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끄적인 일기, 일곱 개의 멀티 페르소나가 되다.

끝없이 나에게로 되돌아온 노력, 일기 쓰기 19년 차의 후기.

by 수우수



일기를 쓰시나요?

저는 일기를 씁니다.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곯아떨어지는 밤도 많지만, 날을 잡고 밀린 일기를 몰아 쓰더라도 꼭 매일의 기록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꼭 구구절절 긴 줄글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몇 개의 흩어진 단어, 오늘 입은 착장을 휘날리듯 그린 낙서, 오늘 마신 커피와 골목에서 마주친 고양이, 기억에 남는 거라면 아무거나 무엇이든 종이에 남기는 것이 저의 일기입니다.


일기를 처음 썼던 기억은 유치원, 어린이집 원생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타의가 아닌 자의로 직접 일기장을 만들어 매일 끈질기게 기록을 남겼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때의 일입니다. 그 물꼬를 트게 한 건 4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던 황 선생님이었습니다. 황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각자의 일기장을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내셨습니다. A4용지를 여러 장 겹쳐 스테이플러로 철하고 자기만의 표지와 일기장 레이아웃을 직접 그리는 숙제였습니다. 그때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은 대체로 숙제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숙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아이들은 손에 꼽았지만, 저는 숙제를 하는 일에 조금 희열을 느끼던 아이였습니다. 우리 집 TV는 공중파 방송만 볼 수 있어서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어떤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고 자연스럽게 교과서 N독하기, 숙제하기가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때우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필통은 보노보노 캐릭터가 그려진 철필통이었는데 참 많이 아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소유한 물건이 너무 몇 없다 보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아끼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보노보노 캐릭터를 따라 그려 저만의 일기장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노보노는 다람쥐와 너구리 같은 친구들이 있었고, 늘 손에 분홍색 조개를 들고 다녔습니다. 그런 요소들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면 일기장 여러 권을 다채로운 보노보노로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꾸준히, 열정적으로 보노보노 일기장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황 선생님께서 제 첫 보노보노 일기장을 아이들 앞에서 소개하며 칭찬해 주셨던 사건 덕분입니다. 열 살의 저에게 그 순간은 마치 라이언킹의 원숭이가 아기 심바를 바위 위에서 들어 올리던 장면 같았습니다. (심바=내 보노보노 일기장/동물들=나와 내 친구들) 그 영광을 계속 간직하려고 일기를 계속 썼습니다. 그림일기를 그리던 습관 덕분인지, 일기장은 자연스럽게 정성 들인 손그림으로 가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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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통통 튀는 캐릭터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



그렇게 쓰게 된 일기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더 심층적으로 치열해졌습니다. 모든 일이 고민이고, 모든 일이 아프고 괴로운, 활화산 같은 감수성의 청소년기니까요. 지금 보면 조금 과한 수준의 비장함으로 세상의 문제들을 모두 떠안고 있던 중학생 시절의 저는 일기장에 그 아픔과 고민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명랑한 보노보노 일기장은 더는 없어진 것입니다. 두꺼운 일기장이 뚱뚱하게 부풀어오를 때까지, 한 장 한 장에 빼곡한 검정을 물들여 갔습니다. 어떤 날은 연필로 종이를 찢어버리고 그 다음날은 사랑 가득한 편지를 쓰고, 그런 식으로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학업에 대해서 더 진지해졌기 때문에 일기장은 제법 어른스러운 어투로 미래를 고민하고 하루를 반성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손때 묻은 손그림의 흔적도 여전했습니다.


초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중고등학생 때에는 일기가 숙제가 아니고 오직 나만을 위한 행위였기 때문에 일기를 쓰는 동안은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느끼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었으니 이 일기장에는 오롯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었지요. 어떤 하루를 보냈든 상관없이 저에게는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스스로를 격려할 일기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기장에 제 꿈을 적고 그림 그리고 시각화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있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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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던 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펼쳐보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때의 감성.



그런 일기 쓰기 습관은 대학생이 되어서 폭발적인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대학생 때 비로소 진정한 사춘기를 겪은 유형이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이 불평이었던 그 시기를 일기장에 화풀이하며 보냈습니다. 다만 일기 쓰기가 그저 분노 표현의 시간이 아닌, 치열하고 촘촘하게 나 자신을 알기 위해 헤매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화가 나고 억울하고 아팠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그런지 몰랐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숱한 글자들을 써 내려가면서 알아내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음표가 가득한 일기장. 많은 장과 권을 할애해도 도무지 해소되지 않았던 그 답답함. 그 과정은 뚜렷한 성과 없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갔지만, 그 끝만은 분명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를 터득했다는 것. 일기를 쓰는 시간이 곧 나 자신을 형성하고 만들어가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은 대학교 3학년 때 개인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 더 체계적으로 발전했고 블로그를 3년 정도 꾸준히 썼을 때쯤 블로그에 적은 글을 엮어 작은 에세이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5년 더 블로그에 일기와 감정, 생각을 기록했고 그 내용을 두 번째 에세이 책에도 실었습니다. 블로그에 8년 정도 글을 남기면서도 손으로 적는 일기장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손으로 일기를, 글자를 적고 줄줄 써 내려가는 행위는 무언가 마음을 씻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아날로그가 주는 치유의 체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 끝에서 저는 저 자신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거센 방황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보노보노로 시작한 일기는 어느덧 '나 자신 알기'라는 셀프 워크숍이자 1인 강연이자 스스로 하는 심리 치료이자 이 시대에서 살아남는 감성과 예술 브랜딩 세션이 되어 있었습니다.



