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보내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수지입니다.
30도 중반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모두 더위에 무탈하신지요.
저는 드디어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며 속초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입니다.
2분기 내내 너무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되어서 어쩌다 보니 3분기가 되어서야 편지를 씁니다. 이번 휴가에서 반드시 7월의 편지를 쓰겠다고 작정을 했거든요. 기다리시는 분이 간혹 있으시기 때문에 7월의 편지가 그분께는 반가운 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무려 세 달만이라 그만큼 전할 소식이 쌓여있지만 콤팩트하게 안부를 전해보자면
1. 요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 모험으로 가득한 광화문 생활하고 있습니다.
결론 :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요. 이번 여름.
https://brunch.co.kr/@suuuuuuzy/61
몇 년 전에 이렇게까지 뜨거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던 여름 기억하시나요? (작년이었나요 그게?) 밖에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르던 그 여름이요. 그런데 올해 여름은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어떤 여름보다 이번 여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게 분명해요. 날이 여간 더운 게 아니니 말이에요.
저는 이 더위와 더불어서 가장 시끄러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초여름에 진입할 때쯤에는 요가 코치가 되기 위해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고 (잘 마친 지금은 첫 오픈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 안에서 떼놓을 수 없는 키워드 때문에 한껏 기쁘다가도 마음이 헝클어지는 관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회사 생활에서는 좋은 사람과 좋은 리더는 다르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어요. 결국엔 이런 경험과 사고들이 모여서 새로운 우정이 생겨나기도 하고 깊은 우정은 더 깊어지기도 하는 7월을 보냈습니다.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7월의 근황 칸에 1박 2일 속초 일정을 기록하는 것이 7월을 대변하기에 한참 모자라지만 이번 전지훈련은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어요.
4월에 가평으로 1박 2일 짧은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제대로 쉰 날이 없기 때문에 물리적인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에너지가 없어서 어디를 멀리 다녀오는 건 엄두도 못 냈었죠. 그래서 2박 3일 휴가를 내고도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꿈에 그리던 풀만호텔 호캉스를 예약했었는데요. 아무래도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서인지 항상 보던 서울의 풍경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냅다 속초행 버스를 끊었습니다. 낯선 곳, 가고 싶던 요가원이 있는 곳.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곳이 속초였으니까요.
속초에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가를 하고 일기를 쓰고 걷고 밥을 찾아 먹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일상에서는 시간은 따로 내지 않으면 이제는 더 이상 하기 어려운 것들에 충실하면서 저 자신을 돌보았어요.
그냥 잠깐 쉬어갈 뿐인데 이렇게 숨이 트였다니. 저에게 필요한 건 작은 휴식과 다시 일어날 힘이 맞았나 봐요.
요즘 우정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종종 있었어요.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새로운 우정이 생겨나고 깊은 우정은 더 깊어지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새로운 우정이 생겨나는 순간은 뭘까? 가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어요.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생각한 거야?"
" ~~~ 그때."
이 사람이 내게 안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껴요. 상대방이 어느 순간 제게 와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면 '안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럼 저도 그때쯤이 되어야 마음이 열리면서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댕댕이처럼 굴 때가 많지만 겉으로는 그래 보여도 속을 내보이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답니다. 하하. 그런데 올해 7월에는 이렇게 와서 이야기를 하고 저도 이야기를 하는 우정이 쌓여 갔어요. 때가 되어 떠나가는 인연이 있으면 찾아오는 인연이라는 게 당연히 있는 걸까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게 참 신기합니다.
반대로 있던 우정은 더 깊어졌어요. 우정이 더 깊어지는 건 뭘까요? 일단 떠나가는 인연이 아니었겠죠. 저는 떠나는 인연은 떠나는 인연대로 그 시기에 꼭 필요해서 찾아온 거고 그 시기에 떠나야 해서 떠날 인연이라고 여기는 편인데요. 대신에 그 세월을 버티면 어쨌든 우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많은 모습을 보게 되니까요.
"우리는 참 세월 지나면서 서로의 밑바닥이나 힘든 세월 다 본 거 같아."
깊어진 우정의 친구들은 요즘 꽤나 힘든 일들을 겪고 있는데요. 그런 과정에 제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지 뭐예요. 저의 어려운 시절에 그들이 함께 있어주었으니까요.
