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다. 편 팔은 가지가, 손은 덩굴이 되어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내 생각이 포도의 빛깔과 당도, 크기, 양분을 빚어낸다. 이 포도를 먹는 사람마다 똑같은 포도를 맺고, 포도가지는 30개 60개 100개로 자란다. 포도는 먹으면 먹을수록 늘어난다. 친구들과 함께 실컷 먹고도 온 세계에 충만하다. 이 포도는 글이다. 포도나무와 친구들은 내가 꿈꾸는 글 세상이다.
가끔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한다. 글쓰기는 5년, 10년 직장생활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직장에서 일한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고 싶어서였다. 열매의 속성은 번성에 있다. 하나의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 직장인의 일 경험도 마찬가지다. 성장함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 열매 없는 직장생활은 아무것도 아니다. 직장인의 열매는 회사 목적에 맞는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고객들한테 만족을 주고 모범적인 직원이 되는 것이다. 주어진 직무를 탁월하게 완수하는 것이다. 이 열매는 성과보고서, 직무매뉴얼, 사례발표, 개선제안, 신사업 혁신 아이디어 등으로 확산할 수 있다. 나만 아는 노하우를 직장 동료, 선후배들과 공유하고, 그들을 통해 재생산할 때 열매는 더 풍성해진다. 일 경험과 성과를 직장 밖의 사람들도 활용 가능한 형태로 바꿔 글을 쓴다면 그 가치는 더 커진다. 이게 가능한 사람은 직장 안에 있어도 이미 1인 지식기업이다. 자신의 지식을 체계화해 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 능력의 핵심이 글쓰기다. 글쓰기가 일의 풍성한 결실을 가져온다.
1인 지식기업은 이제껏 쌓은 지식과 경험을 책, 기고문, 강연, 교육프로그램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사전적 의미에서 통신, 금융보험, 사업서비스, 교육서비스, 보건사회복지, 오락문화 관련 지식서비스 6개 업종 프리랜서와 개인사업자 등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1인 지식기업은 작가, 강사, 코치, 컨설턴트 등 교육과 사업 서비스 쪽 직업으로 개념을 좁혀 잡았다. 지식기업의 핵심기술은 글쓰기다. 글을 기본으로 해서 말, 영상 등 각종 매체로 자기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될수록 자신이 전하는 지식의 가치는 커진다. 이런 활동이 곧 직업능력이자 상품이 된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글쓰기 목표 및 방법 찾기, 습관화, 완결짓기, 조력자 구하기 등이 중요하다.
풍성한 열매 맺는 글쓰기 5가지 비결
비결1. 장단기 목표설정
첫 번째는 무엇을 어떻게 쓸지 장단기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1인지식기업의 글쓰기는 업이 되는 효과적 글 쓰기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써둔 글을 모아 책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쓰는 것이다. 글이 자신의 지식상품과 평생직업이 되고, 수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글의 주제는 독자들에게 영감과 도움을 주는 내용(시장성), 자신이 가장 잘하고 평생 업으로 삼을 분야(진정성), 당장 자신의 비즈니스에 써먹을 수 있는 활용도(현실성), 내가 재밌게 진짜 쓰고 싶은 소재(지속성) 등이 최대한 교차하는 영역을 찾을수록 좋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기적인 글쓰기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 글을 써야 한다.
'쉬운 글쓰기'를 쓴 김재욱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결과물은 반드시 장기와 단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글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매일 할 것과 1년 후 마무리할 것, 3년이나 5년, 또는 평생을 둔 계획이 필요하다.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매주 한 편씩 써서 어딘가 게재해 그것이 50~60개가 되면 책으로 엮을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주제나 기획으로 더 장기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자료를 모으며 독서를 하면 좋다. 몇 년 후를 위해 꾸준히 준비해 정식 출판을 할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결과물을 만드는 동안에도 다음 도전 과제를 생각하며 미리 기획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한 가지를 완료했을 때 지치지 않고 여세를 몰아 다음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평생 60권, 30년 동안 매년 평균 2권씩 책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3~4년에 한 번씩 새로운 분야를 정해 연구한 지식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처럼 매년 주제를 정해 독서와 책쓰기를 병행하는 것이다. 올해 연구 주제는 퇴사법과 글쓰기, 글로벌창직 등이다.
