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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Mar 17. 2022

평생 여행하는 인간이 답을 찾으면

공간드림_인생여행자학교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길, 바로 '나로 돌아가는 길'이다. 분주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때론 자신조차 잃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자기 생각이 어떤지 돌아보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건강과 직장, 생계, 인간관계 등 온갖 문제로 시름시름 앓아간다. 그러다가 40-50대가 슬슬 넘어가기라도 하면, 퇴직과 인생 2막이라는 새로운 장벽이 어둠 속 습격자처럼 마음 한 켠에 어른거린다. 준비해둔 것 별로 없고 이후 어떻게 살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깜깜이 인생' 앞에 사이렌이 울린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 목매달던 일이나 주변의 것들이 더 이상 답을 주지 못한다. 다시 길을 잃은 것이다. 아니,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일어나 또 길을 나설 때다. 진짜 자기 자신을 찾고, 그 속에서 삶의 완전한 답을 얻을 때까지 나로 돌아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사람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고 모험을 즐긴다. 집 떠난 나그네처럼, 때론 신대륙을 찾는 탐험가처럼 여행이라는 숙명을 맞이한다. 인류의 고전이라 말하는 성경에서 인간의 원류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이 풍족한 고향 낙원에서 쫓겨나 평생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인간은 문제 앞에 여행했고, 답을 찾아 정착했다. 인류의 역사는 이동과 정착의 역사다. 초기 인류는 부족한 먹을거리와 더 나은 생활환경을 찾아 이동했고, 농사와 목축 기술을 발명해 풍족한 정착 생활을 누렸다. 한정된 땅과 자원을 찾아 서로 싸우고 교역했다. 말과 배 같은 강력한 이동 수단과 통행 길을 장악한 민족은 어김없이 그 시대의 지배자가 되었다. 반면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고 분열한 민족은 부침을 겪고 역사 뒤로 사라졌다. 인간의 여행 DNA는 우주까지 간다.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살 곳을 찾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궁극의 답을 찾아 평생 여행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긴 여행하면  '오디세이'가 떠오른다. 오디세이는 최초의 서양 문학이자 모험담의 원류다. 목마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들이 귀향하는 이야기다. 분노의 전쟁을 마친 한 인간, 오디세우스는 남은 평생을 보낼 집으로 돌아가는 데 장장 10년이 걸렸다. 트로이 전쟁 기간 10년을 더하면 20년을 집 떠나 여행길에서 고생했다. 여기서 집이란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이다. 참된 자아와 자신의 왕국을 찾고 주변 사람들과 화해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많았다. 먼저 신들의 저주를 산 자신의 교만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했다. 영생과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요정 칼립소도, 사람을 돼지로 바꾸고 고향을 잊게 하는 마법사 여신 키르케도 떠나보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족, 머리가 여섯 개 달린 괴물 스킬라와 카립디스, 노래로 유혹하는 세이렌에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남의 것을 약탈하고 술에 빠지는 옛 습관, 동료들을 믿지 못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잠드는 태만 등으로 동료와 배를 다 잃고 홀로 고향에 돌아와야 했다. 고향에서도 여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재산을 축내고 아내를 뺏으려는 구혼자들을 물리쳐야 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왕이 아니라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집으로 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고 함께할만한 진실한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겉모습과 관계없이 그는 옛 흉터와 활 쏘는 실력 등으로 자신을 증명했고 구혼자들을 다 죽였다. 그 복수를 위해 모인 일부 사람들에게도 분노를 쏟아내지만 아테나 신의 중재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그 인생을 둘러싸고 있던 분노와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한 인간이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개성화'라고 했다. 개성화란 자신의 거짓된 겉모습을 벗고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대표작 '데미안'에서 이 과정을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온전히 살아 보려 한 것밖에 없는데,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라고 표현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데미안이 찾는 길이다.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신비한 전학생 막스 데미안을 만나면서 내면의 갈등을 딛고 성장한다. 어린 싱클레어는 선과 악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익숙했던 부모님의 안전하고 밝은 세계에 따분함을 느꼈고 불량한 친구 프란츠 크로머 무리에 끼려고 거짓말까지 했다. 그것 때문에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혀 온갖 협박에 시달리고 결국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그때 한 줄기 빛처럼 데미안이 나타나 싱클레어를 구해준다.


데미안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잡혀 잡아먹힐 뻔한 위기의 순간에 "나는 나 스스로 존재하는 자"를 외치며 탈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직업생활이든 뭐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남이 정해놓은 규범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크로머에게서 구해주면서 한 말도 이것이었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낯선 생각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 의심 때문에 새로운 길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먼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는 "인간에게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는 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다"라고 했다. 무리 속의 한 명으로 편안함에 푹 빠져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쉽고 가까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황하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쪽지를 보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여기서 아브락사스는 신이자 사탄이고, 자기 속에 있는 밝음과 어둠이 모두 통합된 세계를 말한다. 자유로운 새처럼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인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마음의 분열 없이 자신의 꿈과 생각, 예감과 잠재력을 믿고, 내면의 목소리에 잠잠히 귀 기울이고 실천해야 했다. 이 자기완성의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었다. 싱클레어가 그토록 갈망했던 이상향이자 데미안의 어머니였던 에바 부인은 말했다. "태어나는 건 누구나 어려워요. 당신도 알잖아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이제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려웠느냐고. 그렇게 어렵기만 했느냐고. 혹시 아름답지는 았냐고.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이 있더냐고."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길 위에서 그대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그대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그대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그대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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