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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23. 2019

우주, 그 무한한 공간을 향해 떠나는 유한한 인간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 우주를 체험하고 싶다면 영화관에서, 이왕이면 아이맥스로!


어떤 영화는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한다. 전쟁, SF 영화 등 몇몇 장르는 압도적인 소리가 뿜어져 나오는 큰 화면에서 봐야만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딱 이런 법칙에 들어맞는 SF 영화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탐험하는 여정을 그린 영화를 조그만 휴대폰이나 집안 TV로 봐서는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받을 수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터스텔라> 아이맥스 명당자리가 고가에 판매되기도 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CGV, 롯데시네마 일반관에서 2번 봤는데, 확실히 큰 화면이 웅장함과 급박함을 느끼기에 더 좋았다. 관람이 아닌 체험 수준의 우주 영화이기에 영화관에서 밀려오는 감동은 더욱 컸다.


영화의 배경은 전 세계적인 모래 폭풍, 거기서 비롯된 식량난으로 종말이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다. 당장 마실 물과 먹을 식량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때 우주비행사였던 앤더슨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농부로 변신했다. 어린 아들과 딸을 홀로 키우며 병든 지구에서 버텨가던 쿠퍼는 딸 머피(멕켄지 포이)의 방에서 기이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물체가 움직이는 현상)을 목격한다. 비밀 메시지를 해독해 나사의 비밀 기지에 우연히 들어간 쿠퍼는 곧바로 인류를 구할 나사로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이미 나사는 토성 주변 웜홀을 통해 생명체가 살 확률이 있는 은하계 행성에 비행사를 투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쿠퍼는 사랑하는 딸을 남겨두고,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해 용감하게 인듀어런스호에 탑승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탐험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 SF 우주 영화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


 매튜 맥커너히(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남우주연상), 앤 해서웨이(레미제라블 - 여우조연상), 맷 데이먼(굿윌 헌팅 - 각본상), 마이클 케인(사이더 하우스 - 남우조연상). 아카데미에서 상 하나씩은 타본 배우들이 즐비하고, 게다가 감독은 믿고 보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원래 스티븐 스필버그가 진행하기로 했던 프로젝트를 SF영화 덕후 놀란이 맡아 자기 스타일대로 최대한 CG를 배제하고 장기간에 걸쳐 찍었다. 영화 속 왕복 탐사선, 착륙선은 모두 실제 크기로 제작된 실물로 4.5톤이 넘는 우주선을 분해해서 아이슬란드 얼음 세상으로 가져가 촬영했다더라. (이 정도 열정이라면 무중력 연기를 한 발로 찍은 앤 해서웨이의 고충은 애교 수준이다.) 확실히 스토리보다는 스케일이 강점인 영화다. 다소 진부한 가족애 코드는 한국/미국 흥행 성적에서 알 수 있듯이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이미지, 하늘 위 구름까지 맞닿는 파도의 위엄, 4차원을 넘어 5차원에 다다른 장면은 보는 것 자체가 황홀한 수준이다.


<인터스텔라>는 여러 영화가 겹쳐 보이는 작품이다. 가장 가까이는 2013년 개봉한 걸작 <그래비티>와 닮았다. <그래비티>가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면, <인터스텔라>는 지구에서 우주로 뻗어 나가는 대칭적인 흐름이다. 웜홀을 소재로 과학 이론에 도움을 준 <콘택트>의 설정과도 비슷한 면이 많디. (매튜 멕커너히는 둘 다 나온다.)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명작 <스페이스 오딧세이 21>는 놀란이 가장 많이 오마쥬한 작품이다. (유일하게 유머를 담당하는) 우주선 로봇 타스와 케이스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디. 하나같이 역대급 영화로 평가받는 뛰어난 걸작이라 <인터스텔라>가 아류작 느낌이 날 수도 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놀란식 상업 영화답게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하기 때문이다. 3시간에 가까운 긴 상영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고, 상투적이지만 딸과의 이별에 슬퍼하는 주인공의 원초적인 감정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더라.



○ 우주, 그 무한하고 신비한 공간을 향한 유한한 인간의 로망


<인터스텔라>는 다소 난해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2차적 독서나 토론이 이어지는 재밌는 영화다. 처음 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소소한 재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면 어른이 된 머피가 아빠의 가죽점퍼를 입고 있다든가, 쏟아지는 모래 폭풍, 사람 키 높이 크기의 옥수수밭이 모두 CG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든가. 배경 지식을 알고 있으면 더 흥미로울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차가운 우주와 따뜻한 인간. 극명한 대비가 돋보이는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음악이다.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놀란과 함께 작업한 한스 짐머가 맡은 사운드트랙은 늘 그렇듯 웅장하고 신비롭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무섭도록 조용한 공허함. 그 여백의 미가 차가웠다면, 점점 '사랑'이란 격정적인 감정에 도달하는 음악은 뭉클하고 따뜻하다. 적재적소의 음악이 탁월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가장 큰 조력자 역할을 했다.


직접 가볼 수 없고, 책과 TV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우주란 참 신비한 공간이다. 그리고 영화는 픽션이 가미되지만, 그 무한한 상상력을 시각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유쾌한 수단이다. 웜홀을 통한 성간 여행을 시도하는 인류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실제로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각본을 맡은 조너선 놀란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단순히 미신적인 힘이나 단순한 버튼 하나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개연성과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에 몰입도가 더 높아졌다. 물론 영화 막판에 잔뜩 펼쳐놓은 이야기를 사랑의 힘으로 무마하려는 건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우주'를 소재로 영화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영화다. (지극히 기초적인 내용이었지만) '우주의 이해' 교양 강의에서 상대성 이론을 배우고, 과학동아를 보며 자란 문과생인 내가 이 정도라면? 어린 시절 한 번쯤 우주 비행사를 꿈꿨던 이들에게는 우주란 미지의 세계의 로망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게 분명하다.



<인터스텔라>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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