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칼국수

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친구가 통영에 산다. 통영이 언제부터 관광지였을까 싶긴 한데, 지금의 통영은 어촌이라기 보단 관광지다. 벚꽃이 지천일 때 가고 싶었으나 뭐 늘 그렇듯 벚꽃이 다 지고 나서야 가게 되었다. 이번 통영에서 먹은 외식은 톳김밥, 고등어김밥, 도다리 쑥국, 그리고 해물칼국수다.

봉수골에 있는 <옛날생각>에서 해물칼국수를 본 순간 할머니의 칼국수가 떠 올랐다. 할머니의 주방도구 아이템 중에 홍두깨가 있었다. 홍두깨는 두께가 굵고 길이가 길고 재질이 단단한 방망이다. 우리 집 홍두깨의 존재 의미는 칼국수 면발과 만두피 제작에 있다. 우리 집 칼국수 면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① 홍두깨를 밀려면 일단 방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깔아야 했다. 밀가루가 많이 날렸기 때문이다.

② 신문지 위에 우리 집에서 가장 커다란 도마가 놓인다.

③ 도마 앞에 완성된 칼국수 면을 놓을 둥그런 양은 쟁반도 비치된다.

④ 밀가루 반죽을 도마 위에 놓고 홍두깨로 넓게 민다.

⑤ 미는 중간 중간 도마 위에도 밀가루를 넉넉히 뿌린다. 저렇게 많이 뿌려야 하나 싶을 만큼 할머니는 밀가루를 많이 뿌렸다. 그래야 밀가루 반죽이 도마, 홍두깨에 들러 붙지 않는다. 물론 반죽사이 사이에도 밀가루를 뿌린다.

⑥ 할머니의 양팔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을 때 까지 쭉쭉 반죽은 밀렸다. 면발의 두께를 일정하게 만들기 위해 할머니는 처음 시작은 동그란 반죽의 끝을 돌려가며 밀다가 어느 시점에는 볼록하게 남아 있는 반죽의 중앙을 밀어냈다.

⑦ 얇고 큰 원 모양으로 만들어진 밀가루 반죽은 반으로 접혀 반원이 되고 다시 반으로 접히고 또 접힌다. 접히기 전에도 밀가루를 쓰윽 문질러 준다.

⑧ 이제 칼질이다. 칼로 면을 고르게 자른다. 꼬불꼬불 켜켜히 얌전하게 접힌 단면이 드러나면서 칼국수면이 만들어 진다.

⑨ 만들어진 면발들은 양은 쟁반 위로 흩뿌리듯 던져 진다. 서로 붙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할머니는 칼질 장인이셨다. 김장용 무채, 김밥용 당근채, 국수고명용 호박채, 칼국수용 면발까지 굵은 채 가는 채 모두 자로 잰 듯 균일하게 썰어 내셨다. 내가 채칼을 유달리 사 모으는 이유도 아마 할머니의 채 써는 솜씨를 기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칼질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필요에 맞는 일정한 두께의 식재료 손질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으킨 집착적 소비라고 해 두자.


통영의 해물칼국수를 본 순간 할머니의 칼국수가 전광화석처럼 떠 오른 까닭도 그릇에 담겨있는 칼국수 면의 모양새 때문이었다. 면발의 두께가 일정한 것이 도톰하여 할머니의 칼솜씨를 내 기억에서 끄집어 낸 것이다.

우리 집 칼국수는 고명이랄 것도 없는 슴슴한 칼국수었다. 멸치 육수에 반달모양 썰기가 된 애호박이 건더기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칼국수는 맛있었다. 깔끔하고 담백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들어간 재료가 간단했다. 내 솜씨로는 재현이 불가하다.


생각해 보면 집에서 칼국수를 만든다는 것이 보통 번잡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해보니 그런 줄 알게 되었다. 할머니 방삭대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을라치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밀가루를 치대어 반죽을 만들고 나면 반죽을 좀 쉬게 둬야 한다. 레스팅 타임이다. 미리 반죽을 해 놓아야 했다는 말이다. 할머니도 그렇게 하셨다.

밀대로 반죽을 밀어 칼질로 면발을 뽑는데도 힘이 많이 든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리고 만들어진 면은 바로 삶아야한다. 면이 마르기 때문이다. 즉 먹을 때를 미리 생각해서 반죽도 하고 레스팅도 하고 미는 작업도 해야 한다는 것. 참으로 힘도 많이 들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한그릇이다.


칼국수는 먹을 사람 수에 맞춰 얼마나 만들지 가늠도 잘 해야 한다. 남으면 다시 데워 먹을 수 없다. 재탕한 칼국수라..... 팅팅 분 칼국수를 먹은 적이 없다. 양이 모자라면 모자란데로 찬밥을 말아 먹었다. 할머니는 먹을 사람 수에 딱 맞춰서 끓이셨다. 어떻게 가늠하신 거지?


(요즘 시판되는 칼국수용 생면 1인분이 나에게는 많다. 아깝다는 생각에 남은 생면을 얼렸다가 녹여 사용해보니 이도 저도 아니다. 녹으면서 면들이 들러붙어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몇 번의 실패 후 칼국수는 집에서 만들지 않게 되었다.)


한번 먹자고 할머니가 그렇게나 수고를 하셨던 거라는 걸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앉은 자세로 허리를 굽힌 채 양손으로 밀대를 둥글게 말아 쥐고 양팔을 힘껏 앞뒤로 밀고 당기면서 밀대로 반죽을 밀어 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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