비결2. 글쓰기 습관화
다음은 습관화이다. 우선 뭐든 쓰는 것이다. 매일 정해진 분량을 규칙적으로 쓰다 보면 글쓰기가 습관화된다. 매일, 주 1회 등 글 쓰는 주기와 시간, 장소를 정하는 게 좋다. 이전에 회사 다닐 때는 이른 아침 업무 시작 전, 퇴사 직후에는 새벽을 글 쓰는 시간으로 잡았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정신이 맑아 집중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각자의 형편에 맞는 편한 시간에 쓰면 된다. 출퇴근 시간, 퇴근 후 카페 등에서 자투리 시간을 모아 책을 쓴 사례도 많다. 장소는 집이나 직장, 카페, 도서관 등 글쓰기가 가능한 어디라도 좋다.
습관화를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건 의식화다. 독일의 창조적 글쓰기 협회장 루츠 폰 베르더는 그의 저서 '즐거운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를 의식화해보라! 그렇게 되면 시간이 경과하면서 글쓰기는 당신에게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즉, 어떤 특정한 시간에,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글을 쓰게 된다. 예를 들면 촛불을 밝히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글을 쓰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언제 그리고 어느 곳에서 글을 쓰는 것이 편한지 적어보라. 그러면 글쓰기를 확실히 의식화할 수 있다. 좋아하는 만년필에 잉크를 넣고 글을 쓰기 전에 잠깐 동안 조용히 앉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등은 의식화의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러한 의식화는 쉽게 습관화되기도 한다. 무리하지 말고 글을 '계속 써라,' 의식 자체도 즐기면서!" 심리학자와 공동으로 저술한 이 책의 조언은 마음의 저항을 넘어 꾸준히 글을 쓰는 데 실천적인 도움을 준다.
일단 써라. A4 80여 장 정도의 원고 분량만 있으면 책도 낼 수 있다. 내용은 차차 다듬어 가면 된다. "시작이 반, 티끌 모아 태산이다"라고 했다. 오늘 한 장 쓴 글을 세 달 모으면 책이 된다.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 조차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개의치 말고 매일 쓰도록 하라"라고 조언했다니 힘을 내자.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든 잘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글쓰기는 어떤 것인가. 글쓰기 방법은 크게 "자유롭게 쓰기"와 "짜놓고 쓰기"이다. 어떤 사람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써야 글이 술술 써진다. 어떤 사람은 매일 쓸 주제를 미리 정해 놓고 써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적응성과 계획성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글을 꾸준히 잘 쓰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보다 그냥 자유롭게 써보는 것이 좋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고 싶은 것을 주제나 분야를 막론하고 일단 쓰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글을 쓰면 확실히 글을 잘 쓸 수 있다. 그냥 생각나는 걸 쓰면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에세이다. 내 느낌과 생각, 깨달음 등을 일상 경험과 함께 쓰면 된다. 나의 경우도 퇴사 후 에세이는 술술 써졌다. 퇴사의 격한 감정과 겪은 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소재로 썼다. 근 20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누리는 자유는 신선한 경험이자 살아있는 글쓰기 소재였다. 한 달 남짓 동안 80여 장의 초고를 써놓고 환호했다. 10년째 책쓰기 준비만 하다가 드디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완성한 것이다. 출판사 투고도 하고 곧 책으로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내 책쓰기는 멈췄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냥 자유롭게 쓰기에 더해 짜놓고 쓰기가 필요했다.
짜놓고 쓰기는 미리 글 쓸 주제와 목록을 정해 놓고 쓰는 것이다. 책으로 따지자면 하나의 주제에 들어갈 40개의 글 쓸 꼭지, 목차를 미리 정하는 것이다. 각 꼭지는 7-8개 비슷한 분야를 하나로 묶어 5-6개의 장으로 구성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인지, 유사 분야 책의 구조와 반응은 어땠는지 등도 반영한다. 자유롭게 쓴 글은 나만의 독백 수준이 될 때가 많다. 이걸 독자가 필요로 하는 콘텐츠로 바꾸는 것이다. 기존에 같은 주제로 출판된 다른 책 내용, 검증된 이론 등에 내 독창적 관점을 더하면 된다. 여기서 차별화가 된다. 독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글이 써진다. 이런 수준까지 잘 쓰려고 하면 글 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나만의 독백에서 사람들과 공감하는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니까 고민된다. 전문가의 주장을 덧붙이고 글의 신뢰성을 높이려니 힘이 든다. 글을 책으로까지 완성하려면 저자의 개성과 독자의 필요, 상업화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자유롭게 쓰기와 짜놓고 쓰기는 글 쓰는 성향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양과 질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통 책 한 권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100권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책 한 권 40꼭지 분량의 글을 쓴다고 하면 한 꼭지당 2~3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먼저 자료를 찾아놓고 구조를 짜서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글쓰기 진도가 얼마나 잘 나가겠는가. 