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시작만 하는 사람
금요일 오후,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굳이 노트북을 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집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괘씸하게도 나는 공간을 가린다. 자고 놀던 곳에서는 일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뭔가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면 카페를 찾는다.
오늘의 경우도 그렇다. 오늘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이 통과된 후 올릴 첫 글을 쓰기 위해서 나왔다. 하지만 카페에 도착한 지 두 시간이 다 되도록 여기까지 밖에 쓰지 못했다.
문득 지갑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어느 한 곳에 신경이 쓰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는 기어코 집에 가서 지갑을 찾아왔다. 핸드폰에 각종 페이가 있어 지갑쯤은 없어도(잃어버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별일 없었겠지만, 이런 나에게는 익숙하다.
‘위이이잉-‘
위층에서 공사를 하는지 카페에는 드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집에 다녀온 후로 지쳐버린 나는 멍하니 백지상태의 화면을 바라본다. 참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만큼이나 엉망진창이다.
이번 주 수요일이었다. 나는 그날도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있었다. 초록 인어가 그려진 카페에 앉아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사과 로고가 박힌 노트북을 하고 있으면 꽤나 그럴싸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뿐, 실상은 좀 다르다. 기존 노트북이 있지만 무겁다는 이유로 산 새 노트북은 아직 온전히 내 것이 아니며 학자금을 다달이 갚아야 하는 백수에게 한잔에 5천 원이라는 커피는 사치에 가깝다.
그럴싸한 것들에 둘러싸인 채로 나 또한 그럴싸한 사람이라는 자기 위로를 하던 차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달째 말로만 준비하던 자격증, 취업 준비, 해야 할 일은 산더미지만 스크리브너를 켠다. 꼴에 글을 쓰겠다고 4,5만 원 돈을 주고 산 프로그램이다. 나조차도 꼴값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장비병 환자인 나는 이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에도 어느 정도 글을 깨작거리고 있었지만 이렇다 한 결과는 없었다. 그저 SNS에 올리고, 누군가가 돌아오길 바라며 남긴 하트 몇 개와 자기만족이 전부였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쓰고 싶지 않았다기보단 보람을 못 느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기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내 글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브런치를 켰다. 나답게도 한두 개 쓰다 말아버린 저장글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브런치 서버에 캐시 덩어리를 하나 더 얹어 놓고 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뭔가 하려고 하지도, 노력하지도, 꾸준하지도 않던 나는 내가 들른 모든 곳에 남아있었다.
그 길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사실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으레 내가 그랬듯이 기대조차 하지 않고, 나는 오늘도 무언가 했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음 날 아침,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알림이었다. 24시간도 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과 그 결과에 두 번 놀랐다.
기쁨과 동시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이제 내 글은 누군가가 볼 ‘수도 있는’ 글이 되었다. 어떻게 쓰지, 어떤 것부터 어떻게 쓰지 와 같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나란 놈은 어제도 아무 글도 쓰지 않았다(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은 했다.)
나는 글을 잘 쓴다고 해본 적은 없다. 그냥 읽는 데 무리는 없는 수준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내가 있는 카페에만 해도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열 명도 넘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 같은 글을 쓰기로 했다. 내 생각을, 나답게 쓸 것이다. 그래서 글의 분위기가 자주 바뀔 수도 있고 주제도 일관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은 에세이를 올리고 어느 날은 짧은 습작을, 어느 날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도 좋고 그냥 글을 쓸 곳이 생겼다는 것도 좋다. 적어도 이번에는 꾸준히 글을 쓸 생각이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