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과 / 구병모 저 / 2018년 출간
워낙에 유명한 책이다. 언젠가 꼭 한번 읽어 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주 들리는 대형마트에 자리한 중고서점에서, 나의 "파과"를 발견했다. 단단한 양장본. 하지만, 최근에 읽고 있던 벽돌책, 모비딕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조각의 단검이 이런 느낌일까?
파과는 깔끔한 소설이다.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조각의 세상에 몰입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동시에,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물론 동화같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초등학생에게도 권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이고 다소 잔인한 면은 있지만,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잔인함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잔인함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 안 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한다는 핑계도 대지 않아. 개개인의 정의 실현이라면 그거야말로 웃다 숨넘어갈 소리지. 하지만 말이다.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로 모은 돈을, 나중에 내가 쥐나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대로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구나. (p.34)
주인공 "조각"은 60대 여성 살인청부업자다. 점차 노쇠해 가는 일만 남아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인생에 등장한 강박사와 투우, 몸과 마음에 한가득 상처를 남긴 그 일들은 조각에게 무슨 의미일까? 슬픔보다는 지독한 허무함이 맞지 않을까? 작중에서도 말하듯이,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 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허무함 속에서도 한 번의 빛나는 순간의 의미를, 조각은 믿는다.
인생의 무한한 지난함 속에서도, 밤하늘에 쏘아 올려진 불꽃의 순간을 믿는, 또는 믿으려고 노력하는 우리처럼.
"조각"의 인생은, 과거의 "상실"에 새로운 "상실"이 겹겹이 덧칠된 인생이다. 류를 만나기 이전의 상실, 그리고 류. 무용, 그리고 투우. 그리고 벌레만도 못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녀가 그동안 앗아가 버린 생을 생각하면.
하지만, 동시에, 삶의 순간순간에 빛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