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꿈이 있었다. 데미안 셔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유능한 감독이,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 같은 대작가가 되는 것. 대학 입학 후 방황하던 시절, 라라랜드를 수십 번을 반복해서 보며 꿈을 꿨었다, 손에 닿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달콤한 꿈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수많은 처음들을 마주하며 두려웠지만 나는 꿈을 꾸며 현실을 견뎠다. 그러나 종종 현실은 나를 꿈에서 깨우곤 하는데, 최근 들어 그 빈도가 늘어나감에 따라 지쳐간다.
초등학생 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통령, 가수, 축구선수 등 다른 아이들 꿈과 달리 내 꿈은 소박한 편이었는데, 바로 슈퍼마켓 주인이었다. 어렸던 내가 생각하기에 슈퍼마켓 주인은 모든 물품을 맘대로 먹거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현실감각이 없을 나이였지만 미지를 두려워하는 내게는 가장 적합한 꿈이었지 싶다.
중, 고등학교 때는 꿈이랄 게 없었다. 중학생 때는 생각이 없어서 없었고, 고등학생 때는 우울증에 시달려 상담이네, 뭐네 하느라 꿈꿀 여유가 없었다. 대학교 원서 넣을 때가 돼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창작의 길을 걷고 싶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뮤지컬을 틀어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뮤지컬 초연 영상이 내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관심이라고는 게임뿐이던 나는 집에 와서 유튜브로 뮤지컬을 일주일 내내 봤다.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와 배우들의 열연을 보며 매혹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실체화하는 작업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또 나도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서 실체화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행히 성적에 비해 대학은 잘 갔다고 생각했다. 인서울은 아니지만, 통학이 가능한 거리의 수도권의, 원하는 학과에 진학했으니.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설학과였던 우리 과는 한 학기만에 폐과가 되었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애초에 좀 부실했으니 나를 받아줬나 싶다가도, 내게도 기회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군대에 다녀오니 우리 과에는 나를 포함한 남학생 6명뿐이었고, 코로나로 인해 졸업 전시회는 취소되었다
나의 첫 직장은 한 스포츠 클럽의 회계 업무였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 첫 정규직이었으며(이전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긴 했었지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많진 않지만 자본은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었으며, 내 자존감도 조금씩 올라갔었다. 하지만 원하던 직장이 아니었고, 그다지 멀쩡한 직장은 아니었기에 나는 금방 첫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퇴사를 한 후 지금까지 약 반년 정도가 흘렀지만 나는 아직 직장이 없다. 간간히 알바를 하고, 공고를 확인하며 글을 쓰곤 한다. 직장을 찾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현실에 좌절하기도 한다.
다른 직종을 찾아봐야 하나 싶다가도, 결국 미련이 남을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꿈을 놓지 않고 싶다. 미련인지, 꿈인지 모를 그것을 아직 놓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노트북을 켜고 구직사이트를 헤매다 써놓았던 글을 고친다. 현실과 꿈 사이를 헤매이며,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