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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an 13. 2019

프라하에서 처음 사귄 현지인 친구 이야기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여섯 번째 러브레터

@프라하 중앙역, 체코 프라하


** 이 글은 동유럽 여행에서 경험한 인종차별 경험 및 그에 대한 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좁은 6인실 기차 칸에서 만난 그녀

프라하 근교 소도시 '플젠'에서 '맥주 박물관 투어'와 '비어 스파'를 마치고 프라하 시내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싣었습니다. 탑승 시간을 맞추기 위해 숨차게 뛰어왔던 지라 생각할 겨를 없이 입구 바로 앞의 기차 칸으로 들어갔죠. 거기엔 풍성한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현지인 한 명이 앉아있었습니다. 


기차 출발 오 분 후쯤 그녀가 사전과 번역기를 총동원해 어설픈 영어로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왜 프라하에 왔는지 쏟아지는 질문 세례 속에 똑같은 답변을 몇 번이나 반복하길 수 차례. 영어도 못하면서 왜 이리 말을 거는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죠. 한참 질문이 없던 그녀가 대뜸 저에게 번역기를 내밀었습니다.


"꼬레아는 개를 먹는다면서?"


머리털이 쭈삣 선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걸까요. 이 칸에 그녀와 나 단 둘뿐인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인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제가 이렇게나 놀란 건 유럽에서 만난 '개'는 정말 '가족'이었기 때문이에요. 길거리는 물론 식당의 야외 테라스, 심지어 아울렛까지 사람들의 삶 모든 곳에 강아지들이 함께 하더군요. 심지어 다 큰 개들이라 개를 무서워하는 저는 건물에 바짝 붙어 길을 걷곤 했습니다. 며칠간 이렇게나 개와 함께 하는 유럽인의 삶을 봐 왔는데 이런 질문을 받으니 무서워졌습니다. 프라하 포털 사이트에 코리아를 검색하면 저런 게 먼저 나오는 걸까요?


저는 다급하게 오해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거의 개를 먹지 않으며, 오히려 식용 금지 청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한국은 과거에 전쟁과 가난을 많이 겪었는데, 그 당시에는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을 위해 식물 뿌리나 주변 동물을 먹어야만 했다는 점. 그 당시 동네에는 개가 가장 많았기에 이들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건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의 과거 풍습인 거지 절대 야만적이거나 미개한 식문화가 아니란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급한 마음에 머릿속을 스치는 모든 생각을 말로 쏟아내고 있더군요. 


해외에 나오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더니 한국에 대한 편견 앞에 울컥했습니다. 열심히 해명을 하긴 했지만 제가 과연 이걸 영어로 잘 설명했을지, 그리고 그녀가 이 내용을 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 자체가 인종차별이라 느꼈기에 불쾌감이 앞섰습니다.


동유럽 한 복판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제가 그녀의 질문에 이렇게나 예민하게 굴었던 건 9박 10일의 짧은 여행 동안 '인종차별'이라 불릴 수 있는 몇몇 상황에 처해봤기 때문입니다. 프라하 TESCO에서는 체코 화폐를 잘 모르는 외국인인 저에게 거스름돈을 일부러 덜 남겨주기도 했고,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두어 번 '스시, 비어 투게더?'같은 말을 듣기도 했거든요. 


저의 굳은 표정과 상관없이 지속되는 그녀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주고 있는데 어느덧 기차가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따분한 이동 시간 잘 때웠다 싶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종이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적어 제 손에 쥐어주는 겁니다. 바로 본인의 이메일 주소였습니다. 뒤이어 그녀가 내민 번역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오늘 나에게 들려주지 못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내줘.

한국에 대해 잘 몰라 미안해."


미칠듯한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제가 프라하 여행이 처음이라 트램 티켓을 펀칭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듯이, 그녀도 한국 사람을 본 게 처음이라 정말 우리나라를 몰랐겠구나 싶어서요. 모르는 나라에서 온 작은 여자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려 인터넷에 나오는 무엇이라도 대화 소재로 꺼낸 거구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동유럽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그녀를 차별한 건 아니었을까요?


번역기를 보여주고 쿨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고 셀카를 한 장 찍었습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함께 한 이방인의 사진 찍자는 제안이 불편했을 텐데도 그녀는 세상 가장 환한 미소로 사진을 찍어주고 떠났습니다.


동유럽 여행 시 가장 걱정하는 인종차별에 관하여

제 경험처럼 인종 선호의 일부는 한국에 대한 '무지'에서 옵니다. 이제는 '싸이'며 'BTS(방탄소년단)' 등으로 한국이 꽤 유명하지 않나 싶지만, 이렇게 해외에 나와 대번 '곤니치와'나 '니하오'로 인사하는 외국인들을 보고 있자면 허탈해지죠.


사실 여행을 돌이켜 보자면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28인치 캐리어를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저에게 들어주겠다며 말을 건 분들도 있었고 비엔나 민박집 사장님께서는 조식을 못 먹고 떠나는 제 머리맡에 컵라면과 초콜릿을 두고 가시기도 했습니다. 현지에서는 혹여 인종 차별을 당할까 나와 다른 그 모두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여행을 되새겨보니 감사했던 순간이 더 많았더라고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지레 겁먹지 말자는 겁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인종 차별의 순간 속에 프라하의 그녀처럼 정말 한국과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혹 인종차별과 이방인으로서의 낯선 감정이 두려워 동유럽으로의 여행을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를 믿고 주저 없이 떠나시길 추천드립니다. 몇몇 불쾌한 순간보다 훨씬 많은 고맙고 가슴 설렐 일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동유럽 여행을 망설이는 그대에게 제 모든 행운과 응원을 보내며,

낯선 땅으로 또 한 번 도전을 꿈꾸는 여행자 김수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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