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호주?
전혀 로맨틱하지 않잖아.
나와 남편은 늦은 신혼여행으로 호주를 선택했다. 로맨틱한 신혼여행지가 도처에 널렸는데 굳이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우리가 떠나는 계절이 하필이면 겨울이라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고, 두 번째는 남편의 친구가 호주에 살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가봤는데 남편만 아직 못 가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니, 이건 전혀 공평하지 않아!' 라며 정의감에 불타 '내가 너 호주 보내준다!'며 호언장담 했던 과거의 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주에 가면 진짜 재밌겠다! 그치?"
"..."
호주 가자고 큰소리쳐놓고 도리어 나는 좀 심드렁해졌다. 여행지에 대한 신비로움이 있어야 설레기 마련인데 나는 이미 호주에 너무 많이(?) 가봤기 때문이었다.
'기왕이면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곳이 좋지 않을까?.'
'나에게 새로운 곳은 어디일까?'
'새로운 방식의 여행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러다 지나간 나의 로망이었던 미국 횡단 열차 여행이 떠오르고 렌터카 여행이 떠올랐으며 기어이 캠핑카 여행으로 생각이 흘러간 것이다.
그렇다. 캠핑카다.
캠핑카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신비롭고 호기심이 생기며 설레었다. 도전을 필요로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번엔 둘이서 떠나니 상대방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즉흥적인 아내
완벽하고 싶은 남편
여행의 필수 준비물, 부부 싸움?
평소 몹시 즉흥적인 나는 묘하게도 이번 3주간의 호주 캠핑카 여행 준비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안 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시간만 죽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름 전직 승무원으로 안 가본 나라가 별로 없는 데다 호주는 이미 몇 번이고 가봤는데도 여행지에 대한 지식의 깊이가 참으로 얕았구나 싶다. 워낙 준비 없이 가는 여행에 익숙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대충 아는 것은 결코 아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 나의 뼈를 때리고 있었다.
게다가 렌터카 여행은 해봤지만 렌탈을 직접 하는 것은 처음이다. 본드 피, 톨 패키지, 시큐리티 디파짓... 생소한 단어들에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다. '에잇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도망쳐버리면 그만인 듯하지만 차를 빌리는 데 있어 중대한 단어인듯하고 자칫하면 금전적 손해로 이어질 것 같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비행기 티켓, 캠핑카 렌트 등은 미리미리 해야 싸다. 이렇게 며칠 안 남겨놓고 예약하면 두 배는 돈을 줘야 한다. 어째서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한 걸까? 왜 굳이 같은 것을 비싸게 사는 짓을 하는 걸까?
여행 계획 안 짜 본 사람의 여행 계획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왜 남편은 준비하지 않는 걸까? 어째서 나같이 준비력 빵점인 인간에게 모든 걸 맡겨놓고 모른 척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이전 여행도 비슷했다. 나 혼자 낑낑대고 알아봤던 것 같다. 이유는? 내가 외국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 을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론 나도 정보력에 있어서는 깡통 수준인데 그런 나조차도 스스로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나의 분노가 폭발을 했다. 그런데 남편도 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간의 노력에 대해 감사해하고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몹시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알고 보니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그동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기준에 맞춰주고 싶은데 그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섣불리 덤벼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력자로 묵묵히 있어준 것인데 내가 대뜸 신경질을 내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나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남편이 처리해야 하는 것들 중 잘 모르는 분야, 회계, 돈 문제, 여행과 같은 것들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우선 미뤄두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다. 당장 완벽하게 하기 곤란할 것 같은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완벽한 시나리오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지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이기심을 발견했다. 화가 나고 억울했던 남편이 '그럼 내가 다 알아서 할까?'라는 말에 흠칫했다. 알아서 하고 싶은 건 나였다. 남편의 역할까지도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하는 철부지 아내였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여행도 출발 날짜가 코앞에 와서야 다급히 준비하느라 고생이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데 계획을 짜려고 하니 얼마나 버거웠을까!
이렇게 부담스럽고 때론 피곤한 여행,
대체 왜 떠나려고 할까?
여행 준비가 설레기만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전반적인 과정을 보면 부담과 괴로움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예전에 강남역 부근의 천막에서 사주를 보던 아저씨는 나의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유심히 보며 물을 건너 다닐 팔자라고 했었다. 직장도 물을 건너 다녀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나는 그 이야기가 싫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매년 주야장천 물을 건너 다니고 있다. 직업도 그렇다. 7년간 승무원을 했고 지금도 강의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여행은 도피이면서도 도전이다.
도망치면서 다가가는 행위랄까?
지루한 일상의 삶에서 도피하여 전혀 모르는 탐구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도피하면서도 마냥 후련하지만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르는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
위기의 상황에서 날 것의 나를 만나게 된다.
여행은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부부는 과연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게 될까?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