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바리 Sep 18. 2019

형식의 신선함을 넘어선  최고의 맥북 홍보 스릴러

[영화] 서치 (Searching, 2018)


국내 개봉 외화 스릴러 최초 290만 관객 돌파를 기록한 <서치>는 웰메이드 영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018년 하반기 본 영화 중 제일 신선하고 긴장감 넘치며 재밌었다. 추석 연휴를 노린 국내외 블록버스터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리 신통치 못했고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서치>가 흥행에 대성공했다. 101분의 짧지만 강렬한 시간동안 컴퓨터 화면, CCTV, 모바일 화면, TV 스크린으로만 꽉 채운 미스테리 실종 사건 <서치>. 아니쉬 차간티 감독과 (최고의 역할을 한) 편집 스태프는 단순히 제작비나 이름값이 관객의 재미를 보장하는 건 아니라고 증명해냈다. 형식의 신선함을 넘어서 탄탄한 이야기, 배우들의 열연으로 훌륭한 한편이 완성됐다. 한편 한국계 배우 존 조는 딸 마고를 찾는 간절한 아버지를 실감나게 연기했는데, 흥행 열풍에 힘입어 9년 만에 내한했다.

 

아픈 아내 파멜라 킴(사라 손)을 먼저 떠나보낸 데이빗(존 조)은 딸 마고(미셸 라)와 함께 산다. 애지중지 사랑하는 딸을 걱정하는 평범한 아빠 데이빗의 삶은 목요일 11시 30분 이후 송두리째 흔들린다. 부재중 전화 3통을 마지막으로 마고가 등교도 하지 않고, 연락조차 닿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데이빗은 결국 실종 신고를 하고 유망한 형사 로즈메리 빅(데브라 메싱)이 사건을 맡는다. 노트북을 뒤지며 딸 아이를 찾을 단서를 모으던 데이빗은 점점 놀라고 혼란스러워한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예쁜 딸은 이미 피아노 레슨을 그만둔지 오래였고, 친한 친구를 찾기 힘든 외톨이였다. 동생 피터(조셉 리)까지 의심스럽고, 형사는 이제 사건을 경찰에 넘기고 기다리라고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데이빗은 점점 지쳐간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인터넷을 파헤치는 데이빗가 과연 마고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PC화면을 스크린에 구현해내는 시도는 익숙했지만, 영화 전체를 꽉 채운 신선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서치>의 강점이다. 제작자 티무르 베크맘베토크가 몇해 전 선보인 <언프렌디드>보다 더욱 영화적인 짜임새가 탄탄하다는 평이다. 촬영은 13일 만에 저렴한 성인영화 세트장에서 마쳤지만, 편집만 1년 반이 걸렸다는 기이한 제작단계가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가 간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제작진의 노력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페이스북, 구글, 페이스타임, CCTV, 인스타그램 등 일상 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익숙한 채널을 통해 발랄한 아이디어와 곳곳에 위트있는 요소를 숨겨놨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재빨리 움직이는 커서와 불안하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타자 속도도 나름의 열연을 하며 관객의 몰입감을 향상시켰다.


제일 인상적인 건 픽사의 <업> 인트로를 연상시키는 도입부다. 15년의 세월을 추억의 OS(윈도우, 야후 등)부터 자연스레 최근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아이의 탄생, 성장을 지켜보는 비디오 클립에서 아내의 죽음을 추억하는 영상까지 하나하나 의미있고, 애틋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홈 비디오, 영상통화, 문자 메시지, 일정 관리 캘린더를 오가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담아낸 최고의 도입부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과 그를 둘러싼 판을 한번에 소개하기까지 했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요소에 21세기 테크놀로지를 가미한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완성된다. 고프로로 촬영을 진행하고, 실제 상대역이 아닌 스크린을 보고 연기를 해야하는 제한적이고, 독특한 환경 속에서도 출연 배우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연기에 집중해 영화를 완성했다.



형식을 빼놓고 보더라도 아주 훌륭하고 빼어난 스릴러물이다. (인터넷에서 본인의 SNS 비밀 계정을 모두 아버지가 본다는 설정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스릴러....) 데이빗의 추적 과정에 집중하면 할 수록 애써 찾은 실마리가 마고의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점에 허탈해하는 경우도 많다. 계속 불안하고 긴장감 넘치게 미스터리에 몰입하게 하면서도, 막판에 가면 떡밥 회수도 말끔하게 해냈다. 여러 추리물이 온갖 떡밥은 던져놓고 스스로 회수하지 못하고 얼버부리며 황당하게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서치>는 그렇지 않다. 반전을 알고 나면 그동안의 단서와 복선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고, 명쾌하게 가족애에 공감하게 된다. 물론 CSI같은 추리수사물 미드 매니아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설정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충분히 흥미롭고 탄탄하며 만족스러운 스토리였다.


한편 마고의 실종에 관련된 온라인의 움직임은 무서울정도로 현실적이다. 평소 아무런 교류도 없었고, 데이빗의 간절한 전화에도 시큰둥하더니 한 학생은 눈물을 흘리며 조회수와 추천을 받습니다. #PRAYFORMAGOT 같은 너무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해쉬태그를 달면서. 또 다른 누군가는 데이빗의 행동에 비인간적인 악플을 달며 조롱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타인의 불행을 토대로 자신의 행복, 행복이라기 보다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NS의 소통이란 게 얼마나 자극적이기만 하고 알맹이가 없을 수 있을지, 과연 그 속에 진실한 관계망 설정이 가능한지를 돌이켜 보게 한다. SNS의 순기능도 물론 인정하지만, 관종과 선동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역기능에 대해서도 항상 조심스레 접근해야한다. 그나저나, 이 영화를 보고나면 애플이 PPL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맥북 구매욕을 자극한다. 이보다 더 훌륭한 애플 광고가 있을까 과연?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 그 무한한 공간을 향해 떠나는 유한한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