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와 시벨리우스의 정원
헬싱키 . 베르겐에서의 여름
시벨리우스의 집 (Ainola)
부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아이노의 집'이라는 의미의 '아이놀라'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기차로
30여 분을 가는 조그만 시골역 예르벤페에서 다시 2km 정도 택시를 이용하여 산 진입로까지 가야 한다.
핀란드인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던 작곡가 시벨리우스가 40세 즈음 결혼 후부터 아이노와 살며 작곡에
전념했던 집이다. 92세에 집 앞 정원에 묻히기까지 무려 50년을 넘게 살았으니 태어나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하멘린나의 생가보다 이곳을 엿보기로 했다.
떠나기 전 나의 여행 노트에는 두 곳을 다 보겠다는 의지가 낙서되어 있으나 그러긴 쉽지 않지요. ^^
친구이며 당대 유명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아이놀라는 집에 속한 부지만 거의 작은 산 하나에 해당된다.
산 입구에서 핀란드의 시골 할머니들이 야생 베리를 듬뿍 얹은 수제 케이크를 팔고 있었다.
핀란드다운 깊은 숲과 멀리 투술라 호수를 전망할 수 있는 언덕에 창을 많이 가진 북유럽 특유의 가옥이
소박한 듯 깊이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정원에서 동료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사과나무들이 푸른사과를 매달고 또는 바닥에 이리저리 떨어뜨리며
적막한 오후의 시간을 과거로 이끈다. 정원 어딘가에는 시벨리우스 부부의 영원한 안식처가 있다.
침엽수가 가득 찬 뜰에 통나무로 지어진 여러 개의 별채가 있었는데 그중 자작나무 숲에 싸인 한 별채에서 조금 앉아 쉬었다.
시벨리우스 음악의 그 깊고 장엄한 감성들이 모두 이 곳 아이놀라에서 창작되었으니 그의 조국 핀란드의 음률이 그대로 살아 있을 곳이다.
그들에겐 제2의 국가나 같은 '핀란디아'를 권하던 모든 헬싱키의 기념품 가게들,
노르딕 클래식이란 원어의 반가움이 있는 교향곡 2번과 핀란디아 CD를 샀다.
비의 도시라는 베르겐에서 그럭저럭 잘 피해 다니며 일정을 마치고 다행히 떠나는 날 아침에만
제대로 비를 만났다. 피요로드까지 거쳐온 터라 북구의 여름이 얼마나 추웠었는지 벨로아 느낌의
스웨터를 사 입기도...( 아직도 내 옷장 맨 안쪽을 차지하고 있는)
피요로드 중간 기착지 구드방겐의 절경과 추위 속에 나눠 먹던 뜨거운 얼그레이 한 잔은 어찌나 행복하게
마셨던지 그후 어디서든 그 티를 선택한다.
북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마리아 성당이 가까운 숙소는 북유럽 분위기 물씬하던 호텔인데
로비가 마치 바이킹의 요새 같았다. 어딜가나 바이킹의 목선들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다.
흰 돌벽의 요새같던 성당을 지나 아침 부둣가에 가면 금방 삶아 건져 올린 분홍빛 새우살들이
큰 모둠씩으로 쌓여 있고 정박되어 있는 크고 작은 배들과 색색의 목조 건물들이 늘어 선 거리,..
전생의 어느 한 자락 같은 익숙한 기분은 유년의 어딘가에 그런 부둣가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까?
(나는 남해 바다를 끼고 살던 항구 도시 출신이다.)
8월의 마지막 날을 베르겐에서...
그리그의 집 트롤 하우겐( Troldhaugen )
브뤼겐 부둣가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간
다음 내려 10분 정도 더 숲길을 걸었다. 이 길도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수령이 오래된 너도
밤나무 군락이라고...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입구 쪽에 박물관도 만들고 저절로 길도 형성되었지만 부부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며 요정의 이름을 따 트롤의 언덕이라고 했을 때는 그만큼 더 야생의 숲과 피요로드를 낀
원시적 모습이었을 듯...
하얀색의 목조 건물에 불이 밝혀진 예쁜 엽서를
한 장 샀다.
작곡을 할 때에는 너무나 예민해져 피요로드가 바라보이는 작은 오두막에서 혼자 기거했다고 한다.
하얀 레이스 커튼이 쳐진 앤틱의 실내에는 그의 악보와 필기구까지 그대로 진열되어 있다.
피요로드를 향해 난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북유럽 특유의 잔디 지붕과 유리창으로 전면을 한 콘서트홀이
있고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작은 무대가 있어 시즌에는 유명 음악회가 열린다고...
북유럽의 어둡고 습한 날들 속에 그리그 부부의 불 밝힌 집에는 놀웨이적 서정과 수많은 신화를 소재로 담은 그리그의 음악이 작곡되고 있었다.
절대적 지지자였던 아내 니나와 죽어서도 함께 아름다운 피요르 해변을 보기를 원했다는 그의 뜻대로
바닷가 암벽을 뚫어 만든 묘지도 인상적이다.
아마 우리가 사랑한 '솔베이지의 노래'처럼 영원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