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도 결국에는 노력인 걸로
내가 한참 대학교를 다닐 때 모두가 가장 많이 하던 말은 바로 "멀티태스커" 혹은 "멀티태스킹"이었다.
그 말속에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있었는데, 마치 여러 개를 한 번에 할 수 없는 사람은 단순을 넘어서 멍청하며 금방이라도 세상에서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도태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모든 일을 '멀티태스킹'화 시키려고 노력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도 쉬는 틈에 또 무엇을 하기 분주했고,
무언가 2개 이상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졸업 후 현장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하나를 해도 '오롯이', '온전히'하는 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다.
물론 멀티태스킹을 했고,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멀티태스킹을 하고자 노력했던 때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업무에 성격에 따라서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내 에너지와 정신력을 온전히 필요로 하는 일도 분명히 있지만
또 많은 생각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를 비우며 동시 진행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내가 '멀티태스킹'을 체득하려고 노력할 때, '싱글 태스킹(single-tasking)'
혹은 '유니 태스킹(unitasking)'이라는 단어를 일찍이 접해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집중'을 배우고 일찍이 연습했더라면 무언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는 24시간이 있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제한된 정신력과 체력이 있다.
그 당연한 이치와 원리를 나는 자꾸 잊거나 기준점을 높게 책정해 놓고는
'해낼 수 있어'라고 하며 의지와 지구력으로 버틴다. 엄밀히 말하자면 메타인지가 부족한 것이다.
즉,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것들,
그렇기에 더 후회되고 미안한 것들에 대한 마음이 항상 남아 있다.
어떻게 해야 한 가지에 온전히,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중요한 것과 비중요 한 것에 대한 기준과 체계를 잡아갈 수 있는 것일까?
워렌 버핏과 그의 전용기 조종사 마이클 플린트의 대화로 이루어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참고: https://www.brandambassador.life/ko/kr/post/notodolist)
플린트는 자신의 커리어와 목표에 대해 버핏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버핏은 플린트에게 현재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 25가지를 적어보라고 했고
플린트는 수분 동안 고민한 끝에 25가지 목표를 완성했다.
버핏은 25가지 목표를 다 적었다면 이제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5가지 목표에 동그라미를 쳐 보라고 말했고
플린트는 다시 고민 끝에 가장 중요한 5가지 목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제 플린트는 5가지 목표로 구성된 목록과 나머지 20가지 목표로 구성된 목록 두 개를 갖게 되었다.
플린트가 말했다.
"이게 제 삶에서 당장 최고로 중요한 것들이네요.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내일, 아니, 오늘 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지, 각각의 목표들의 기한은 얼마나 둘 것인지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버핏이 그의 나머지 20개가 적힌 리스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나머지 20개의 목표들은 어떻게 할 텐가? 거기에 대한 계획을 말해보게."
플린트는 자신 있게 말했다.
"5개의 목표는 당장 최우선으로 집중해야 할 목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20가지의 목표들도 중요하죠.
그러니 주요 목표 다섯 가지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틈틈이 노력해 나머지 목표들도 꼭 이루겠습니다."
그러자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틀렸네. 나머지 20가지의 목표들은 '자네가 어떻게든 피해야 할 목록(avoid all cost list)'이네.
자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다섯 가지 목표들을 전부 달성하기 전까지
그 외의 다른 목표들에는 관심도 기울여서는 안 되네.”
한 가지를 완벽하게 하는 것도 분명 어려운 일인데 왜 자꾸 나는 여러 가지를 다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건 분명히 도전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의욕과 열정이 넘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나의 장점이자
나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스스로 계량하지 못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모하게라도 도전해서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들도 벌려 놓는 나의 단점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막연하게 선택과 집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나의 두 문제점은
1. "그래도 나는 할 수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2. 포기하는 것이 노력을 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느껴지기에 바보 같이 다 안고 가려다 결국 익사하는 점.
이런 나를 보면서 선택과 집중은 더욱 많은 의식적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 또한 내가 나의 역량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까지도 내가 정말 중요한 선택과 판단을 당장 잘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인식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전과 지금의 나를 보면서 느낀다.
인식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가?
맞을지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내 인생 속의 '선택'과 '집중'에 대한 강한 필요성과 의지를 느꼈다는 것을 언젠가 미래의 내가 알았으면 한다.
또 여태껏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괜찮다고, 힘내라고도 해주고 싶다.
욕심이 많아도 괜찮다고.
그냥 머릿속 서랍들을 잘 정리하고 생각의 옷가지들을 잘 개어 놓고, 널어놓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그렇게 깨끗하게 가꾸고, 다음 시즌이 오면 또 그 옷들을 잘 입을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겨울에 대비하지 말고 가을에만 충실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