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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an 26. 2022

빈집 한달살기의 유익과 필수장비

1인 기업형 인간의 멘탈관리_미니멀리즘

혹시 빈집에서 살아본 적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한달살기가 가능할까. 이전에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첫해 어느 가을날이었다. 방만해진 습관을 리셋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1년에 적어도 1-2번은 한달살기 하자" 노마드 라이프를 꿈꾸며 퇴사 후 한 결심도 작용했다. 당시 해외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연고가 있었던 포항을 비롯해 관심지역이었던 충청도 서해권, 강원도 동해권 등을 대상지로 물색했다. 숙소는 자가, 기도원, 게스트하우스 등 가급적 부담 없고 여유로운 곳을 찾았다. 결과적으로 이 첫 시도는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노부모님 무릎 수술도 있고 다른 일정이 걸렸기 때문이다. 방문지도 1곳으로 축소했고 한주 머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첫 '한주살기' 지역은 포항이었다. 마침 경매로 얻은 빈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 수리는 마쳤지만, 임대를 주기 위해 마무리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처음 빈집 경험은 대학 때였다. 신문지 1장 덮고 꼬박 날밤을 샌 기억이 있다. 그때 잠은 제대로 잤는지 모르겠다. 공사 중이라 문은 열려있고 거의 골조 상태로 빈 집이었다. 이 집을 찾은 이유도 황당했다. 자취를 하던 학과 선배 초대로 방문한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다 밤이 늦어 잘 데를 찾은 곳이 그 빈집이었다. 당시 야간 대학생이었지만 낮에는 회사를 다니던 직장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지지리도 궁상 맞고 세상 물정 몰랐을 때였다. 인근 모텔이라도 잡고 잘 생각조차 못했다. 아니면, 돈이 아까웠을까.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빈집은 몰래 나쁜 짓 하느라 중고등학교 때에도 가끔 친구들과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빈집에서 자는 것은 그것과 차원이 다른 얘기다. 요즘도 가끔 빈집에서 잘 기회가 있다. 부동산 경매가 부업이라 전국에 낙찰받은 집 보러 다닐 때가 있기 때문이다. 명도의 기쁨(경매에서 낙찰받은 집을 거주하는 소유자 또는 세입자에게 인계받는 것)도 잠깐, 처음 들어간 집은 수리할 것 투성이다. 빈집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전기, 가스도 끊기고, 물이 안 나올 때도 있다. 이럴 때 하룻밤 묵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집을 두고 모텔에서 잘 것인가, 불편해도 텅 빈 자기 집에서 잘 것인가?


포항 빈집살기는 약간 불편했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극한의 미니멀리즘 체험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한주를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목표는 자연히 오락, 유흥 등을 제거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잡았다. 퇴사 후 처음 세운 직업계획과 현재 상황을 돌아보고, 대안과 실행의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 말고는 할 게 없기도 했다.) 그것을 위한 기본 일과도 정했다. 습관 회복을 위해 10시 취침 및 5시 기상, 운동 정기화를 위해 낮에는 집 앞 강변 걷기, 저녁 스트레칭을 다시 하는 것이다. 그 외 이 경험을 계기로 프로젝트형 한달살기를 구상하고 관련 책쓰기 콘셉트도 잡기로 했다. 주간 계획도 세웠다.


