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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Nov 18. 2019

아시아로 향하는 수원, 기회이자 위기인 이유

FA컵 결승전 리뷰 / 2019 프리뷰

결승전 2골로 신데렐라가 된 미드필더 고승범 (출처 : KFA 홈페이지0


32강 VS 포항 스틸러스 1:0 (골:염기훈)
16강 VS 광주 FC 3:0 (골:신세계, 사리치, 한의권)
8강 VS 경주 한수원 2:2(PSO 3:1 ) (골:타가트, 고명석)

4강 1차전 VS 화성 FC 0:1 패
4강 2차전 VS 화성 FC 3:0 승 (골:염기훈 3)

결승 1차전 VS 대전 코레일 0:0 무
결승 2차전 VS 대전 코레일 4:0 승 (골:고승범 2, 김민우, 염기훈)


2019년 11월 10일. 빅버드의 주인공은 'FA컵 명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다.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진 수원은 FA컵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경기전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1차전 원정에서 수원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0대 0 무승부를 거뒀다. 게다가 2차전엔 핵심 멤버 홍철, 최성근 등이 부상으로 빠져 불완전한 스쿼드였기 때문이었다. 프로, 아마추어를 통틀어 펼쳐지는 FA컵에서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이변이 유독 많았기에 팬들 역시 불안했다. 그동안 상대를 압도할 경기력을 선보인 적이 없었고, 대전 코레일은 결코 쉽게 무너지는 하위리그 팀이 아니었다. (심지어 FA컵에서 2전 2패로 수원이 상대 전적 열세였다.)


하지만 'FA컵 명가'는 꾸역꾸역 자존심을 지켰다. 수원은 결승전의 부담감을 이겨내고 홈에서 완벽한 4-0 승리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간절하게 뛴 고승범은 2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대회 득점왕 염기훈도 침착하게 골맛을 봤다. 전역 후 팀에 빠르게 녹아든 김민우 역시 측면, 중원을 부지런히 오가며 쐐기포를 시원하게 넣었다. 대전 코레일은 끝까지 골문을 두드리며,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선보였지만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2019 FA컵 우승! 팬들은 '우리는 아시아의 챔피언'을 외치며, 내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자축했다.



FA컵 통산 최다 5회 우승 (2002, 2009, 2010, 2016, 2019)

김호, 차범근, 윤성효,  서정원, 이임생. 전임 감독 FA컵 우승.

FA컵 홈경기 27전 25승 2패


이번 FA컵 우승으로 수원은 다시 한번 희망의 끈을 잡았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명백히 이번 시즌은 '실패'로 기억될 한해기 때문이다. '노빠꾸 축구'를 외치며 당당히 전방 압박을 올리는 축구, 신인을 적극 기용하는 과감한 라인업을 선보인 이임생 감독의 전술은 금세 돌아섰다. 작년과 다를 바 없는 베테랑 위주의 라인업과 측면 위주의 단조로운 공격으로 무색무취의 경기가 이어졌다. 울산-전북의 역대급 우승 경쟁에는 끼지도 못했고, 하위 스플릿으로 추락해 강등권에 탈출한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슈퍼매치 상대 FC서울에게 2015년 이후 1승도 거두지 못한 악몽은 현재 진행 중이다. 고액 연봉자 데얀은 감독과의 불화로 시즌 막판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끊이지 않는 부상과 혹사로 라인업의 무게는 크게 떨어졌다.


주장 염기훈은 여전히 건재하다. (출처 : 수원삼성블루윙즈 홈페이지)


많은 선수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자리에 선수들이 영입됐으면 좋겠다.
주장으로서 계속, 잘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요청할 생각이 있다
- 염기훈 FA컵 우승 인터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양날의 검이다. 물론 ACL은 세계 무대를 향하는 길목으로 적극적인 투자와 선수단의 동기 부여를 끌어올릴 가장 효과적인 장이다. 이름 있는 선수 영입에 있어서도 ACL 진출권의 여부는 제법 큰 역할을 한다. 모기업 역시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한 좋은 기회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영부영 참가에 의의를 둔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대회다. K리그, FA컵과 더불어 진행되는 또 하나의 대회는 선수단 운영에 큰 발목을 잡는다. 일본, 중국, 최악의 경우 머나먼 호주 원정까지 다녀야 하는 조별리그는 시즌 전체의 피로를 높일 수 있다. 과연 수원은 주장 염기훈, 많은 팬들의 바람처럼 과감한 투자로 명가 재건에 성공할 수 있을까? 행복 회로와 절망 회로를 동시에 100% 가동해본다.