글의 질은 좋아지겠지만 까딱하면 지치기 쉽다. 반대로 그냥 자유롭게 쓰면 1시간 안에 A4 1~2장을 뚝딱 쓰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조화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기존 유사 글들을 읽은 후 서로 비슷한 점이나 차이 등의 자료를 찾아 한 데 묶어보자. 그러면 한 가지 주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통찰력을 가지고 쓸 수 있다. 이 방법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가설로 만들어 우선 쓰자. 그다음에 전문가의 말이나 관련 사례를 두세 가지 들어 증명할 수 있다면 글의 양과 질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결국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의 말처럼 '다독, 다작, 다상량'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비결4. 작게라도 결과물 내기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결과가 중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몇 번에 나누어 쓰더라도 완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내 글쓰기 폴더에도 쓰다만 글들이 넘쳐나서 말하기가 민망스럽다. 글의 분량이 너무 많아 쓰기 힘들면 짧게 쓰는 것이다. 한 번에 서론 본론 결론이나 기승전결, 결승전 등 글의 모든 구조를 완벽하게 쓰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핵심 되는 한 문장을 먼저 써보는 것이다. 아니면 한 단어를 써도 좋다. 이 단어를 문장으로 완성하면 된다. 기본 한 문장에서 각 단어를 뽑아내고, 각 단어를 또 다른 문장으로 쓰면 된다. 이렇게 풀어쓰다 보면 글의 분량은 늘어나고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A4 2장, 2000~3000자 분량의 1꼭지 글을 한 번에 다 쓰기 힘들면 관련 주제 2~3개로 나눠 쓰면 된다.
화학자 출신 소설가로 낮에 일하고 밤에 글 쓴다는 곽재식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가 책 제목이다. 곽 작가는 이 책에서 "한 권짜리 분량이 될 긴 글 하나를 절반쯤 쓰다가 그만두는 것보다, 차라리 잡지 몇 페이지에 실릴 짧은 글 세 편쯤을 확실히 완성하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글 한 편을 마무리 짓는 일을 몇 차례 하다 보면 그러지 못하면 깨달을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글의 앞부분, 중간부분, 끝부분을 쓰는 일 중에서 어느 대목에서 가장 힘겨워하는지, 마감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지, 글을 쓰는 중에 어떤 일이 생기면 가장 방해받는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해서 얼마 정도 지나면 시들해지는지, 어쩌다가 의욕이 사그라지는지, 사그라진 의욕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반성하며 돌아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고, 알 수 없으니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라고 했다.
끌까지 써봐야만 글쓰기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킨 소설가 나탈리 골드버그도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라고 했다. 작은 글 하나라도 끝을 맺고 계속 쓰면 글이 는다. 글이 늘면 재미가 붙고 꾸준히 쓸 수 있다. 써 놓은 글이 있으면 잘 쓰는 건 시간문제다. 좋은 글이 나올 때까지 고쳐 쓰면 되기 때문이다. 이전에 글을 많이 쓰신 은사분의 글쓰기 비결도 다르지 않았다. 많이 보고 다듬을 수록 좋은 글이 된다고 했다. 수십수백 번을 고쳐 쓴다면 어찌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퇴고 훈련으로 글쓰기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 글쓰기를 반복할수록 점점 더 빠르게 쓰기도 가능해진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글을 쓰고 책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비결5. 조력자 만들기
마지막으로 열매 맺는 글쓰기 비결은 든든한 우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이건 굳이 글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일에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힘이 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글을 함께 쓴다는 건 이보다 더 큰 유익이 있다. 단순한 격려와 힘든 일을 나누는 차원을 넘는다. 마감 시간을 지키도록 서로 간에 약속이 된다. 서로에게 독자가 되어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 글의 내용에서 서로 배우고 도전받는다. 글을 같이 쓰지 않더라도 주변에 가족, 지인 등의 이해를 구하면 좋다. 관심과 응원뿐만 아니라 글 쓸 시간도 배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 초기부터 미약하나마 지금까지 글쓰기를 이어온 데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을 때나 아무런 진전이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마다 글쓰기 강의를 찾거나 새로 모임을 만들어 가며 의지를 했다. '누구나 책쓰기 클럽', '하룻밤 책쓰기 워크샵', '100일 책쓰기' 등이 만든 모임이다. 대단한 성과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떤 모임은 꽤 반응이 좋았다. 일반인으로서 책쓰기 탐구 경험을 나누고 글 쓰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글쓰기가 대중화되고 일반인 출간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자기 글을 이해하고 함께 쓸 사람들을 찾아 오롯이 자신의 책 한 권을 엮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