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U22 유망주 발굴 프로젝트
아직 교복이 어울리는 풋풋한 선수들이 팬들 앞에서 핵인싸 춤을 추며 장기자랑을 펼친다. K리그 (고인 물) 레전드 이동국(79년생, 41살), 염기훈(83년생, 37살) 등은 조카뻘 선수들과 훈련하며 회복이 예전 같지 않다며 웃는다. (수많은 TV 예능과 인터뷰, 몸짱 화보 촬영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고 단련됐기에 가능한 미소다.) 물론 90분간 승리를 위해 뛰는 프로 선수들에게 그라운드에서 나이는 중요치 않다. 승리가 곧 자신의 가치로 이어지는 프로 선수들을 격렬하게 부딪히고 몸싸움을 펼친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존중하고 악수를 건네야겠지만. 축구팬들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이들의 승부를 2019년 K리그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다.
2019년 K리그 선수 명단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여전히 18명 중 골키퍼는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하며, 외국인 선수는 3+1(아시아선수)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22세 이하 선수가 최소 2명(선발 1명 포함)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출전 명단에 포함된 1명은 의무적으로 선발 출전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선수 교체 카드가 1장 줄어든다. (이하 'U22룰'로 표기) 군/경팀은 이에 해당되지 않으며, 상대팀도 이때는 'U22 룰'을 적용받지 않는다. 작년까지는 23세 이하였던 해당 연령이 한 살 어려져, 올해부터 1997년 1월 1일 이후 출생한 22세 이하 선수들이 대상이다. 대표팀을 오가는 유망주를 보유한 팀은 매우 흐뭇하지만, 잔뼈 굵은 베테랑과 갓 프로에 입문한 신인의 격차가 큰 팀은 제법 부담스러운 제도다.
최고를 가리는 프로 무대에서 임의로 제약을 가하는 제도가 불만인 팬도 있다. 지난 시즌 아예 교체 카드 1장을 포기하고 베스트 전력을 짜는 경우나 전반전에 어린 선수를 바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리그 자생력과 국가대표 경쟁력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가하는 것은 K리그만의 이슈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라리가(La Liga)는 비유럽(Non-EU) 선수를 3명까지 보유할 수 있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는 A대표 경기를 일정 수준 이상 뛰어야 획득할 수 있는 워크퍼밋(취업허가서)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혹자는 '잉글랜드' 국적을 가진 선수가 홈그로운 제도덕에 프리미엄이 붙어 고액 연봉은 받는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자국 선수 보호, 유망주 경쟁력 강화가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도 있다. 실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잉글랜드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다. 심지어 승부차기를 이기고.
EPL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최고의 팬들을 보유하는 인기 리그다. 중계권료와 선수 연봉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해외 거대 자본들이 앞다투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리그 인기와 별개로 국가대표 성적은 영 신통치 않다. 축구 종주국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1966년 월드컵 우승 이후 그렇다 할 성과가 없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결국 리그 내 자국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홈 그로운 제도(Homegrown Player Rule)'를 2015년 도입했고 개정 중이다. 요약하자면 EPL 20개 팀은 25인 로스터에 홈그로운 선수 8명을 포함시켜야 한다. 21세 이전 잉글랜드/웨일스 축구협회 소속 클럽에서 3년간 뛴 선수가 이에 해당하는데, 8명을 채우지 못할 경우 로스터 제한이 들어간다. 비유럽 국적의 선수가 유럽 상위 리그 진출이 어려운 것은 실력 이외에도 제도적 측면도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K리그 골키퍼 외인 규제 제도는 전설적인 골키퍼 신의 손 때문에 등장했다. 1992년 성남 일화에서 데뷔한 그는 당시 약체였던 일화를 단숨에 K리그 3연패로 이끌었다. 그러자 모든 팀들이 앞다투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려고 나섰고, 갈수록 한국인 골키퍼의 자리는 사라졌다. 결국 한국 프로축구연맹은 외국인 골키퍼 제한 제도를 만들었고, 시간이 흐른 지금 유능한 한국인 골키퍼들이 J리그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렇듯 연맹의 제도는 선수, 팀, 리그, 나아가 국가대표까지 영향을 끼치는 안전장치다. 23세 이하 출전 의무화 아이디어는 2012년 처음 나왔다. K리그 팀들이 유소년 클럽에 투자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스타를 길러내자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실제 매탄고(수원 삼성), 현대고(울산 현대), 포항제철고(포항 스틸러스) 등 프로팀 산하 유스팀 소속 많은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프로 데뷔에 성공했다.