1일차 : 필수물품 구입, 가스연결 신청 등 주거환경 세팅

2일차 : 인근 도서관 알아보기, 기본 걷기와 한달살기 사업 구체화

3일차 : 집 보수 마무리 및 세 다시 놓기, 기본 걷기와 책쓰기 콘셉트 잡기 등

4일차 : 포항 힐링 여행(대표 여행지, 자연 등), 물회 먹기

5일차 : 주변 산책 및 예배, 일정 마무리

6일차 : 복귀 및 가족, 일상 돌아보기


이 계획은 대체로 무난히 이뤘다. 첫날 산 노트 1권을 기록하느라 꼬박 다 채웠다. 빈집 살기를 시작한 이유와 날짜별 일정 및 소감, 깨달은 점, 새 프로젝트와 책쓰기 구상 같은 내용을 빼곡히 썼다. 물회는 못 먹었다. 집 바로 앞 연일 시장 근처에 포항 필수 코스인 물회 집이 있었다. 하지만 간판만 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미니멀리즘 체험 기간이라 그랬을까. 한 그릇 15,000원 하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첫날 구입한 빈집 살기 필수 3종 세트를 다 합친 가격에 맞먹었기 때문이다. 필수 3종은 돗자리, 테이블, 양은 냄비다. 앞에 두 개는 다이소에서 각 5천원에, 냄비는 인근 슈퍼에서 3천원에 샀다. 돗자리는 빈집 바닥을 마구 삐대기 위해서다. 오래 비어있는 집은 한기가 올라올 때가 있고 어지간히 청소를 해도 바닥이 영 꺼림칙하다. 두꺼운 비닐 같이 폭신한 소재로 된 피크닉용 돗자리를 펼치자 방 한 칸이 궁궐처럼 넓어 보였다. 이리저리 뒹굴고, 글 쓰고, 왔다갔다 하기에도 충분한 공간이 나왔다. 테이블은 다리만 끼우면 되는 가벼운 조립식이었다. 밥 먹고, 개인 작업하고 물품 수납하는데 전천후로 요긴하게 쓰였다. 식사는 주로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 약간의 음료와 간식이 다여서 이 상이면 충분했다. 냄비는 간단한 음식을 하거나 물을 끓이는 용도였다. 주로 1회용 컵라면, 커피를 먹기 위해 사용했다. 그 외 얇은 이불 등 약간의 개인 물품을 집에서 가져갔고, 베개는 여행용이나 책 같이 두꺼운 걸 벴다. 이 필수 3종은 지금도 다시 떠날 날을 기약하며 집 어딘가에 보관 중이다.


빈집 한주살기는 여러모로 유익했다. 빈집에서 살아보면 당장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만큼 편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단칸방, 고급 주택을 가릴 필요가 있으랴. 자기 일상에 딱 맞춰 각종 편의시설과 먹고 입고 놀 거리가 즐비한 그곳이 바로 풀옵션 호텔 부럽지 않다. 냉골에서 자다 보면, '지이잉' 돌아가는 새벽 아침 우리집 보일러 소리도 왠지 그리워진다. 빈집만의 특징 또 하나. 집에서 뒹굴거림은 최소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필수 생활환경을 갖추는 과정에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낯선 곳이라 새로운 생각이 막 떠오른다. 딱히 다른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구상과 생각을 정리하느라 한 주 동안 노트 한 권을 다 썼다. 이 기간을 아예 생각 주간으로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평소 생각할 거리를 잔뜩 메고가 빈집에 가득 풀어놓는 것이다. 빈집에서는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습관이 리셋되고, 환경 적응력이 커진다. 또 집 밖으로 나가 자연스레 주변을 살피고, 새로운 활동을 이어갈 의욕이 는다. 이 경험 덕분에 빈집 한달살기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종종 비어있는 공실 주택을 정식 임대 전에 한달살기용으로 단기 대여하는 것이다. 임대인에게는 관리 비용도 줄이고, 여행객은 최소한의 실비로 필수 주거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프로젝트형 한달살기도 시도해볼 수 있다. 한달살기와 인생 목표를 이뤄줄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것이다. 자기탐색 글쓰기, 진로직업 개발, 여행힐링 등이 그 주제다. 한달살기를 통해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연간 중점 목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노마드, 순례자로 삶의 길을 걷기 위한 변화동기를 찾을 수 있다.


빈집살기 도전은 다시 걷는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익숙해진, 느슨한 마음을 뒤로하고 일어서 길을 나서자 변화가 시작했다. 삶을 둘러싼 무거운 공기가 잦아들었다. 이전 직장 때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만났고, 새로운 협력 구상을 나눴다. 영산강, 호미반도 둘레길을 걸으며 영감을 받고,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넓고 긴 강을 철새 소리 따라 유유히 걷다 보니 탄성과 노래가 절로 났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마음에 새로운 희망이 보였다. 길에 답이 있다. 혹시라도 멘탈이 무너질 때면 빈집을 찾아 새 길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초심으로 돌아가 텅 빈 백지장에 원하는 인생을 다시 쓰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재차 꼭 붙드는 것이다. 마지막 돌아갈 본향, 그 고향집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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