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넘게 투자한 주식이 청산된단다. 인생 최대의 투자 실패다. 여태껏 20년 넘게 주식을 했어도 한 번도 청산을 맞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눈에 띌만한 금액이 들어간 투자처 중에서다. 사실 주식 투자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기는 하다. 그동안 주식으로 제대로 수익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때부터 여유자금의 20% 내외는 꾸준히 주식 등에 넣었다. 공격적인 투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벌면 벌고자 할수록 돈은 달아났다. 아무리 주식을 사고팔아도 수익률은 변변치 않았다. 조그만 수입을 얻었다 싶으면 금세 또 어디선가 수익이 뚝 떨어지기 일쑤였다.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 제자리를 빙빙 도는 느낌이랄까. 정신만 산만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주식 투자로 별다른 재미를 얻지 못했다. 그저 투자 경험을 쌓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반전은 요 근래 일어났다. 주식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묻어둔 자산이 불어난 것. 주식, 펀드, ETF 등 국내외 자산 가릴 것 없이 조금씩 올랐다. 주식 계정은 30-40% 수익률을 왔다갔다 하고, 금 펀드나 직접 투자 계좌는 수익률이 50%까지 늘었다. 더 드라마틱한 수입률을 기록한 건 비트코인. 한창 코인 광풍이 불 때 시범적으로 투자한 50만원이 200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처음에는 산 금액의 반토막까지 떨어져, 그냥 방치해 뒀는데 어느새 3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더 사놓지 않은 것이 내심 아쉬울 정도였다. 투자 똥손이라서 그런지 참 희한했다. 손대지 않고 묵혀둔 자산이 오히려 오른 것이다. 이것이 장기 투자의 힘인가. 욕심과 조급함을 버리고 미래 가치에 투자했기 때문일까. 잠재력이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자란다. 현실적 역경을 딛고 미래 어느 시점에 열매를 맺는다.
장밋빛 전망, 무한 긍정이 힘을 못 쓸 때도 있다. 이것이 바로 투자의 냉정한 세계다. 지난 2014년 사둔 러시아 ETF, 195만원어치는 -97%, 5만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그것도 이제 미래 가치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 강제 청산되어 더 이상 투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단 1원이 되더라도 가지고 있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할 수 없다. 참 기분이 묘하다. 온갖 욕이 나올 것 같다가 한없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러시아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투자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Web발신] (광고)[한국투자]러시아ETF RUSL 청산 안내 ■러시아ETF RUSL 청산 안내■ 미국의 제재 조치로 펀드 운용사에서 아래 종목의 청산이 결정되어 알려드립니다
※상장폐지에도 불구하고 매도하지 않을 경우에는 해당종목 청산 후 현금지급 될 예정입니다. ※해외주식의 경우 공시내용이 예정된 바와 다르게, 당일에도 변동 될수 있사오니 유의부탁드립니다. ※러시아와 관련된 상장주식에 대한 추가조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은 ☎ 3276-6700(주식)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거부(무료)0802250012
한때 러시아 전문가로 자처했다. 한 기관의 러시아 담당자로 일하면서 전문가 초청 세미나도 수없이 열었다. 러시아의 잠재력과 비즈니스 전망 등이 그 주제였다. 러시아 ETF를 산 시점도 이 즈음이었다. 세계 몇 번째의 석유가스 자원부국, 문화와 기술적 저력을 가진 러시아가 곧 화려하게 꽃 피울 것 같았다. 바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공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취업 등의 전망을 말하면서 언젠가는 러시아가 다시 빛 볼 날이 있을 거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한낱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렸다. 소치 올림픽 직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 병합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국제 제재로 러시아 루블화가 폭락했고 ETF 값어치도 거의 종이 쪼가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ETF는 팔지 않았다. 러시아의 본질적 가치와 언젠가 회복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ETF 가격이 50만원 정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2월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ETF 값이 다시 거의 0이 되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아예 현금 청산될 예정이다. 더 이상 보유할 수 있는 희망까지 함께 사라진 것이다.
항상 투자의 함정은 익숙한 것,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변화무쌍한 현실에 대한 대처가 무감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막연한 믿음이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때도 있다. 또 과도한 자신감으로 주변 환경과 충돌을 빚기도 한다. 일어선 줄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도 그래서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지난 91년 구소련 붕괴와 98년 모라토리움 사태를 겪으면서 영향력을 잃고 세계 무대 뒷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다 다시 국력을 회복하자 이번과 같이 우크라이나 및 그 뒤에 있는 서방 국가들과의 전면 충돌을 감행한 것이다. 주변 지역에서 과거 당연히 누렸던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것을 전쟁과 경제 마비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세계에 공포한 것이다.
믿었던 것들의 배신이다. ETF도 러시아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러시아의 추락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한 주권 국가의 수도까지 군대를 동원해 밀고 들어갈 수 있을까. 또 그것이 과연 현대 사회에서 용납될 만한 일인가. 러시아를 향한 개인적인 바람도 물 건너갔다. "퇴사 후 정 안되면 러시아어 통역이나 관련 사업이라도 해야겠다"는 비상 계획은 당분간 접어야 할 판이다. 심지어 러시아를 전공했다는 것 자체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러시아야말로 젊은 시절을 모두 쏟아부은 인생 최대의 투자처 아닌가. 첫 직장에서 4년 동안 야간 대학을 다니며 러시아 언어와 문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러시아 유학까지 떠났다. 영어 전공이 새로 포함돼긴 했지만 통번역 대학원을 마쳤고, 러시아어 통역병으로 군 복무까지 했다. 이후 한 지역 공공기관의 러시아 교류담당자로 재취업하기까지 오랜 시간, 영혼을 바쳐 러시아와 함께했다. 그래서 이번 ETF 청산이 주는 의미는 더 남다르다.
과연 믿을 만한 투자처는 어디인가?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 직장? 물질? 관계? 이번 사태를 보며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함을 느낀다. 하지만 분명히 깨달은 것은 있다.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변치 않고 투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모든 돈이나 기회를 잃어도 오직 자신에게 투자한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사소한 것일 지라도. 새로 쌓은 경험과 능력, 그 정신은 고스란히 남아 더 나은 미래로 자신을 이끈다. 망한 나라였음에도 러시아를 전공한 한 가지 이유는 잠재력이었다. 거대한 땅 덩어리와 자원, 문화와 역사적 배경까지 훗날 다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 덕분에 투자한 노력에 비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낱 야간 대학을 나와서도 관련 분야 실력을 쌓았고, 한 지역의 러시아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공공기관에 재취업하는 기회도 얻었다. 애초 미래 가능성이 아니라 경쟁이 치열하고 현재 인기 있는 분야를 전공으로 삼았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잠재력 개발'에 투자했던 경험은 퇴사 후 직업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비록 러시아 관련은 아니지만 경매 투자에서 이런 새로운 기회를 본 것이다. 경매는 현실에서 가격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저평가 자산을 매입하고 정상화하는 것이 일이다. 그 덕분에 수익률이 100-200%를 넘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투자금을 몇 달 안에 바로 회수하고 더 남기는 '무피 투자', '플러스피 투자'까지 가능했다. 어려운 퇴사 초기에도 연봉 2배, 그 후 매년 2-3건 낙찰로 웬만한 직장인 연봉 정도는 벌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투자했던 시간만은 어떤 상황 속에도 사라지지 않고 인생의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과감하게 도전해 결실을 기다리는 전략이 먹힌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 바위처럼 꿈쩍 않는 현실을 바꿀 한가지 방법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리고 누구든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무엇을 위해 투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