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를 짝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

예술을 몰라도 전시가 좋은 이유

by 파르크

‘전시회 짝사랑자’의 고백

미술 전시를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서울에서 유명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초등학생이던 저는 언니들을 조르고, 엄마를 졸라 전시를 보러 갔습니다. 그 시절부터 전시를 향한 마음은 꽤 진지했죠.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저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시장을 나설 때 뭔가를 ‘이해했다’ 거나, 작가의 의도에 감동받는 경우는 열 번 중 한두 번 정도일까요. 이 정도의 타율이면 그냥 “이젠 전시 따윈 안 본다!” 선언해도 될 텐데, 이상하게도 전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채 전시장을 나설 때면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왜 여전히 이런 걸 좋아하지?’ 싶은 마음도 들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향한 애정은 쉽게 식지 않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찾아오는 ‘이해’의 순간이 너무 짜릿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메시지가 여실히 느껴질 때, 혹은 그 사람의 치열한 고민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때. 저는 그런 작품 앞에서 멈춰 섭니다. 감동을 넘어서, 존경이 밀려옵니다.

생각을 시각화하고 개념화하는 능력, 하나의 주제를 오래 붙잡고 천착하는 끈기. 제게는 없는 능력이라 더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갈망하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세계를 누군가가 구현해 냈다는 것. 그걸 보는 일은 제게 늘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시를 보고 아무 감흥이 없을 때면 괜히 제 소양이 부족한 건 아닌지, 씁쓸할 때도 있어요. 좀 더 많이, 자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제 삶도 훨씬 더 다채롭고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작품을 통해 누군가의 시간과 고뇌가 제게까지 닿을 때, 그 감정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진심에 응답할 수 있는 나 자신도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가끔은 ‘고뇌 없는 작품’을 보면 괘씸할 때도 있어요. “나 지금 진지하거든?” 하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섰는데, 정작 작가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지 않은 것 같을 때. 그럴 땐, 전시장을 나오며 어쩔 수 없이 실망감이 남기도 하죠.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전시장을 찾습니다. 이 짝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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