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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냄새는 나를 깊게 숨 쉬게 한다

순남씨의 부뚜막에서 내가 컸다

밥을 느긋하게 하기 시작한 것은 전기로 하는 밥솥을 들여놓고서 부터다. 그 전에는 직화 압력솥을 사용했었는데, 압력솥이 터질까 싶어 밥을 올려 놓고 늘 언제 불을 꺼야하나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다 이사를 하면서 인덕션 렌지를 사용하게 되었고 압력솥을 전기압력솥으로 바꾸게 되었다.  더 이상 불 앞에 서서 언제 불을 끌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밥 냄새를 맡았다.

온 집안을 휘감고 내 코의 후각세포에 도달한 냄새 분자들의 자극은 은근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뭐랄까 그냥 푸근해졌다. 여유로운 냄새, 크게 호흡하게 만드는  냄새. 질리지 않는 냄새.


직화 압력솥의 딸랑이 앞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 거리며 언제 불을 끌까 판단 할 때 맡았던 냄새와 사뭍 달랐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입자들이 코를 지나 목구멍을 거쳐 폐를 부풀리고 심장을 따뜻하게 데운 후 목덜미를 통해 뇌 속 저 깊은 저장소에 묻혀있던 할머니 밥을 불러내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해 주시던 밥도 이런 냄새였겠지? 할머니가 해주셨던 수많은 음식 중 내가 가장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이 '밥' 아닐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일반미, 정부미, 아끼바리, 통일벼가 할머니가 구입하시던 쌀들의 이름이였다. 벼품종 개량이 그 동안 많이 되었다고 해도 지금 내가 구입하는 쌀이 특별한 것이 아니므로 할머니 시절의 쌀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풍년압력솥은 사용하셨다. 물론 할며니는 작은 솥밥도 가마솥밥도 지으셨지만, 나와 살던 시절에는 압력솥을 주로 사용하셨다.


재료도 비슷하고 조리도구도 비슷하니 결과물도 비슷하지 않을까? 밥맛까지는 몰라도 밥 냄새는 그래도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한 개쯤 할머니가 해 주신 음식과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있었는가 아니면 그냥 할머니가 그리워진것일까.


나는간편식 포장밥을 사지 않는다. 대신 밥을 해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데워 먹는다. 밥을 조금 더 자주하기 위해서. 그래야 밥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까.


커버이미지출처 : PN풍년 회사 홈페이지-연혁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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