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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Dec 04. 2019

잔인함은 없지만 긴장감은 넘치는 좀비물의 신기원

[영화] 월드워 Z (World War Z , 2013)


잔인한 좀비물보다는 스릴 넘치는 액션 게임


소설 <세계 대전 Z>를 원작으로 삼은 <월드워 Z>는 정확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입맛이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치열하게 판권을 놓고 경쟁을 펼칠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인터뷰 형식의 원작과는 다르게 영화 속 많은 에피소드는 새롭게 탄생했고,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 세계를 감염시킨 바이러스, 좀비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필사의 탈출. 평범하고 전형적인 소재지만 그런 만큼 정직하게 서스펜스의 정석을 따라간다. 좀비물의 스케일을 엄청나게 키운 <월드워 Z>는 여름철에 딱 알맞은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영화였다. 볼거리가 풍부하고 박진감 넘치며, 2시간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영화.


대한민국 평택에서 시작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마비시킨다. 바이러스는 서서히 세력을 넓히더니 급기야 미국 필라델피아 한복판에서 절정에 이른다. 순식간에 좀비로 변한 감염자가 날뛰기 시작했고, 제리(브래드 피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도망친다. UN 조사관 출신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베테랑 제리. 그는 배로 대피한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다시 전장으로 총을 들고 나선다. 대한민국, 이스라엘, 웨일스를 돌아다니며 좀비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다닌다. 잡힐 듯 말 듯 풀리지 않는 인류 구원의 실마리는 한적한 웨일스 WTO 연구소에 숨어 있었다. 좀비로 변한 연구원들 사이에서 노련한 제리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니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다시 뛰어든다.



쓸데없는 휴먼 드라마는 버리고 달리고  달린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는 꼭 두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중요한 순간에 항상 발목을 잡는 '가족'. 그리고 탄식을 유발하는 답답한 '민폐 캐릭터'. 하지만 <월드워 Z>는 가볍게 이러한 법칙을 무시하며 시작부터 전속력으로 달린다. 별다른 가족 관계 설명이나 안타까운 사연 소개 없이 곧바로 시내에서 대규모 추격신이 펼쳐진다. 아예 시작부터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암흑 속에서 눈치 없이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를 제외하고는 가족도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 초반 간신히 살아남은 어린 꼬마나, 여러 복선이라 생각한 요소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었다. 불필요한 상황 설정은 오히려 서스펜스 몰입을 방해한다는 걸 아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대자연은 연쇄살인마다."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허무하게 사라진 젊은 바이러스 학자가 그나마 민폐였다. 질질 짜고 굳이 두세 번은 반복하는 억지 감동보다는 빠르고 경쾌한 명장면이 연이어 나왔다. 이스라엘 벽을 타고 넘어 쓰나미처럼 쏟아지는 좀비 떼. 좁고 한정된 공간인 비행기 안에서 펼쳐지는 난장판 싸움은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가로로 펼쳐진 공간이 돋보이는 <부산행>에서 많이 참고한 듯하다.) 좀비물 특성상 잔인하고 징그러운 장면이 걱정되었는데, 오히려 그런 요소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리는 잔혹한 살육보다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자체에 훨씬 집중했기 때문이다. 좀비하면 막연히 밍기적거리면서 질질 몸을 끌고 다가올 거라 생각했는데, <월드워 Z>의 좀비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고, 과감하며, 무자비했다.



4개의 미션. 2시간을 달린 펩시 CF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매우 완성도 높은 게임의 엔딩을 본 느낌이었다. 여군 조력자 세겐(다니엘라 케르테스) 역시 든든한 총질과 민첩한 몸놀림으로 주인공의 목숨을 여러차례 구해냈다. 미국, 대한민국, 이스라엘, 웨일스. 4개의 미션을 브래드 피트라는 완벽한 주인공을 조종하며 탈출하고, 파괴해서 겨우 "미션 클리어" 메시지를 본 것 같았다. 각각 독립적인 에피소드의 특징을 잘 살려 긴장감 넘치는 명장면이 남았다. 미국은 친숙하고 넓은 공간인 도로, 대한민국은 짙게 깔린 어둠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 이스라엘은 엄청난 규모의 좀비 떼와 부서지는 건물들, 마지막으로 웨일스는 마치 옛날 중국 영화 강시를 보듯이 숨바꼭질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중 백미는 역시 이스라엘로, 성벽을 점점 타고 오르는 좀비 수천 마리의 발버둥은 가만히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매우 섬뜩했다.


웨일스에서 무난하게 좀비 해결책을 마련한 엔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임팩트가 부족했다. 앞서 이스라엘에서 펼쳐진 대규모 추격전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100% 속도로 쉼 없이 달려왔는데, 마지막은 펩시 콜라 CF를 보는 듯했다. 나름 소음에 반응하는 좀비의 특징을 잘 살린 액션신이 인상적이었지만, 기대치가 매우 높아진 상태라 마지막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 훌륭한 오락물이 필요할 때 최고의 선택이다. 넓은 스크린, 빵빵한 사운드로 좀비의 비명을 들으면 더울 틈이 없기 때문이다. 늘어지는 부분도 딱히 없고, 화끈하고 화려한 좀비 추격신은 다시 봐도 대단하다. 한편 의외로 이런 대규모 스케일의 영화에는 브래드 피트처럼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줄 스타가 필요한 것 같다. 브래드 피트가 아니라면 딱히 '제리' 역할에 떠오르는 배우가 없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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