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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ul 28. 2022

꿈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거워진다

게스트하우스로 꿈을 이루는 40가지 방법 No.2

꿈의 무게 w=mr. 꿈의 질량과 실현가속도를 곱한 값이다. 꿈의 질량 m은 그 크기와 단단함에 비례한다. 크기가 클수록 무게도 늘어나지만, 이룰 생각 없는 허황된 꿈은 아무리 커도 무게가 제로에 수렴한다. 실현가속도 r은 m/t제곱이다. 현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끌어당기는 힘이다. 인생의 남은 시간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현재 꿈을 이루고 싶은데 실현 가능 시간이 줄어들수록 그 무게는 늘어나는 셈이다. 이때 꿈의 크기가 클수록 부담은 더 커진다. 이렇게 자꾸만 커지는 꿈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청년 시절 꿈을 꿨다. "세계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이 "게스트하우스라도 해볼까"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4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꿈꿀 시간이 점점 더 줄고 있음을 느끼면서다. 직장, 건강, 인관관계, 가족 등 각종 현실 문제가 치고 올라오는 시기이기도 했다. 혹자는 말한다. "그딴 꿈이 밥 먹여 주냐고? 그냥 현실에 맞춰 살면 안 되냐고?" 그런데 꿈을 먹고사는 사람에게는 얘기가 좀 다르다.


꿈은 믿는 사람에겐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힘이다. 꿈 때문에 삶의 놀라운 변화를 여럿 경험했다. 고졸 기술직에서 유학한 외국어 전문가로 거듭났다. '세계를 품은 꿈' 덕분이었다. 3교대, 야근과 주말 특근이 일상이었던 직장 초년생 시기. 고단한 직장 생활 중에서도 야간 대학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유학과 통역병 복무를 거쳐, 지역 공공기관 전문직으로 재취업했다. 외국어 특기, 한 지역의 국제교류 담당이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정말 세계를 바꾸는 일에 한발 더 성큼 다가섰다.


꿈이 있어 한때 빵빵했다. 하늘 높이 쭉쭉 솟구쳤다. 꿈이 자랑이었다. 풍선 껌을 누가 더 크게 부나 뽐내던 어린 시절마냥, 꿈의 크기에 있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주변에서 더 큰 꿈을 가진 사람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올무가 됐을까. 점차 나이가 들자 꿈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젊었을 때는 10년, 20년 등 장기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를 달랬다. "조금만 더 참고 버티자. 지금 꿈을 위해 한창 나아가는 중이잖아."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이제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남은 기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45세에 기업가로 사업 정착",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영적 기업가", "글로벌 CEO 겸..." 등 개인 비전 로드맵에 적은 문구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애써 잊고 살던 것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갖은 현실 문제들도 이런 갈등을 재촉했다. 그럴수록 "뭔가를 해야될데"라는 꿈의 무게가 자꾸 늘어갔다.


풍선처럼 그냥 하늘 높이 놓아버리지 않으면,
껌처럼 바닥에 떨어져 질척대는 것이 꿈일까


꿈의 무게를 떨쳐버리고자 다른 현실에 뛰어들었다. 우연히 발견한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한 것이다. 이것이 있으면 그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직장 생활 내내 꿈꿨던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다. 글로벌 CEO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세웠던 계획인 해외 지사 100개국 설립 등도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 하는 게스트하우스가 그중 1곳이라도 될 수 있으니까. 이 사업만 시작하면 꿈은 마냥 꿈이 아닌 것이다. "꿈을 위해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꿈이 현실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평생의 꿈에 부끄럽지 않게, 이때까지 자신을 키우고 먹여준 그 꿈을 향해 한걸음 더 나갔다. 아무런 사업 경험이 없어도 게스트하우스 정도는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직장 업무 자체가 국제교류로 외국인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국내외 여행이나, 호텔 같은 숙소를 잡아 방문객을 인솔하곤 했다. 여행객 환대나 숙박시설 운영에 있어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었다. 뭔가 하던 일과 연계해 사업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가족들과 함께 부업으로 하던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퇴사 후 본업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세계 자유여행객이 몰려오는 곳, 돈으로, 경험으로, 꿈으로, 시간으로, 물품으로, 뭐든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요금을 내고 마음껏 머물 수 있는 곳. 중단기 숙박, 문화카페, 교육장, 아르바이트 등 여행과 교류, 일 등이 복합된 글로벌 노마드 협업공간. 여러 나라 친구들을 한 곳에서 사귀고, 해외 물품과 서비스가 온디맨드로 연결되며, 세계에서 들어온 사람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어 새로운 비즈니스와 직업, 가치 혁신이 일어나는 곳. 바로 세계 곳곳의 게스트하우스가 동일한 서비스로 연결된 국제 여행숙박자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전 세계 글로벌 노마드들이 협력해 세계 차원의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민간 국제 네트워크의 중심에 우리 게스트하우스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게스트하우스가 꿈이라고' 글 중