연맹은 2013년에 23세 이하 선수 1명을 선수 명단에 포함시키도록 규정했다. 점진적으로 제도는 확대되었고(2014년 23세 이하 2명 등록, 2015년 2명 등록 1명 출전 등), 실제 2014년 결실을 맞이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축들이 대부분 23세 이하 규정을 통해 K리그 소속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었다. 이재성, 김승대, 이종호 등은 국가대표, S급 외국인 선수가 즐비한 소속팀에서 U23룰이란 안전장치를 통해 완만하게 연착륙했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나선 김민재, 황인범, 나상호 등 96년생들도 꾸준한 리그 출전을 바탕으로 국가대표 수준까지 성장했다. 다가올 가장 큰 이벤트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이다. 내년 출전을 위해선 현재 22세 이하 선수들의 성장이 절실하고, 이 때문인지 자연스레 올해 규정은 23세가 아닌 22세 이하 의무 규정이었다.
시민구단 대구 FC는 지난해 FA컵 챔피언에 오르며 아시아 무대까지 넘보고 있다. 세징야와 조현우가 공수에서 중심을 잡고, 알짜배기 유망주들이 리그에 빠르게 적응한 덕분이었다. 김대원(23경기), 정승원(31경기)은 꾸준히 리그에 출전했고, FA컵 결승전이란 큰 무대에서 김대원은 천금 같은 선제골까지 기록했다. 이뿐 아니라 장성원(9경기), 임재혁(8경기) 등이 공수에서 쏠쏠히 제 몫을 해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대형 수비수 정태욱까지 제주에서 영입해 U22룰을 가볍게 통과했다. A매치 명단에도 오르고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붙박이 송범근(전북 현대), 이진현(포항 스틸러스) 등도 한시름 덜고 리그 개막을 기다린다. 이렇듯 팀 내 붙박지 주전이 22세 이하라면 제도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수원 블루윙즈는 '모 아니면 도'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도 작년처럼 베테랑 데얀, 염기훈이 주축이 될 전망인 수원은 특급 영입 없이 반강제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다. 어린 선수를 적극 테스트하는 신입 이임생 감독은 유스 출신 선수들을 대거 프로로 불러들였다. 고려대 박상혁, 박대원은 물론 00년생 매탄고 3명(박지민, 김태환, 신상휘)을 연습경기부터 적극 활용 중이다. U23 제도를 활용해 권창훈(디종 FCO)이란 대박을 경험한 수원은 이들이 터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포항 스틸러스 역시 절반 이상이 U22 이하 선수라 이들의 활약에 따라 시즌 전체의 성패가 달려있다. 한편, 제주 유나이티드는 U22룰 대상 선수 대다수가 프로 데뷔라 아직 걱정이 많다. R리그에서 맹활약한 이동률, 연세대 핵심 수비수 김승우 등이 있지만 프로 무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018년 K리그1 30경기 18실점
전북 현대는 리그 최고의 스쿼드를 자랑하지만 골키퍼 포지션만큼은 의문점이 따라다녔다. 주전 권순태의 J리그 진출 이후 2018년 골키퍼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홍정남, 황병근이 나란히 경기에서 미숙한 볼 처리로 실점하며 송범근에게 기회가 왔다. 그리고 송범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완벽에 가까운 성과를 얻었다. 2018 K리그 우승,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그 기준 클린 시트 19회, 선방률 79%. 영 플레이어상은 받지 못했지만, 데뷔 첫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올해 강원 FC에서 베테랑 골키퍼 이범영이 왔지만, 아킬레스 부상으로 6개월 결장이 불가피하다. 올해도 송범근은 전북의 U22룰과 골키퍼 고민을 동시에 해결해줄 전망이다.
2018년 K리그1 17경기 5골 1도움
이진현은 포철동초-포항제철중-포항제철고를 거친 순혈 유스 출신이다. 이진현은 U-20 월드컵, 대학리그, 오스트리아 리그, 유로파리그, 아시안게임 등 다양한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난해 호주 원정 2연전에 이진현을 출전시키며, 단순한 훈련 파트너가 아닌 실제 자원으로 판단했다. 이진현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A매치 데뷔(vs 호주), 첫 어시스트(vs 우즈베키스탄전)를 통해 성장했다. 포항에서 터뜨린 5골도 순도가 높았다. 상위 스플릿이 걸린 대구와의 경기에서 1골 1 도움, 울산과의 동해안 더비에서 동점골 등을 보면 승부사 기질도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 윙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심지어 풀백으로도 뛸 수 있어 활용 가치가 높다. 김승대, 이석현 등과 주전 경쟁이 걱정되기보다는 연계 플레이, 공간 침투가 특기인 동료들과 시너지 효과가 더 기대된다.
