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섭 Dec 21. 2019

유라시아 바이크 횡단 어때?

요소별 글로벌 창직- 교통편

"내년도에는 유라시아대륙횡단 참여하고자 합니다" 오전에 뜬금없는 카톡이 왔다. 알고 지내던 한 지역대학 교수셨다. 이전 회사에 안부 차 들렀다고 했다.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과 연말 인사를 보내왔다. 회사를 그만둔 지가 거의 1년인데 아직도 이런 연락이 온다. 감회가 새로웠다. "내년에도 유라시아 사업을 하긴 할 모양인가 보구나." 올해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3년 했으면 할 만큼 했다", "성과가 뭐냐?", "내년 예산은 끊길지 모른다" 등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이전 직장 대표 사업 중 하나였던 유라시아 대장정 파견사업 말이다.


유라시아 사업은 통일시대 초미의 관심사다. 남북 관계에 따라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한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곧 북한과의 교류 물꼬가 터질 것 같았다. 북측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일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올해 2월 말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다. 지금은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탓하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이 핵 미사일 시험을 언제 재개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쪽에서는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등 장밋빛 전망이 끊이지 않는다.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이 사업이야말로 한반도의 미래 그 자체다. 실제 이뤄지는 순간까지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올해 초까지 유라시아협력센터 팀장을 했다. 지자체 최초로 4년 연속 유라시아 대장정 팀을 파견한 사업 현장에 있었다. 특히 올해는 북한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꿈을 꿨다. 1만 2천 여 Km, 7개국 11개 도시를 50여 명이 지나는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기차부터 버스, 비행기 육해공 모든 탈 것을 망라하는 여행자의 로망을 설계했다. 이 사업이 있기까지 10여 년 동안 홀로 러시아 교류를 담당하며 기틀을 닦았다. 유라시아 사업은 직장생활의 최대 결실이자 평생의 기업, 자식 같았다.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사업을 잉태했기 때문이다. 사명 중 하나도 남북러 국경 협력을 통해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것이었다.




유라시아 횡단은 대륙시대의 맛을 미리 보여준다. 회사를 나오고도 이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준비 중인 한-러협력협회 사업의 한 파트로 넣어뒀다. 그러다 최근 동기 송년모임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대륙 횡단은 어때?" 그 친구는 바이크가 취미였다. 사업 고민 중에 최근 짬을 내어 혼자 동해까지 오토바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유라시아 횡단도 해보고 싶다." 오토바이 통관 대행과 현지 1일 숙소, 투어 일정을 잡아주는 사업자도 안다며 말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본 바이크 단체 여행, 미주 슈퍼카 알선 등도 그 사업자의 아이템이라고 덧붙였다. 골치 아픈 수속은 모두 맡기고 여행만 즐기고자 하는 수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례를 조사하다 적잖이 놀랐다. 정말 많은 이들이 이미 오토바이로, 자전거로, 자동차로 2만 Km가 넘는 유라시아 대륙을 드나들고 있었다. 러시아를 지나 몽골,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가는 경로도 다양했다. 이들에게 대륙 횡단은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마치 과거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가 유라시아 철도를 타고 베를린 올림픽에 간 것처럼. 저마다 인생의 신기록을 수립하며 반짝이는 금메달을 자랑하고 있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땅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대륙여행 대중화 시대를 미리 보는 것 같았다.


아직 해결할 문제는 있었다. 먼저 높은 비용과 기간, 위험성이었다. 오토바이 입출국 운임, 통관만 2만원이 넘게 들었다. 보통 1인당 총 경비 1천만원, 여행 기간 2개월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오토바이 구입액까지 합치면 비용은 더 커졌다. 오토바이 고장, 사고 등으로 중도 포기자도 있었다. 바이크 대륙 횡단은 주로 혼자 가거나 몇 명의 지인이 함께 다녔다. 유라시아 대장정 때는 지원 경비 절반을 뺀 2~3백만원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었다. 20여 일의 기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동시 이동인원 관리도 문제였다. 유라시아 횡단이 활성화되려면 이 소그룹과 이전 회사에서 했던 단체 여행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장거리 여행의 특성상 교통편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탈것을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즐길 거리로 만드는 것도 관건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창직의 기회를 엿봤다.


<대륙여행 교통연계 창직방안>

탈것 코디네이터 : 오토바이나 탈것을 현지에서 조달해 비용을 낮춘다. 달리기 좋고 쭉 뻗은 길은 오토바이로, 경치 좋은 오솔길은 자전거로, 험한 길은 차량, 일부 구간은 경비행기, 기차 등을 이용하게 한다. 기차 여행의 장점은 살리되 다양한 교통수단 조합으로 단조로움을 피한다. 북극항로 선박 등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탈 거리를 발굴한다. 여행자 그룹 희망 코스별 최적의 교통편을 찾아 표준화하고, 예약, 임대, 수속, 가이드, 사후 처리 등 모든 교통 편의를 일괄 제공한다.


교통거점 네트워커 : 통일 유라시아시대 대비, 현지 교통물류 거점도시 간 관계자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숙박, 음식 등 연고지를 마련해 교통편 제공, 정비, 물자보급, 물류수송 등 복합 지원체계를 마련한다. 여행자 이동 기회를 활용해 연결구간 간 인적, 물적 교류를 활성화하고, 파생 비즈니스를 발굴한다.


장거리 여행창직 코치 : 이동 및 여행 체험을 개개인의 전문영역과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주제별 여행기 언론사 기고 연재, 후원 협찬사 마련, 현지 시장 물류 조사 기업협력, 글쓰기나 강연 콘텐츠 발굴 등 여행경비 보충을 지원한다. 여행자 그룹 간 공동 책쓰기나 역할 분담, 협력 프로젝트 개발을 조율한다.


가장 중요한 노선의 경우, 아래 대장정 루트처럼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을 기본으로 몽골, 중앙아시아 등을 경유하기도 했다. 출발은 오토바이 등 운송이 가능한 동해항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종착지는 독일 함부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중부 유럽이나,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같이 대륙 끝까지 가는 경우도 일반화됐다. 특이하게, 기존 유럽 거주자의 경우 영국에서 출발해 이란, 파키스탄, 중국 등을 거쳐 국내로 들어오는 사례도 있었다. 정말 가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길과 사업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년이면 한-러 수교 30주년이다. 또 얼마나 많은 유라시아 횡단 이벤트들이 나올까. 저마다 자신만의 미지의 대륙을 열고, 미래 세대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광활한 벌판을 오토바이를 타고 쌩쌩 달리는 상상을 했다. 시원한 바람과 푸른 하늘, 울창한 숲과 거친 도로가 쉭쉭 지나갔다. 정해진 궤도만 달리는 기차나 답답한 차 안에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국 땅의 대자연과 낯선 사람들이 툭 터인 공기만큼 친근하게 다가왔다. 끝없이 펼쳐 길을 달리며 연신 '끌라싸따'를 외쳤다. 러시아어로 끝내준다는 말이다.


이제 오토바이 배우는 일만 남은 걸까. 어때요?


유라시아 횡단 함께 갈래요?
매거진의 이전글 AI 이기는 통번역가 미래 역량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