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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버스와 무트리 기독교 숙소

게스트하우스가 바꾼 하루#6- 휴무

by 김윤섭
"산타 버스가 나타났다!"


보통 때처럼 동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저 멀리 익숙한 차 번호가 보였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뭔가 달랐다. "산타 버스" 정면 창문 위 커다란 글자가 붙어 있었다. "이게 뭐지" 몇 번을 다시 봤다. 산타 버스 맞았다. 전면, 옆면 차창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주렁주렁 단 차가 와서 멈춰 섰다. 교통 카드를 찍으면서 웃음을 꾹 참았다. 카드 단말기 옆의 아기자기한 치장들이 눈을 간지럽혔다. "산타 버스라니..."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생소한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아서도 이쪽저쪽 살폈다. 버스 안 창문과 천장, 운전석까지 깜빡이는 전등과 반짝이 장식, 각종 트리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캐럴도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손님들을 유심히 봤다. 어떤 아저씨도 차 안으로 들어오며 반달 미소를 지었다. 앉아있던 손님은 신기한지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내릴 때 정류소 대기 손님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 버스를 계속 쳐다봤다. 다른 버스, 심지어 뒤에 온 같은 번호 차량도 평소 그대로였다. 그저 무심히 도로를 달릴 뿐이었다. 운 좋게 길 위의 산타를 만난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흔한 버스를 산타로 바꿔놨다. 덕분에 일상이 이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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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게스트하우스는 기독교 숙소다. 일요일 문을 닫고 교회를 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 가족 모두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숙박업을 하면서 가장 큰 고민도 '주일 성수'였다. 요즘은 일반 상점도 그렇지만, 일요일 쉬는 기독교 가게가 많다. 문제는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그런 휴무가 가당찮은가 하는 것이었다. 손님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지 않는가. 정기 휴무가 있는 숙박업소는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을 보니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역 근처라 금, 토요일이 피크고 일요일은 손님은 별로 없다." 선배 운영자가 귀띔해줬다. 숙소 이전 데이터를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일요일 이용객은 전체의 10% 정도, 다른 평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그날은 과감히 쉬기로 했다. 우리만의 방식을 택했다. 주말과 이어진 연박 손님은 잡을 수 없었지만 워라벨을 얻었다. 무엇보다 신앙의 가치를 지키게 됐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기독교 숙소로서 정체성이 생겼다. 일요일에는 독립 교회에 쉬는 공간을 빌려줘 예배도 드렸다. 해외에서 일시 귀국하는 선교사들한테는 무료 숙박을 제공했다. 하루 희생했더니 더 잘되더라는 소위 간증 거리는 없지만, 해보니 안될 것도 없었다.


기독교 숙소라도 트리는 없다. 지난해 묵었던 어떤 선교사분이 가져갔다. 주문한 작은 트리 택배를 본인 짐으로 안 것이다. 이후 다시 준비할 엄두가 안 났다. 사실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이나 설렘은 잊은 지 오래됐다. 가게도 그렇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무엇인가?


산타 버스가 크리스마스의 참뜻을 일깨워 줬다. 아이러니하다. 반평생 교회를 다녔지 않은가. 매년 성탄절 예배도 드렸다. 길거리에서 성탄의 기쁨을 전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뜻밖의 선물'에 있었다. 마땅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야말로 구원자이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었다. 처음 맞닥뜨린 버스의 의외성이 이것을 기억나게 했다. 아이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며 즐거워했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선물을 준비하고 버스를 꾸몄던 세상의 모든 손길을 축복한다. 매일의 일상이 이런 뜻밖의 기적으로 가득 찬 삶들이 되기를 성탄절 아침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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