2016년 K리그1 6경기 1득점
2017년 K리그1 10경기 1도움
2018년 K리그1 23경기 3득점 5도움
2017년 K리그1 9경기
2018년 K리그131경기 4골 3도움
대구 FC는 시민구단 특성상 고액의 국가대표급 특급 선수를 입맛대로 영입할 수 없다. 자연스레 유망주들의 성장을 기대하고, 일부 번뜩이는 외국인 선수에 기대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구단 창단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누빈 골키퍼 조현우를 제외하면 국가대표도 없었다. 하지만 대구 FC 단장 조광래는 예전부터 유망주 발굴에 일가견이 있었고, 유망주에 적극적으로 기회를 준 팀 분위기는 결실을 맺었다. 경기 출전을 조금씩 늘려가던 97년생 듀오 김대원-정승원은 어느덧 프로 3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대-승' 콤비는 지난해 FA컵 우승 돌풍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드리블과 골 결정력이 한층 성숙해진 김대원은 FA컵 최다 공격포인트(4골 4 도움)를 기록하며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냈다. 정승원 역시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중원 전체를 누비며 중심을 잡아주었다. 안드레 감독 입장에서는 단순히 제도적인 기용이, 팀 전체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97년생 듀오를 올해도 중용할 전망이다.
2018년 입단한 송진규의 프로 경기 기록은 '0'이다. 유스팀인 매탄고를 거쳐 중앙대에서 활약하다 콜업됐다. 정교한 슈팅이 강점인 송진규는 매탄고 주장을 거쳐 1, 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으며 기대치를 높였다. 지난해 R리그에서 무난하게 활약했지만, 단숨에 1군 프로 무대에 곧바로 적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2년 차에 접어든 터키 전지훈련에서 꾸준히 선발 출전하고, 골을 기록하면서 이임생 감독의 믿음을 얻어가고 있다. 정교한 슈팅과 공격적인 패스가 장점인 중앙 미드필더로 등번호도 6번으로 배정받았고, U22룰의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유주안, 전세진 등 더 어린 선수들이 작년에 나란히 골맛을 보고,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주전 경쟁이 더 심할 전망이다. 염기훈, 바그닝요, 임상협, 한의권 등 측면 자원이 풍부한 것과 달리 수원의 얇은 중원 스쿼드는 송진규에게 천금 같은 기회다.
2017년 K리그1 울산 1경기
2018년 K리그2 안양 10경기
프로 무대 데뷔골은 단순히 1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선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보다 적극적이고 여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울산 유스 출신 이동경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 페락전에서 첫 골을 터뜨렸다. 후반 중반 교체 투입된 이동경은 4분 만에 과감한 왼발 슈팅으로 다득점 승리를 도왔다. 홍익대를 거쳐 울산에 입단한 뒤 지난해는 안양에 임대를 떠났다. K리그2에서 10경기 출전하며 경기 템포에 적응한 이동경은 U-22 대표팀 전지훈련에서도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였다. 태국에서 치른 연습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김학범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고, 데뷔골을 바탕으로 김도훈 감독에게도 중용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A대표팀과 연습경기에서 2골을 터뜨린 00년생 박정인. 지난해 임대된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한(21경기 5골 2도움) 이상헌 등도 U22룰의 경쟁자다. 하지만 이상헌은 피로골절로 초반 결장이 불가피하고, 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진과 경쟁해야 하는 박정인에 비해 이동경은 한 걸음 앞서있다.
2018년 K리그 1 강원 FC 8경기
왼발잡이 센터백 이재익은 AFC U19 챔피언십 대회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빌드업 능력을 인정받아 꾸준히 U22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강원 FC 고교 시절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경험이 쌓이며 점점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K리그 8경기 출전으로 프로 무대에서도 적응을 마쳤다. 발렌티노스-김오규 중앙 수비수 조합이 탄탄하게 주전으로 나서고 있지만, 2년 차 이재익에게도 기회가 있다. 약점으로 지적받는 피지컬을 보강하고, 안정감을 더한다면 패스 플레이를 중시하는 김병수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97년생 풀백 강지훈(12경기 1골 1 도움)이 이미 중용을 받는 만큼 남은 U22룰 한자리를 실력으로 따내야만 한다. 리그에서 부상 없이 꾸준히 출전하며 안정감을 보여준다면, 내년 도쿄올림픽의 기회도 자연스럽게 올 것이다.
2018년 K리그2 광주 FC 36경기 3골 5도움
포항 유스 출신 김동현의 프로 무대 검증은 K리그 2에서 이미 끝났다. 데뷔 시즌에 광주 FC로 임대를 떠난 김동현은 36경기 전경기에 출전하며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K리그 2 인터셉트 1위(65회, 경기 평균 1.8), 지상 경합 3위(223개, 경기 평균 6.2개)에 오를 정도로 수비력, 활동력, 적극성이 훌륭한 편이다. 단순히 투박하게 공을 뺏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넓은 시야로 패스 전개도 매끄러워 수비형 미드필더에 최적화된 선수다. K리그 1로 다시 돌아온 성남 FC는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팀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줄 김동현을 영입했다. 시민구단 전환 후 최고 금액의 이적료를 지불할 정도로 기대가 큰 상황이다. 패스 축구를 추구하지만, 수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남기일 감독의 입맛에 딱 맞는 이적이다. 김동현에게는 첫 K리그 1 무대 데뷔인데, 본인의 존재 가치를 친정팀 포항에게 증명할 기회다.