# ACL에 발목 잡힌 최악의 2020 수원


팬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운영 예산 증액은 모기업 반대로 무산되었고, 오히려 고연봉 선수들의 탈출 러시로 이어졌다. 이임생 감독은 '노빠꾸 시즌2'를 예고했지만, 첫 경기에서 다시 대패하며 수비적 전술로 시즌을 꾸역꾸역 끌고 갔다. 김민우는 J리그 사간 도스로 레전드 대우를 받으며 돌아갔고, 베테랑 양상민은 팀을 떠나며 2008 시즌 우승 멤버는 전혀 남지 않았다. 상주에서 물이 오른 김건희는 복귀 후 이임생 감독 전술에 적응하지 못했고, 아이러니하게 전세진은 상주 상무 입대 후 골 폭풍을 이어갔다. 바그닝요는 여전히 위력적이지 못한 채 외국인 쿼터를 차지했고, 새롭게 데려온 동유럽 센터백은 부상으로 출전 0에 그쳤다. 염기훈은 무리한 연속 출전으로 경기력이 갈수록 떨어졌고, 최성근은 나 홀로 중원을 지키기 버거웠다.


3개 대회 출전은 얇은 수원 스쿼드에 무리였다. 타가트, 안토니스가 호주 원정 경기에서 나란히 활약했지만, 이후 이어진 K리그 전북전에서 무기력하게 패했다. 결국 골득실에서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수원은 팬들의 불만만 키웠다. 2연패를 노린 FA컵 역시 웃을 수 없었다. 신예 선수를 대거 출전시키며 16강까지 올랐으나, 주전 멤버를 투입했다가 오히려 리그 2 팀에게 발목을 잡혔다. 지난해 FA컵 MVP에 오르며 상승세였던 고승범은 다시 벤치로 돌아가 우측 풀백, 중앙 미드필더, 윙으로 급한 대로 뛰다 보니 특색을 잃었다. 리그에선 전북-울산 양강 체계를 깨기 위해 효율적인 선수 보강에 성공한 서울, 포항에 밀린 지 오래였다. 대구, 강원 등 외국인 선수 대박으로 웃음 짓는 시민구단 팀들에게도 밀리며 다시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고, 승자의 저주에 울었다.


# ACL 우승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2020 수원


2020 시즌은 '성적'과 '경기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수원 최고의 한해였다. 아시아 무대 정복을 위해 신태용 감독을 영입한 게 첫 단추였다. 정식 감독 데뷔 시즌인 2010년에 ACL 우승을 차지하고, 2018 월드컵에서 독일을 잡는 이변을 일으켰던 신태용 감독은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지난해 절반만 뛰고도 무려 7 도움을 기록한 미드필더 사리치, 지속적으로 수원에 대한 사랑을 선보인 조나탄이 나란히 수원에 복귀했다. 호주 A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타가트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자원들이었다. J리그 복귀가 점쳐지던 김민우는 주장으로 아시아 무대 도전에 힘을 보탰고, 취약 포지션으로 평가받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등도 리그 2 강등팀에서 주전급 선수들로 보강했다.


FA컵, ACL, K리그 3개의 대회를 치르는 수원은 유망주의 덕을 톡톡히 봤다. U22 제도의 수혜자 오현규는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나와 프로무대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5골을 기록했다. 아울러 매탄고 출신 김태환, 박상혁, 박대원은 로테이션 멤버로 성장해 적재적소에서 활약했다. 많은 경기는 오히려 두터운 선수단에게 기회의 장이었다. 한편 위기의 순간에는 베테랑의 품격이 빛났다. 체력 안배를 하며 후반에 주로 투입된 염기훈은 결정적인 프리킥 골로 ACL 토너먼트에서 팀을 구했고, 홍철 역시 신태용 감독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A대표팀 활약과 소속팀 우승으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전북, FC서울 등을 상대로도 연승을 거두며 징크스를 깨고 강팀에 강한 면모를 선보였다.




FA컵 우승은 수원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출처 : KFA 홈페이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2019년 수원은 어쨌든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하위 스플릿에 떨어졌지만, FA컵 우승으로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축구수도'를 외치며 리그를 선도하던 1위 팀은 아닐지라도, 수원은 절대 이런 성적, 경기력, 관중 동원에 만족한 팀 역시 아니다. 과연 수원이 2019년 강등권 세 팀(인천, 경남, 제주)을 100% 압도할 수 있을까? 위기는 곧 기회다. 아시아의 챔피언을 노리고, 명가 재건을 위해서는 더 이상 안정적인 영입, 어설픈 경기 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중간한 성적 유지가 목표라면 차라리 ACL은 나가지 않는 게 이성적으로 맞다. 팬들 역시 전성기의 '레알 수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지하는 팀이 무기력하게 라이벌팀에 무너지고, 미래에 대한 철저한 비전 없이 타성에 젖어 흘러가는 걸 두려워할 뿐이다. 모두가 함께 만든 감동적인 FA컵 우승이 그저 운이 좋아 찾아온 그저 그런 선물이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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