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끔은 혁신이 필요하다. 그럭저럭 살다 보면 이런저런 위기가 닥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잘릴 뻔하거나, 관계나 건강 문제로 죽을 만큼 힘든 고비를 맞기도 한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이럴 때마다 어떻게 할까. 이미 일어나거나 앞으로 닥칠 것 같은 두려운 일들을 마냥 곱씹을까. 그런다고 과연 상황이 나아질까. 분명한 건 이럴 때 평상시 보다 엄청 큰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런 것을 어떤 새 동력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어떨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지 벌써 5년이 넘어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다행히 최근 실내 마스크 의무가 해제됐다. 이제 지긋지긋했던 3년 동안의 '코로나 블루'도 같이 벗어던질 수 있을까. 러-우크라이나 전쟁, 고금리 고물가 경기침체는 여전히 불안 요소다. 하지만 일상이 재계되고 여행 '제제'가 풀리면서 이전보다 숙소 이용자가 는 건 확실하다.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휴가, 주말을 맞아 물밀듯 들어오는 숙박객에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잠잠하던 시설이 다시 사람 소리와 발걸음에 떠들썩해졌다. 게스트하우스다워진 것이다. 덩달아 개점휴업을 느긋하게 즐기던 운영자도 바빠졌다. 손님 영접에 청소에 비품 증량과 시설개보수에 그야말로 한 해가 '순삭' 됐다. 동시에 1인 사장의 무게가 늘 마음 한 구석을 짓눌렀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사람이 있는 곳에 문제가 없을 순 없다. 절대 평화는 무덤 안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누군가 죽든지, 마음을 비우든지, 문제를 없애든지 해야 한다. 뭔가 하나 죽지 않으면 여전히 시끄러운 현실을 마주한다. 파티 없는 숙소로 편안한 휴식을 추구하는 우리 숙소도 마찬가지다. 1인 숙박자나 서너 명 소그룹 등 대부분 조용한 숙박자가 많지만, 그럼에도 가끔 문제가 생긴다. 까탈스러운 고객을 만나거나 숙소 시설이나 운영 부족 등이 그 이유다. 특히 사람들과 얽힌 문제에는 감정이 상하기 일쑤다. 이런 일은 고객 불만을 키우고 악성 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개별적인 문제를 푸는 것이 우선 일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은 구조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다. 문제의 싹을 잘라내는 것이다. 사건이 터져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하나씩 고질적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나고 보니 이런 일들은 숙소 운영과 삶에 훈장이 되었다. 지난해 BTS 부산콘서트 때 일이다. 10월 15일,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한두 달 훌쩍 전부터 예약이 차 들어오기 시작했다. 높은 요금대의 방도 잘 나갔고, 당일 모든 객실은 만실이 되었다. 베트남 대학생등 단체 손님도 꽤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10인실 도미토리에 좀 나이 든 여성 단체 7명이 예약했고, 나머지는 개인 손님이었다. 그런데 이 개인 손님 중 한 명이 이용후기를 남겼다. 단체 여성들이 새벽까지 수학여행 온 것처럼 떠들어대 잠을 못 잤다는 내용이었다. 밤에 관리자가 없어 통제가 안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단체 일원에 소등시간 등을 안내할 때 "다 큰 어른들이라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단호한 규정 준수를 말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컸다. 이후 숙소 시스템을 확 바꿨다. 공용공간 스마트 소등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11시 이후에는 자동으로 불과 TV가 꺼지고, 원격 스위치 조정이 가능하게 했다. 또한 사전 안내 강화와 수시 CCTV 점검으로 숙박객의 문제 행동을 원천 차단했다. 이런 식으로 부분 재도배, 온수조절기 교체, 보조난방기 도입, 짐보관 시스템 등도 개선해 나갔다. 위기나 문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평소 생각했지만 엄두를 못 냈던 것, 어떤 새로운 변화를 이뤄낼 때의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나쁜 감정을 삶의 무기로 바꾸는 기술'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나이토 요시히토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성장을 이룬 기업의 사례를 들며 말했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공들여 미래를 준비한 기업이 시장에서 강한 것은 당연하다." 바로 불안을 '행동 에너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 누적 관객수 1760만 명으로 역대 한국영화 최대 흥행을 기록한 '명량'에 유명한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 모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가지고 133척의 왜군을 물리치기 직전 한 말이다. 이렇게 불안이나 두려움, 자책감이 밀려올 때 시선을 돌려보자. 진짜 자신의 목표와 원하는 것, 긍정적인 최종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 일시적인 감정을 폭발적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궁극의 행복을 위한 담대한 또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자신과 타인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근본적 문제를 넘어 찬란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한 건 자기 혁신의 한 방편이었다. 20년 직장인으로 살며 퇴직 후 어떻게 살지 늘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독립적인 직업능력 개발에 힘썼고, 젊은 시절 사업가의 꿈을 떠올렸다. 그 고민이 절정에 달했을 때 행동에 나섰고, 가족들과 함께 첫 사업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했다. 부업으로 가족 생계를 보태며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일이 전환점이 됐다. 평생 '눈팅'만 하던 퇴사질을 감행한 것이다. 직장인으로서는 자기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는 과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10년이 지난 소규모 게스트하우스, 그것도 1인 사장의 한계는 분명하다. 주변의 시설 좋고, 젊은 감각의 업소에 밀린다. 혼자 이것저것 다하다 보면 사람이 많이 와도 때론 걱정이다. 밤늦게 연락이라도 와 "온수가 안 나온다" 등의 문제로 시름하다 보면 온갖 진이 빠진다. 어느덧 숙박업자가 다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이 든다. 이때 필요한 게 다시 행복한 변화, 자기 혁신이다. 혁신이란 때론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공기관 혁신 업무를 담당할 때 단골 질문이 있었다. "기관의 본질, 고유 사업이 무엇인가?" 이것을 기준으로 기관 통폐합 등 중요한 혁신 과제가 결정되곤 했다.
계획한 게스트하우스 10년 운영 목표 중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남은 5년은 용기 있게 또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 바로 기본 숙소 운영을 무인화하고, 간단한 입퇴실 안내 등은 전면 셀프로 돌리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이 비대면 시스템은 검증됐고, 공용공간 자동 소등이나 CCTV 관제 시스템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퇴사 후 하고자 한 1인기업 사업 개발에 힘쓰는 것이다. 이것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과 함께하는 인간 라이브러리 운영, 고객 멤버십 프로그램 등으로 숙박 운영과 병행해 차차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시설 위주에서 콘텐츠, 커뮤니티 중심으로 바꿀 때 숙소도 그 운영자도 고객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업소 고유의 특색을 찾고, 운영자가 신나게 일하며, 고객과 진정한 소통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