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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Feb 10. 2020

2.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랑해.

일상에서 도피하기 전, 내 삶과 운명에게 하는 사랑 고백

떠나는 그대여 울지 말아요.
슬퍼말아요.



12월 29일, 드디어 호주로 떠나는 날이다. 우리는 해가 질 무렵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연말인데도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공항은 온통 북적였다. 밤 비행기라 시간이 남아 공항 내부를 조금 걷기로 했다. "내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라며 앞장섰지만 어쩐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이 이제 너무나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공항에 대해서는 정말 자질구레한 것까지 알고 있었는데 마치 처음 온 마냥 버벅거리는 내가 어색했다. 이제 자주 오지 않는 데다가 공항도 자꾸 변하니 당연한 건데도 마치 나 혼자만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


서글펐다.


오래전에 살던 동네에 들르면 옛 생각에 괜히 슬퍼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기분은... 마치 단순히 내가 이방인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굉장히 소중한 것을 뺏긴...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서러웠다.


대체 왜 이렇게 서글프고 서러웠던 걸까?








어릴 적의 나는 공항을 정말 사랑했었다. 21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승무원으로 일하기 바로 직전까지. 아무 날도 아닌데 무작정 공항에 가고 싶었던 날들도 많았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과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자유와 설렘, 만남과 이별의 극적인 감동이 좋았다.


그러나 승무원으로 일하는 순간 공항은 일상이 되었고 점점 미워졌다. 괴로웠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자주 여행을 갔지만 여전히 공항은 갑갑했다. 공항 밖을 얼른 빠져나오고서야 안도하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유니폼을 입은 나 자신을 가끔은 부끄러워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얼른 공항 화장실에 가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안심했으니까. 나에게 유니폼은 어떤 옷보다 자주 입는 일상복이었다. 그리고 일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미울 때 나는 항상 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지금은 엄마 집 내방 옷장에 하나 남아 걸려 있는 낡은 유니폼 볼 때, 그리고 그토록 미워했던 공항을 바라보며 나는 이토록 서럽고 서글픈 것일까?



"너는 그게 필요 없구나?'

"뭐가?"

"네 삶을 불평하는 사람에겐 네게 주어진 일상은 너무 과분한 것 같아."



나의 삶에 대해, 나의 일상에 대해 감사할 줄 몰랐던 바보 같았던 나에게 누군가가 냉정히 그것을 거둬가 버린 후에서야 정말 소중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을 복잡해하는 나. 더 이상 공항 맛집을 찾아갈 수 없는 나. 당연히 외우고 있었던 수화물 규정을 꼼꼼히 읽게 된 나를 바라보는 것이 가엽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 순간 나는 인정해야 했다.

참 괴롭다고 느꼈던 이 일터를 사실은 몹시 사랑했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때는 나를, 내 삶을 사랑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일상도, 나의 삶도 나는 어쩌면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사실을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나는 내 일상에서 잠시 도피해 호주로 여행을 떠나지만 지금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때 내 삶을 더욱 사랑해야지. 매 순간의 나를 더 사랑해야지.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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