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km의 길을 '걸어 내야' 하는 길, 안락을 추구하는 정상(?)인이라면 굳이 선택하지 않은 험난한 길,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길, 그 길이 바로 산티아고이다. 그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 "거길 도대체 왜가?"하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 내 선택이 그 정도로 충격적인가? 하고 반추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남들의 굳은 질문에도 자신감 있게 답할 수 있었다. "다 이유가 있느니라."
도대체 왜 떠나려는 건지.
그곳이 왜 하필 산티아고 인지.
두고 봐.
나는 해답을 찾아올 테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자전거길)로 515km, 산티아고 순례길은 800km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가기 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가방을 싸는 일! 전직 승무원인 나는 가방 싸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몇 분만 주면 완벽하게 쌀 수 있다. 승무원 생활을 그만둔 뒤로도 전국으로 강연을 다녔다. 역시나 가방 싸는 일이다. 절대로 빼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더라도 몇 분이면 된다.
그러나 산티아고를 위한 배낭은?
대체 무엇을 챙겨야 하나? 스페인의 시골 길을 걷는 동안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뭐지?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 밖에 하지 않은 37세 여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배낭의 무게가 정해져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자기 몸무게의 10%. 침낭의 무게만 1kg이다. 아무리 줄여도 줄여도 줄일 것이 없다.
화장품? 안 챙겨갔다가 얼굴 난리 나면 어떻게 해? 이래 봬도 나름대로 관리(?)하는 여자다.
슬리퍼? 발에 물기 있는 채로 등산화를 신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 쳐진다.
헤드라이트? 깜깜할 때 나 혼자 어떻게 해?
선글라스? 스페인 사람들도 오후에는 햇살 때문에 가게 문 닫고 낮잠을 자는데...
비상약?... 그야말로 비상이다.
말을 말자....
휴대용 파스? 벌레약? 보호대? 등산스틱? 간단한 조미료등의 식료품... 꼭 챙겨가야 할 꿀팁 물품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필요한 이유도 각각 논리적이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도저히 뒤져도 뺄 게 없는데 뭐.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겼는데 20Kg에 육박한다. '읏차'하는 씨름 선수 같은 소리를 내며 가방을 둘러 메본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은
정말 나쁜 생각이었다.
산티아고를 걸은지 3일째 되는 날, 애먼 하늘을 노려보며 눈물을 찔끔 흘렸으니까.
심지어 3일 째날은 발바닥 물집이 심해서 배낭을 다음 목적지로 배송시켰었다. 그런데도 비루한 내 육신은 한계를 여러 번 경험했다. 침대에 눕는 순간마저도 괴로웠다.
난 여기 왜 왔지?
대체 뭐 때문에 돈 들여 시간 들여 이 생고생을 하고 있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자신과 친해지기 위한 여행인데 3일 만에 절교하게 생겼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파리로 돌아갈까?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는 순간!!!... 불현듯 내 안의 진정한 나 자신과 대면하기에 이르렀다.
아! 이게 바로 나구나.
내 인생이 무거웠던 이유.
1. 순수한 나의 욕구, 나의 가치, 나의 노력을 사랑할 줄 몰랐기 때문에.
2. 씩씩하게 잘하는 나, 위기를 극복하고 정진하는 나, 칭찬받고 멋진 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워지기 위해 나를 제대로 본다.
여기서 그만둔다 해도 난 괜찮은 사람 아닌가?
해답을 찾겠다고 가방 싸서 온 것만으로도 멋진 사람 아니야?
나의 실행력은 작았던 생각을 기어이 현실로 만들어 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스페인 작은 숙소에 누워있을 수 있지.
와, 이걸로도 진짜 멋진데?!
왜 모든 짐을 다 둘러메고 완벽하게 걸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동안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자신이 만든 압박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일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해내야 한다고.
이 정도로는 안된다고.
더 해야 한다고.
압박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혼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이 정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 팜플로나의 숙소 침대에 누워 드디어 나 자신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묘한 경험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또 다른 내가 천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굴의 마라톤 선수처럼 기어이 목적지에 도착한 나.
힘들지만 해답을 찾겠다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
그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또 다른 내가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네었다.
천천히 해도 돼.
괜찮아.
이미 훌륭해.
내가 하려던 것을 하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잘하고 있다.
3일째, 위기 속에서 진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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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월요일에 다시 만나요! :)
송수연 코치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여 원하는 삶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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