우정이 있다면, 사랑 이야기도 있어야죠. 저는 요즘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이 분이 나를 이렇게 사랑했었나?' 라는 생각이 종종 들만큼 저에게 사랑을 퍼부어주시며 "수지야~ 나랑 같이 하자."라는 분이 계세요. 제게 잘 지내냐고 묻고 먼저 저를 들여다봐주고 물어보시는 어른인데 이렇게까지 그분이 저를 사랑했는지 솔직히 처음 알았거든요.
ㅂㅂㅂ
"저한테 실망하셨어요?"
"아니. 실망 안 했어. 그러니까 돌아와. 다시 힘내보자. 다시 와야 돼."
하시는데 음. 이런 사랑 너무 오랜만이라 마음이 많이 흔들리는걸요.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 들더라고요. 이런 사랑 마지막으로 언제 받아봤지. 하는 그런.
1. 연결
위에서도 적은 단어이지만 저는 '연결'이라는 단어가 저에게 이렇게까지 큰 의미였는지 이번에야 알게 되었어요. 저는 '연결'되어있는 감각이 느껴져야 편안해한다는 것.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저에게 평안을 준다는 것. 정말 제대로 알았습니다.
오랜 친구인 태환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대학생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친한 건 각자의 사회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한 즈음인 것 같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벌써 10년 가까운 우정입니다. 대판 싸우기도 했고요. 싸운 시절을 뛰어넘고 재회해서는 그전보다 훨씬 깊은 우정이 되었어요. 지금은 두어 달에 한번 만날 때가 됐다 싶을 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만나자고 하고 종종 안부하며 지냅니다.
"태환아, 우리 6월에 안 만난 거 실화?"
"문제 있네. 안 만나도 연결되어 있다 생각해서 게을렀네."
"안 만나도 연결되어 있다 맞긴 함"
"그렇지만 만나서도 연결되야지."
이 메세지가 그걸 보여줘요.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2. 용서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한 명씩 품고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용서할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대체로 후자에 가까웠어요. (물론 가족의 용서할 수 없는 미움도 있지만..) 그런데 최근에는 저에게도 용서해야 할 대상이 있었다는 것. 분명한 내상이 있고 상처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용서하고 싶은가?'
라고 질문했을 때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용서라는 게 말이에요.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게 다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저는 그만큼의 에너지는 없었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미운 채로 두고 싶기도 하고요. 저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팩트는 용서를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은 헝클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진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선 용서를 해야 하는 거죠. 아직까지 위의 선행되는 질문엔 답을 못했습니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는 거. 이게 시작인 건 분명합니다.
그거 아세요? 좋은 사람과 좋은 리더는 다르다는 거. (아, 물론 둘 다 갖추신 분도 있습니다. 제가 지난 세월 만난 임팩트 있던 리더분들...)
제 입으로 말하긴 뭐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종종 듣습니다. 저도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런데 이게 회사에서도 먹힌다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오산입니다. 저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엉망징창이었으니까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지점 생활에서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을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빨리빨리 해결해야 하고 팔로워들의 질문에 빠르게 답변을 해야 그들이 일할 수 있단 생각에 깊이보단 쳐내는 것에 급급했던 지난날의 저.. 완전히 반성했어요. 그런게 쌓이고 쌓이니까 오히려 일하도록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오해를 키우고 했던 일을 또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균열이 발견되자마자 이거 반드시 부수고 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모든 건 서로를 잘 몰라서 그런거란 생각에 대화를 깊이 나누었고요. 피드백도 전했습니다. 서로의 노고는 알아주고 개선할 점을 이야기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오해는 분명히 오해라고 짚어주고, 부족했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과하고, 앞으로 이렇게 하자는 걸 약속하는 것. 그런데 그런 대화가 오가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수지쌤이 좋은 사람이란 건 알지만, 이건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방망이로 때려 맞은 기분. 으헥. 나름 좋은 사람으로 잘 관계 맺으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주 적확한 피드백으로 관점을 조금 바꾸어야 할 필요를 인지했습니다. 좋은 사람인 건 좋은 리더가 되기에 유리할 순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리더가 되기엔 부족하더라고요. 대신에 그 방식을 업무에 적용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들여다보고, 끌어주고, 제시하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요.
