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할머니의 무장아찌에서는 콤콤한 냄새가 났다. 색도 고동빛이였다. 할머니는 무장아찌를 무채처럼 쫑쫑 썰어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주셨다. 밥반찬이자 내 도시락 반찬이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가장 비슷해 보이는 무장아찌를 사먹어 보기 시작했다. 풀무원에서 ‘꼬들꼬들한 간장 무채 장아찌’를 판다. 포장을 뜯어서 바로 먹으면 된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맛 보다 달다. 아쉬운데로 가끔 사먹는다.
어느 날 한살림에서 ‘무장아찌’를 발견했다. 무 반쪽을 포장지에서 뜯어 무장아찌 귀퉁이를 떼어 먹어보니 짠맛에 혀가 아릴 정도였다. 냄새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할머니표 무장아찌와 매우 흡사하다! 제조사의 만드는 법을 보니 무를 간장에 반년 담가 두었다가 다시 된장으로 옮겨 반년 더 숙성한단다. 회사도 충북 청원군 내수면에 있다니 우리집과 한동네라 할 수 있다. 그랬구나. 할머니도 간장에 무를 담갔다가 된장에 다시 무를 박아두는 방법을 사용하셨던 것이 분명하다.
일년의 시간이 필요한 무장아찌를 가게에 가서 낼름 돈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지금이 좋은 시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쁘다는 핑계. 장독이 없다는 핑계. 핑계가 산이다.
그때는 먹을 것이 그것 밖에 없었지 라고 퉁 치고 싶어도 어릴 적 입맛이 무섭다. 영양가라고는 없을 것 같은 짠 무장아찌가 가끔 먹고 싶다. 오독오독 씹혔던 무.
한살림에서 구매한 무장아찌를 채 써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할머니의 무장아찌 채는 투명하게 보일만큼 얇으면서도 균일했었다. 내가 썰어 놓은 무장아찌는 얇은 것은 고사하고 일정한 크기로도 못 썰었다. 채썬 무장아찌를 물에 지나치게 오래 담가 둔 탓에 내가 기대하던 짭쪼롬한 맛도 다 없어져 버혔다. 싱겁고 기름맛만 겉돌았다. 다음 번에 좀 더 잘 해보고 싶다.
할머니는 무장아찌말고 ‘다꽝’ 즉 단무지도 잘 담그셨다. 할머니의 20대 시절은 일제 강점기의 끝과 한국전쟁에 걸져 있었다. 가끔 일본어도 섞어 쓰셨고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 어딘가에서 신접살림을 하셨다고도 했다. 그 때 배우신 걸까. 단무지용 무는 통통한 무가 아니라 길쭉한 무로 만드셨다.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무가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옛날 부엌 앞에 묻혀있던 커다란 장독에 무를 켜켜이 넣으시곤 했다. 양념을 어떻게 하셧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집 단무지는 홈메이드였다.
김밥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고 반달모양으로 얇게 져며져 밥반찬으로도 상에 올랐다. 단무지도 쫑쫑 채로 썰려 무장아찌 무침과 같은 양념에 무쳐져 내 도시락 반찬통에 담겼다. 일본 생활 탓인지 할머니는 늘 다꽝이라고 하셨지 단무지라고 하신 적은 없다.
단무지는 주로 중국집 밑반찬으로 나올 때 한점 먹었을 뿐 내 손으로 사먹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쫑쫑채썰어 양념된 새콤달콤매콤한 단무지 무침은 가끔 먹고 싶어지니 정말 어릴 적 입맛이 무섭다.
※꼬마이모의 증언
할머니는 단무지를 만드실 때 등겨(쌀겨)와 소금으로만 만드셨단다 노란색을 내고 싶을 때는 치자를 쓰셨단다. 무장아찌는 겨울에 동치미를 먹고 남은 무를 외간장(요즘 시판간장, 조선간장 아님)에 담그는 것이었다고 한다. 된장에 무를 박지는 않으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