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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자 Sep 26. 2019

우리가 조금은 잔인한
현실을 살아가는 법

김영하 작가, 살인자의 기억법과 오직 두 사람


최근 김영하 작가의 두 소설을 빠르게 읽었다.


사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로 먼저 접했었는데, 뒤늦게 책을 읽어보니 스토리 속의 디테일과 주인공(연쇄살인범)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적나라하게 전달되는 부분이 많아 놀랐다. 내가 영화를 먼저 접하고 책을 보아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보다는 책의 구성이 훨씬 깔끔하고 전개가 부드러웠다고 생각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번 잡으면 쉬이 놓을 수 없는 책이다.

문단이나 스토리 자체도 쉽고 짧게 구성되어 있고, 장면 전환이 빨라서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숨을 쉬라고 상기시켜 주어야 할 정도로 몰입감이 있다. 책 자체도 길지 않고, 아찔하고도 자극적인 스토리이지만 그에 반대되는 잔잔한 내레이션이 오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과거와 현재의 뒤섞임, 진실과 상상의 뒤섞임 또한 굉장히 매력 있게 다가온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뚝딱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혹자는 이 책이 너무 쉽게 읽힌다면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평할 정도로 다각도로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 읽고 나서도 문체나 스토리의 절묘함에 독자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과거와 현재의 스토리들이 지루하지 않게 섞여있고 살인자의 기억과 감정과 인식의 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말 그대로 늙은 살인범의, 그것도 치매에 걸린 살인범의 속내를 독자로써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살인이 주제 같지만,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으면서는 살인이 아닌 '시간'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주인공이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토록 무서운 연쇄 살인마도 바보로 만드는 것이 시간이라는 녀석이니까. 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시간에 대한 비유나 인용문 등이 또한 너무 좋다.


이 소설의 무서움은 독자로서 하여금 은근하게 이 잔인하고 또라이 기질이 다분한 살인자를 응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람의 목숨, 시체, 혹은 살인을 작은 게임으로 여기며, 이 속에서 같은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교감을 전혀 하지 않는다. 마치 사람을 가축을 대하듯 감정적인 연결 없이 언급하는 말투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당연히 자신의 비사회적인 행동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란 찾아볼 수도 없고, 오히려 이를 자신만이 아는 비밀에 대한 스릴로 느낀다.


자신만의 비밀, 남들은 모르는 자신 만의 비밀에 만족하고, 때때로는 이걸 표출하고 싶어서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액션을 떠벌리고, 이것이 타인에게 문학적 메타포로 해석되면 짜릿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주인공에게도 유일하게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 딸을 있고, 작가는 이 딸을 통해서 주인공의 모순점을 드러낸다. 연쇄살인마인 자신의 딸은 어떻게든 다른 연쇄살인마의 손아귀에서 지켜내고 싶어 한다는 모순점이다. 물론 정상적인 독자들은 딸을 구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감정에 감정 이입되어 딸이 연쇄살인범의 타깃이 되었을 때 이 늙고 치매에 걸린, 즉 이빨이 다 빠진 아버지 연쇄살인범이 현행범에게 지지 않기를 바란다. 독자 또한 감정의 모순점에 둘러싸여 있다. 이렇듯 김영하 작가는 무섭도록 치밀하게 독자들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며, 책을 덮을 때까지 우리를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살인자의 기록, 기억, 망상이 서로 뒤섞일 때, 시간이라는 첨가물이 더해지고, 치매라는 아이템이 섞여 정말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해 낸다. 문장과 내용은 너무나 깔끔한데,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옅은 안갯속을 걷는 느낌이다. 뭔가 보일 듯 안보일듯한 안갯속에서, 저 멀리 있는 것의 형체만 보다가 그 끝에 다가가서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본문이 아닌 책에 함께 들어있는 해설을 인용하자면, 이 책을 통해 '세계가 무너지는'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주인공이 믿고 있었던 모든 기억들이 망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어졌을 때, 그런 모든 순간순간이 공포로서 다가온다고 한다.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한 거라면 나는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일까? 어찌 됐거나 참으로 절묘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의 다른 책, '오직 두 사람'은 '살인자의 기억법'같은 스릴은 없지만,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뒤엉킴 속에서 나오는 오묘함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단편집이라서 더 빠르고 쉽게 읽히기도 하고, 애매하고도 긴 여운이 남는 듯한 끝 맛이 부드럽지만 강렬하다.


특히나 맨 처음 단편인 '오직 두 사람'은 제목만 보면 로맨스 같은 느낌인데, 내용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중 뜨겁게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 차가운 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서막일 뿐이다. 챕터가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경악하게 되고, 제일 마지막 단편인 '신의 장난'은 제일 난해했던 것 같다. 


그 안에 있는 소설들은 아래와 같은데, 제목만으로도 벌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 어떤 단편인지 조금은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현재로서 여운이 남는 스토리는 "오직 두 사람"이 아닐까 싶다. 오묘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는 문체에서 강렬한 매력을 느껴서인지, 추후에 더 자극적이고 난해한 스토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단편이 뇌리에 더 둥둥 떠 다니는 것 같다. 


물론 단편들마다 다른 매력이 있지만 어떤 편은 그냥 편하게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멍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고, 쉽게 읽히지만 내용이 난해해서 잘 이해가 안 가기도 하는 단편도 있었다. 각자의 입맛에 맞춰서 읽을 수 있다는 게 단편의 큰 장점인데, 다른 사람들도 읽고 어떤 부분을 느꼈을지 참 궁금해진다.


김영하 작가의 두 소설을 읽으며, 무엇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 인지,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생각해보았다. 분명 우리는 현실 속에서 비현실성을 겪고 있으며, 이 것을 분간해 내는 것은 작가라는 사람들이 지닌 그 무언가가 아닐까. 김영하 작가는 그것을 아주 잘 인지하고, 우리를 그 세계로 초대한다. 저 안개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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