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떠보니 터널이었다

by 행방불명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는 터널이었다.

내가 서있고 살아있는 이 순간이 터널이었다.

터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몇 년인가 시간이 흐른 후였다.

뒤를 돌아보니 터널이었구나 이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보니 터널이었다.


평범하고 준수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도 딱히 무언가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셨지만, 힘내서 파이팅 하고 자식을 둘 낳아서 극히 평범한 가정을 꾸리시는데 열심히셨다. 당연히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이셨다.


여하튼 어렸을 때는 참 먹고 싶지 않았던 한약을 먹이곤 했다.

40일짜린가 50일짜린가를 좋아하는 것들을 금지시켜 가며 먹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비싼 것들을 가끔을 싱크대에 흘려보내기도 했었다.


아이에게 일관된 사항을 교육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도 가끔 한 가지 사항에 이랬다가 저랬다가 논리적으로 대처하다가도 기분대로 나아가버리기도 하는데, 아이 앞에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10대 때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정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한정적이고, 기성세대나 사회제도가 정해둔 챗바퀴와 같은 삶을 사는 데다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크게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자아라는 게 생성되는 시기니까 호불호라는 개념은 생기지만, 딱 거기까지의 결정과 행동이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20대 이후부터는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본인일은 본인이 해야 하고, 책임도 진다. 내용으로만 보면 10대 때보다는 즐거울 삶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과 관심 있는 일들을 쫒으며 살았다. 그것이 효율적인지 미래가치에 맞는지에 대한 것보다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삶을 짜왔을 뿐이다. 어떨 때는 신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만족도 했다.

물질적으로 만족하기에는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즐거운 삶이었다.


하지만 성인으로 10년 20년 살아보니 어느샌가 털썩 주저앉아있었다.


준수한 가정환경 덕에 20대를 누려온 열정도 부모님의 헌신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그걸 바탕으로 신나게 살았고 30대부터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버틸 수는 있다고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30 중빈에 겨우겨우 나는 터널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근데 거의 터널을 빠져갈까 말까 할 정도에 와서야 터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지금은 터널이 연장공사를 하지 않도록 주시하면서 터널 안의 삶을 영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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