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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많은 인간의 솔직한 이야기

by 송수연

엎드려 자다가 상체를 세우면 트림이 나지 않느냐고 남편이 물었다. 엥? 자다가 웬 트림?

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고등학교 때 책상에 엎어져서 주야장천 자던 애가 바로 나였다?


남편은 날 한심하게 쳐다보았지만 사실 한심한 게 아니라 슬픈 일이라고 이게…. 잠을 자고 싶어서가 아니라 깨어있을 수가 없는걸 뭐.


잠의 노예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어느 노인이 말했다.


괜찮아, 나이 들수록 잠도 없어져.


젊은 게 할 일 없어서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고 앉았다는 표정이었으나 정작 그 젊은이는 노인의 말을 듣고 안도했다. 아니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어쨌든 시간이 좀 더 지니면 잠의 노예 생활도 청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시간은 마룻바닥에 떨어진 버터처럼 매끈하게 흘러가버렸고 나는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졸려 죽겠다. 흑흑. 다만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


나의 서른 중반 어느 지점에 잠에 관련한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비행기 승무원을 그만두었다는 것. 드디어 야밤에 눈을 부라리고 일하지 않게 되었으니 엄청난 변화였다. 그러나 여전히 잠들기 싫은 야행성 원숭이처럼 밤만 되면 부엌을 뒤져 먹이를 찾고 햇빛 대신 블루라이트를 쬐며 화려한 밤 생활을 했다. 그리고는 냅다 12시간씩 기절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변화가 기가 막힌데 잠에 대한 징그러운 미련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뭐 이딴 걸 결심까지 하나 싶겠지만 30살 중반까지 잠과 사투를 보내다 보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이전까지 잠을 줄여야지 결심했었다. 정말이지 어림도 없는 결심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사실 이 모든 변화의 기저에 세 가지 자극이 있었는데 첫째는 어느 교수가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음)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차이는 아침형 인간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점이라고 말했을 때이다. 그날 몹시 위로를 받았다. 두 번째도 어느 교수의 말이었는데 밤에 깨어있고 낮에 많이 자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며 저녁형 인간은 불침번의 후예라고 말해주었을 때인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 교수가 누구인지 도당체 모르겠으니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남은 인생을 라이프코치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내 자신부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자고 정했기 때문이었다. 뭐 어때. 나는 잠이 많다. 어쩌라구!


그 이후로 또다시 10년이 지났다. 난 여전히 매일 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졸려 죽겠다. 그래도 괜찮다. 졸리면 이따 밤에 자면 됩니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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