의 여행을 즐기면서도 사업 아이템 탐색, 현지 관계자 면담 및 파트너 발굴, 사업시스템 구축 등을 충분히 시도해볼만 하다.

한 달 사는 기간 동안 짬을 내 사업 개발을 병행하는 것 말고도 여행 자체를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여행 경험을 지식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게 여행기다. 이 책 저자처럼 한 달 살기 과정을 책으로 내는 것이다. 물론 사전 자료조사부터 일정짜기, 각 분야별 관계자 컨택, 숙소나 식당, 문화프로그램 예약 등 알아볼 게 많겠지만 그것 자체가 고스란히 자신의 콘텐츠가 된다. 각 자의 취미나 관심사, 선호 지역도 다 다르기 때문에 한창 떠오르고 있는 한달살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자기만의 장기 여행 컨셉을 잡고 한 번 시도해보면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글이나 강연으로 다른 사람에게 여행 이야기와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다. 상담을 하거나 관심자 그룹을 모아 동일한 유형의 여행을 주선해줄 수 있다. 이런 전반적인 과정 자체를 직업으로 삼아 일할 수 있도록 돕는 한달살기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한달살기로 직접 또는 파생 가능한 창직 유형은 다음과 같다.

- 해외 한달살기 작가 : 순수 여행 차원을 넘어 기획된 한달살기로, 자신의 글로벌창직 아이템을 해외 한 달 살기로 찾고 책쓰기 등으로 지식상품화. 다양한 주제와 지역 해외 한달살기 책을 쓰는 전업 작가 또는 해외 관련 업무와 병행한 부업 작가로 활동

- 현지 생활경제문화 강연가 : 현지 생활에 밀착된 해외여행을 통해 조금 더 깊은 관광, 경제비즈니스, 문화 등 현지 정보를 찾고 자신의 전문성과 결합해 강의 진행

- 한달살기 여행상품 개발자 : 장기 여행에 특화된 해외 지역별, 분야별, 대상별 한달살기와 문화, 체험, 교류가 결합된 파생 여행상품을 기획하고 소개

- 한달살기 코디네이터/ 창직 코치 : 여행객별로 최적화된 한달살기 방법을 제시하고, 한달살기를 통한 자아실현, 창직 아이템 개발 등을 지원

- 장기 여행 생태계 구축관리자 : 현지 장기 체류 교민이나 여행자로, 정기적으로 오는 한달살기 여행객을 케어하고, 현지 숙박, 음식, 문화, 사업 파트너 발굴 및 여행객 맞춤형 정보 제공

- 글로벌 여행창직 네트워커 : 숙박업소나 여행사, 서비스 제공자 등 해외 한달살기 거점과 장기 자유 여행객 간 네트워킹과 창직, 사업 협력을 중개

- 해외 단기 업무 알선자 : 해외 한달살기 여행객을 인력으로 활용해 현지에서 조사나 간단한 출장 업무, 현지 파트타임 잡 등을 수행하기 원하는 국내 중소기업이나 현지 회사 등을 소개

이외에도 한달살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마케터, 여행정보 제공자 등 다양한 직업이 가능하다.


과거 책쓰기 폴더를 열었다. "외국어 활용 100단", "글로벌 퍼포머" 등의 습작에 적어둔 다양한 글로벌 직업 연계 활동들이 쭉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조금 더 살펴보고 구체화하기로 했다.

<글로벌 창직, 직업 연계활동 예시>

- 외국어 활용 : 온/오프라인 외국어 강사, 외국어 활용 코디네이터, 외국어 학습코치, 자체프로젝트 기획 통번역사, 외국어 실시간 학습 콘텐츠 구축가 등

- 글로벌 일반 : 글로벌 역량개발 전문가, 글로벌 이슈별 전문강사, 국제교류 코디네이터, 소규모 취향별 국제행사 기획자 등

- 해외 진출 : 해외 협력프로젝트 개발, 해외 선도기술 벤치마커, 국내 분야별 우수기술 중개인, 해외 직업탐방 및 취창업 가이드, 해외 방문자 케어서비스, 세계일주 클럽, 문화교류 기획자, 특수여행 콘텐츠 제작자 등

- 다문화/외국인 지원 : 다문화 커뮤니케이터, 단기 외국인 방문객 네트워커, 장기 국내체류 외국인 지원가, 다문화 카페 복합문화공간, 내외국인 교류행사 기획자 등

-경제/비즈니스 : 글로벌 비즈니스 코치, 해외 투자 중개인, 해외 부동산 개발자, 해외 콘텐츠 수출입 중개인, 글로벌 창업 아이템 개발자 등


이전 직장은 국제활동의 성지, 속된 말로 종합 백화점이었다. 문화, 경제, 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국제교류재단, 국제협력단, 관광공사, 외국인/다문화지원센터, 문화재단, 교육청, 경제진흥원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공공기관들이 하는 국제 사업들을 우리 회사는 조금씩 다 하고 있었다. 가끔 "너네 뭐 하는 회사냐?" 질문을 받을 때면, 그때그때 맞는 답변을 만들어낸다고 골머리 썩곤 했다. 전국에서 거의 첫 번째로 만들어진 기관인 만큼 사업 경험도 풍부했고, 선도자 역할을 했다. 경기도, 전라북도, 제주도 등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기관을 만들 때면 어김없이 우리 기관을 벤치마킹해갔다. 심지어 모든 것이 앞선다는 서울 시청에서도 찾아와서 보고 갔다. 우리 기관은 모든 세계와 분야가 하나 되는 초융합, 네트워킹 시대에 새로운 가치와 혁신을 만들어낼 주요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설립 초기부터 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과 문제였다. 다양한 협력 주체들을 이어주고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쌓는 역할이었던 만큼 직접적인 경제 성과가 부족했던 것이다. 퇴사 직전까지 이 문제 해결에 온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답을 퇴사 후 새로 하는 '글로벌 창직'에서 찾기로 했다. 이제까지 모든 국제 경험과 지식을 통합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직업을 창출하는 활동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활동에 이름을 붙였다. "글로벌 창직가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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