(c) Unsplash



일기 쓰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브랜딩 과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뭘까요. 내가 어떤 커피나 차를 좋아하고 어떤 옷을 입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라는 사람을 어떤 색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철학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가장 자연스러운 내 표정을 알고 사용할 수 있는 것, 사람을 만나서 나누고 싶은 대화 주제를 알고 있고 좋아하는 책과 작가 몇몇을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저에게는 나를 안다는 것이 이런 뜻입니다. 나에 대한 앎이 분명하고 곧게 바로 서 있으면, 인생에서 어떤 풍파를 만나도 꺾이지 않고 나만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일기장 첫 장에는 다음의 목록을 적어두었습니다. 바로 저의 멀티 페르소나(부캐)들입니다. 오랜 기간 일기를 써오며 저에 대한 앎, 브랜딩을 한 차례 마친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페르소나들입니다. 첫 시작은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색'을 발견하고 싶다는 갈망에서부터였습니다. 저의 이름 '수현(받을 受, 옥돌 玹)'에서 발견한 옥돌, 저는 참 이름답게도 보석보다는 옥돌스러운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옥돌 중에서도 '비취'라는 옥을 알게 되면서 비취의 투명하고 짙은 초록이 제 마음과 세계를 그대로 대변한다고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초록과 사랑에 빠져 어딜 가든 초록을 예찬하고 마음 깊이 연모했습니다. 초록을 사랑하던 시절, 그 마음은 단순한 색이 아닌 이 세상이 초록의 생명력을 품길 기도하는 간절함이었던 것이죠. 그런 가치관으로 사람을 만나고 창작을 하고 살아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딜 가든 마음속은 초록색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주에 내려오게 되면서 사랑이 초록에서 파랑으로 옮겨 왔습니다. 계속해서 일기를 쓰고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기 때문에 자아 관념도 이런저런 모양이 됩니다. 하지만 그 본진은 크게 변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자 그렇다면, 혹시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일곱 개의 멀티 페르소나를 소개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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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u, Sue (수) - 저를 '수'라고 불러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 '현'을 탈락시켜(!) 버렸습니다. :) 일을 할 때나 공적인 자리에서 '수'라는 닉네임을 쓰는 편입니다. '수'는 나무를 떠올리게 하고, 수수한 초록을 닮았습니다.


2. 오수 - 학창 시절 때 친구의 이름 앞 두 글자만 따서 부르던 문화가 있었는데, 저는 '오수'였고 길거리에 '더러운 물, 하수구'를 뜻하는 단어로 자주 보이는 단어였기에 조금 슬퍼한 적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오수에는 낮잠이라는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뜻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낮잠처럼 포근한 '오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누군가 오수를 가지고 놀리기라도 하면 바로 반박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3. 오션(Ocean) - 성씨를 포함한 이름 전체인 '오수현'을 빠르게 발음하면 '오션'입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완전 땡큐! 디자이너용 명함에 '오션'을 박을 예정입니다. 바다와 파랑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수' 대신 오션을 쓰기도 합니다.


4. Ossu - 마찬가지로 오수와 비슷한 발음인 '오쓰.' 인사말이기도 하지만, 주로 일본 무도에서 대결을 할 때 넣는 기합입니다. 정정당당히 대결해서 살아남겠다는 정신이 담긴 닉네임입니다.


5. 우수수풀잎, 수우수 - '수'와 풀을 좋아하는 마음이 발전해서 풀잎이 우수수 흔들리는 장면을 닮고 싶었습니다. 책을 판매하는 사이트와 그림 계정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브런치 계정의 이름으로 선택하기도 했네요.


6. 옥돌, Green Jade - 앞서 말한 이유로 한동안 블로그 제목이었습니다.


7. 모아나, 릴로, 요시토모나라의 캐릭터, 비요크 - 이 모든 초록과 파랑, 대결과 저항, 자연스러움과 순수, 따뜻함과 부드러움,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들입니다. 저의 "추구미"이자 페르소나입니다.


이런 개념이 제 안에 단단히 있기 때문에, 저는 어디에 가서도 누굴 만나도 저다울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는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20년 가까이 끈질기게 해왔습니다. 무슨 일이든 2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던데, 나를 아는 일에 도가 튼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일기를 써야겠습니다. 마흔이 되어도, 중년이 되어도, 노년이 되어도. 매일 일기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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