그날의 대화로 우리 팀은 서로에 대해 많은 이해와 격려를 하고 이전보다는 훨씬 농담도 안부도 자주 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왁자지껄 떠드는 시간도 많아졌어요. 이전과 달라진 분위기가 우리 팀의 성과를 100% 설명할 순 없겠지만 성과 이전에 팀워크이니까요. 저는 정말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요?
5월부터 너무 달려와서 적당히 한번쯤 끊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호기롭게 7월 말 3일 연차를 썼지 뭐예요. 입사를 지난 11월에 해서 사실 연차가 몇 개 없는데 연차 지름신이 내렸어요. 그리고 가고 싶던 호텔에서 푹 자야지 싶어 풀만호텔 예약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2박 3일 중에 호텔에서 혼자 연박을 한다는 건 좀 만만치는 않잖아요. 그래서 남은 날은 병원도 가고, 미용실도 가고 그동안 못했던 일들 처리하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생각할 거리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서 평소에 많이 보던 풍경을 벗어나자는 생각에 속초 가는 버스를 끊어버렸습니다.
왜 하필 속초였는지는... 동생이 고성에서 군 생활을 오래 해서 속초는 좀 질렸거든요. 그런데 제가 가고 싶던 요가원이 있었어요. 영랑호를 낀 숲 속의 요가원. 창통에 호수를 바라보며 수련하는 상상을 하니 이 세상 근심 걱정 다 떠나보낼 수 있겠지 하며 홀린 듯이 속초행을 결정했어요.
속초에서는 잘 먹고 땀 흘리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생각할 거리 4가지 중에서 2가지 결심을 했고 1가지는 발견하고 남은 하나는 영영 결정을 못하는 상태로 돌아왔지만 2가지 결심을 한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아름다운 요가원에서의 땀 흘리는 경험, 제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잔소리를 해주시는 요가원 원장님과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잘 돌아왔습니다. 짧은 일정이 너무 알찼어요.
서울로 돌아와서는 기대하던 풀만호텔에서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호캉스을 했습니다. 좋은 침구에서 8시간 통잠을 자고 TV도 실컷 책도 실컷,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었어요. 거기에 영영 갇히고 싶더라니까요. 그러고 나서는 모나쌤의 초대로 플라잉 요가를 처음 배우기도 하고요. 상담이나 브로우샵 같이 시간을 내어야만 할 수 있던 일들을 마치고 휴가를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는 중입니다. 저에게 질문하고 돌보아주는 완전 힐링 베케이션. 진짜 휴식 그 자체였어요. 저 아무래도 분기에 한 번씩은 이런 시간 필요한 것 같은데요?
2박 3일의 휴가의 마지막에 상담을 종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 선생님이
"우리 이제 상담을 종료하는 것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해주셨고,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아쉬움 없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나왔습니다.
"언젠가 결혼하실 때 연락 주세요." 하시더니만
"수지님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오늘 아름답고 당당하게 인사하고 간 수지님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다정히 물어봐주고 토닥일 때 지혜가 생길 거예요.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여름날과 닮은 오늘 수지님을 수지님도 알아봐 주고 기뻐하면 좋겠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셔서 저도 무슨 멘트를 남길까 고민중이에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루 일찍 7월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상담사님과 상담실에서 나눈 모든 대화에서 저는 정말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아마 이 시간 덕분에 제가 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거예요.
회사에서의 넥스트 스텝을 준비하는 여정과 요가인으로서의 발돋움을 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속초에서의 두 가지 결심은 바로 이것들이에요. 일에는 좀 더 몰입하고, 장기적으로는 요가하기에 좋은 몸을 만들고 싶어요. 하반기... 벌써 쉴 틈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 시끄러운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잘 쉰 덕에 노이즈캔슬링 할 수 있는 배터리 100% 충전되었으니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불도저처럼 빨리 밀고 나가겠다는 건 아닙니다.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긴 해도 저는 지속가능성이 제일 중요한 사람인지라... )
남은 여름은 우정과 사랑에 둘러싸여 조금 더 고요하게 보내겠습니다.
저에게 마음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얼마든지 나누어주세요. 저도 내어드릴게요!
오랜만에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감사해요.
https://youtu.be/NrfikKxF4Ps?si=uNpH04zX_JD3IF8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