무거운 것은 때론 짐이 된다. 이전에 유학하며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보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유럽 11여 개국을 다 돈 강행군이었다. 이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텐트까지 짊어지고 갔다. 등산 가방은 금세 불어나 한 보따리가 됐다. 머리 위로 삐죽 튀어나올 만큼 더부룩하고 무거웠다. 얇은 지갑 사정에 노숙이라도 할 생각이었을까. 애석하게도 텐트는 스위스에서 한 번밖에 치지 못했다. 캠핑장 비용이 게스트하우스 숙박 요금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배낭 덕분에 온갖 편의를 누릴 수 있었다. 여행기간 내내 야간 기차에서 자고 돌아다녔음에도 어디든 집과 같이 든든함을 느꼈다. 이후에도 등산이나 출장 시 짐이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생각한다. 바로 목적지에서 누릴 풍요와 행복감이다. 가방 안에 짐이 있기에 이후 필수 먹거리는 물론, 입을 옷과 책, 놀거리까지 한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가볍게 갈 요량으로 모든 짐을 줄였다간 자칫 도착하면 불편해진다. 짐을 못 챙긴 탓에 여간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산 정상에 가서 라면 먹는 일행을 손만 쫄쫄 빨며 보기만 한 적도 있다. 출장 가서도, 호의를 베푼 사람들한테 나눠줄 기념품이 떨어져 난감하곤 했다. 이처럼 처음에 무거웠던 짐도 나중에 그만큼 톡톡한 효과가 있다. 사람의 꿈도 마찬가지다. 부담스러울수록 이룬 뒤 그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삶의 지평을 연다.


단, 짐의 무게를 잘 조절하는 것이 여행의 기술이다. 꼭 필요한 것은 남기되, 비본질적인 것은 줄이는 것이다. 한 번은 40-50명의 봉사단을 이끌고 해외로 나간 적이 있다. 이때 전체 짐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공항 개체대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떠나기 전날 짐을 한데 모으고, 미리 무게를 재고 나눠 담던 기억이 난다. 이때 관건은 핵심 미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개인 짐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나이 들어 꿈도 그렇다. 과거 꿨던 꿈의 본질, 평생에 짊어지고 갈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가려내야 한다. 젊었을 때 팔팔했던 열정도 힘도 자꾸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전에 꿈이 있었는지 조차 까먹을 정도로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이때 남는 것은 어쩌면 꿈의 추억밖에 없다. 나이 들어가는 노부부가 정으로 사는 것처럼, 꿈도 옛 기억만으로 희미하게나마 버틴다. 그 꿈의 수명을 연명해주는 건, 작더라도 지금 하는 실천 행동 하나 밖에 없다. 언젠가 그것이 인생의 한 때 집어삼키고 삶 전체를 호령했던 것처럼, 다시 갱생할 그날을 바라며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삶에서 놓칠 수 없는 의미를 붙들고, 그것을 꿈꾸며 이룰 때까지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꿈의 진심이자 그 무게를 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때론 꿈을 선택한 대가는 크다. 그것 때문에 이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껏 꿈꾸고 이뤄온 경험은 말한다. "언젠가 꿈이 현실이 될 줄 아는 불안정한 하루는 결코 현실이 꿈이 될 수 없는 무거운 일생보다 훨씬 가볍다."


지금 여러분 꿈의 무게는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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