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할 것을 보다, 기록한 것을 보다

[도서] 보다, 김영하

by 샘바리

소설가 김영하는 단순히 글만 쓰지 않는다. 북 콘서트,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잡지 <씨네 21>, 인터뷰. 번역. 그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그런 원천은 결국 '호기심'이란 걸 <보다>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인간이라는 작은 지옥'이라는 소개처럼 김영하는 담담하게 영화, 패션, 명절, 택시, 드라마 등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저 관성처럼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하나하나에도 김영하는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왜? 무엇 때문에? 혹시? 만약에? 다양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현상의 이면에 감춰진 것들은 들춰본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쓰고 또 쓴다. 소설가란 직업의 특수성 탓만은 아니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보고 들은 걸 쓰고, 말하고, 그리고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려 발버둥 치는 것이다. 본 것을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보는 순환적인 행위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일지라도 어느 방향으로라도 사고의 범위를 넓혀 준다.



우리의 내면은 자기 안에 자기, 그 안에 또 자기가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 틈입해 들어왔는지 모를 타자의 욕망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


<그래비티>, <설국열차>, <신세계> 등 내가 재밌게 봤던 영화들에 대한 소회도 인상적이었다. (씨네 21 잡지에 실었던 글들을 많이 수록했다.) 반드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가 아니다. 같은 사물을 두고 다르게 생각하는 타인과 만나 그 생각을 공유하며, 사고를 확장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보다>는 따스한 햇볕에 누워서 편하게 읽기 좋은 책이었다. 분량도 짧았고, 소재가 워낙 전방위적으로 넓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적인 글은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였다. 김영하는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인용하며 귀족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들고 나온다. 번거롭고 위험한 여행을 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떠나지 않는 것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기막힐 정도로 신통하다.


새삼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을 하고 안 하고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못하면 촌스러운 게 아니다. 어느덧 유럽 배낭여행은 "도전정신이 뛰어나고 열정적이며, 활발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음껏 뽐내는 글로벌한 인재"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렸다. 마치 남들이 다 가니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추세다. 마치 자소서에 올릴 스펙처럼, 여행마저도 스토리텔링의 준비 단계로 전락한 느낌이다. 여행은 분명 선택의 문제이며, 각자 여건에 맞게 고를 사항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가 추천한 대로 여행지만 콕콕 짚어서 사진만 남기고 오란 말이 아니다. (환상적인 여행 사진은 차라리 인터넷에 더 많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 떠나란 것이다. 누군가에겐 길거리 야시장의 음식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관중이 가득 찬 축구 경기장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여행을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느끼는 설렘과 떨림이 필요할 수도 있다. 뭐든지 상관없다. 여행은 떠나기 전, 돌아온 후에도 삶의 활력소가 되어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일상의 권태로움을 날릴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때의 추억을 벗 삼아 지치고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들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학생 때는 여행 갈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고, 직장인이 되면 돈은 많은데 여행 갈 시간은 없다고.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짧게나마 대만을 다녀온 지금에 더욱 크게 생각난다.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나 조금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힘들고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고. 더 늙기 전에 더 많이 보고 배우고 느껴야겠다. 세상의 불평등한 시간이 더 이상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그리고 그때 '보고' 느낀 감정이 재빠르게 사라지기 전에 말하고, 쓰고,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그때의 감정을 곱씹으며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얻고, 따뜻한 추억의 향수에 젖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 말이다.


(출처 : UNSPLASH / Jarrod Reed)

구매정보 : https://coupa.ng/by4I8g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