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카 3rd - pentaxMV1+40-80 Macro
펜탁스 MV1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나는 잠시 그 이름을 잊고 니콘 EM을 떠올렸다.
작고 단정한 몸체, 손 안에서 장난감처럼 굴러가는 균형감.
펜탁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으레 기술광학의 단단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곤 했지만, 이런 귀여운 카메라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펜탁스에는 오래된 수동 바디들이 많다. M42에서 PK 마운트, 그리고 오토포커스 렌즈까지. 개체수만 따져도 빽빽한 숲처럼 다층적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펜탁스를 늘 ‘가성비의 끝판왕’이라고 불러왔다. 미러리스 시대를 지나면서도 SLR을 고집스레 내놓는 고집, 한 시대를 통째로 관통하는 마운트의 연속성, 필요 이상의 다양한 군(群)을 만들어낸 호기심. 이런 것들은 결국 하나의 마음을 말한다.
그렇기에 펜탁스 카메라사업부가 리코와 함께 인수되고 다시 조용한 마니아의 세계로 들어간 지금도, 브랜드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믿음’이다. 너무 화려하지 않은데, 묘하게 믿음직한 종류의 신뢰.
MV1을 테스트하던 날, 오래된 AF-16 스트로보를 함께 가져갔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스트로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발광했고, 필름의 질감과 인공광의 단단한 명징함을 동시에 살려주었다. 변수를 안아주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 순간 피사체의 태도까지 달라지는 변화가 있었다. 빛을 다루는 장비는 때때로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황학동을 뒤지던 시절, 손등에 계속 걸리던 렌즈들 역시 펜탁스였다.
가볍고, 정직하고, 고집이 있는 유리들.
내가 지금도 가장 ‘재미있는 중형카메라’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펜탁스 6 ×7을 고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즐거움을 아는 회사는 장비에도 그 성향이 스민다.
MV1은 정말 작다.
과장이 아니라 아이폰과 맞대어 놓으면 크기만큼은 거의 비슷하다. 물론 두께는 넘을 수 없지만, 이 작은 바디 속에 펜탁스가 견지해 온 의지가 스며 있다. 그날 함께 가져간 렌즈는 40–80mm F2.8–4. 49mm 필터를 쓰는 콤팩트한 렌즈. 지금의 비대한 미러리스 렌즈들을 생각하면, 이 작은 몸체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눌러 담겨 있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MV1은 조절해야 할 요소가 거의 없는 카메라다.
조리개 우선 자동 노출, 셔터는 오토 혹은 1/100초, 필름을 넣고 조리개만 돌려두면 대부분의 상황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찍는 사람이 많은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종.
하지만 그 무심함 속에서 오히려 예기치 않은 미묘함이 생긴다.
펜탁스 특유의 발삼 번짐, 인공광과 필름이 만나며 생기는 은은한 산란, 그리고 한순간 피사체의 표정이 잡지의 한 컷처럼 바뀌는 장면.
장비는 그렇게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MV1을 이야기하려면, 자연스럽게 펜탁스 M 시리즈의 흐름을 살펴보게 된다.
70년대 말, SLR 시장은 ‘작아지는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1972년 올림푸스 OM-1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펜탁스가 이에 응답하듯 1976년 MX를 내놓는다.
K1000의 정신을 품되 크기를 0.5cm씩 줄이며 소형화를 완성한 모델.
카메라의 시대가 몸을 가볍게 만들던 시절의 대표작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등장한 ME는 조용했다.
조리개 우선만 지원한다는 이유로, 당시의 ‘모두가 수동을 아는 시대’에는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ME의 디자인은 훗날 ME-super, 그리고 마지막 모델 MG까지 이어지며 M 시리즈의 골격을 잡아주었다. 조용했지만 결국 계보의 중심이 된 셈이다.
1979년이 되면 펜탁스는 새로운 두 모델을 선보인다.
잘 알려진 ME-super, 그리고 기능을 거의 비워낸 MV.
MV는 셔터 속도 확인도 불가능한 초저가형 모델이었다.
교환식임에도 ‘똑딱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그다음 해 등장한 모델이 바로 **MV1(1980)**이다.
셀프타이머, 와인더 지원, 메모홀더.
아주 사소하지만, ‘쓰임’을 향해 손을 조금 더 뻗은 형태였다.
1982년, 마침내 MG가 등장하며 보급형의 완성에 이른다.
뷰파인더 배율을 높이고, 셔터 속도 표시가 가능해지며
“입문자용 SLR의 정답” 같은 결론을 만들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문을 연 것은 MX
계보의 중심을 만든 것은 ME
대중성을 잡은 것은 ME-super
실험과 비움의 상징은 MV / MV1
완성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MG
M 시리즈는 화려한 혁신의 연속이라기보다,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이어져 만든 ‘마음의 계보’ 같은 흐름이다.
이 모든 역사는 결국 작은 바디 하나로 귀결된다.
MV1은 화려하지 않다.
무언가를 더 잘한다기보다,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은 카메라다.
그러나 그 무심한 단순함 덕분에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한 장면들을 만났다.
실내의 인공광 아래에서 잡지 속 화보 같은 순간이 오고,
빛의 산란이 모델의 기분과 태도를 바꿔놓고,
필름의 질감이 오래된 잡지의 페이지처럼 반짝인다.
카메라는 그렇게 사람을 바꾸고,
사람은 다시 장면을 바꾼다.
MV1은 그 경계를 아주 조용하게 건네는 카메라였다.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만큼이나,
그 기억 역시 작고 단단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